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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Apr 11. 2024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장례식장에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는데도 이미 화장이 진행 중이었다. 그의 이름이 적힌 번호의 화장장으로 찾아가니 구청 직원이 먼저 와 있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화장장 앞 나무 의자에 마주 앉았다.


“그래서 어떻게 죽었는데요?”


전화로는 말해 줄 수 없다는 그의 사인을 이제야 물어본다.

그는 오피스텔 옥상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신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그것도 사람들이 거리를 많이 다니는 저녁 6시에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하고 많은 방법 중에 왜 그런 끔찍한 방법을 생각했을까. 숨이 끊긴 거야 이미 아는 바고 신체도 많이 상했을 것이다.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혼 시절 내 친구 부부와 함께 원천 유원지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거기서 바이킹을 타다가 무서워하며 끝내는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던 그가 스치듯 지나간다. 그랬던 사람인데 무엇이 그에게 그런 끔찍한 방법을 선택하게 했을까.





구청 직원은 손에 들고 있던 다이어리와 휴대폰을 내게 넘겨준다. 경찰에게 건네받은 그의 물건이다. 경찰이 화장할 때 같이 태워버리라고 넘겨주었다는데, 구청 직원은 나에게 전해주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다이어리를 펼쳐 보았다. 다이어리 안에는 3년 전 새로 만든 주민등록증과 유서라고 할만한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새로 만든 주민등록증 속에 사진은 나와 함께 살 때보다 더 젊어 보였다. 다이어리 속엔 미용시술을 위한 피부과 진료 예약 같은 메모들도 적혀 있다.

‘나 없이 어떻게 살아갈까.’

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한때는 잘살고 있었음을 메모가 알려준다. 무탈하게 잘 살던 날들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 그의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짤막한 쪽지에는 자신은 가족이 아무도 없으니, 그냥 화장해 달라는 경찰에게 남긴 메시지였다.


제 몸 하나 사라지면 그냥 세상 끝나는 것인 줄 알았나 보다. 그래도 소위 명문대를 나온 사람인데, 그만한 세상 이치도 몰랐다니. 그러면서도 일말의 자존심은 남아서 이 세상 이렇게 마감한다는 건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었을 거다. 그러나 세상은 무연고자의 유언 따위는 무시한 채, 행정절차를 밟아 가고 있는 중이다.      





그와 이혼한 지 4년째부터는 양육비를 받지 않았다. 그 후론 아예 연락을 끊고 살며 7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 시간에 나는 가끔 ‘아이가 이렇게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고 메일로 아이 사진이라도 보내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혹여나 나의 마음을 오해하기라도 할까 봐 그러지 못했다.


아이가 6학년이 되니 처음으로 반항이란 걸 한다. 센 엄마인 척 아이를 혼냈지만, 솔직히 겁이 났다. 아이가 점점 크니 나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아빠의 빈자리가 더욱 느껴지던 즈음이었다. 그에게 공동 육아를 제안해 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그는 마치 모든 걸 잊고 산 듯 보였다. 뭐 서운한 건 아니다. 그래야 그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전광판에 화장이 끝났다는 문구가 뜨고, 잠시 후 화장장 직원이 흰 종이 뭉치를 다소 무거운 듯 조심스럽게 들고 와서는 나에게 건넨다. 종이 뭉치를 보곤 깜짝 놀랐다.


도자기 유골함은 바라지도 않았다. 나무 상자도 아닌 종이 뭉치.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종이 뭉치를 건네려는 화장장 직원의 손을 향해 나는 반사적으로 손이 나갔다.


“뜨거워요. 장갑 끼세요.”


화장장 직원은 종이 뭉치를 들고 있는 손 사이에 있는 목장갑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종이에 쌓인 뼛가루는 뜨겁고 묵직한 것이 혼자 들기에 버거웠다. 친구가 함께 들어주었다. 자갈 만한 뜨거운 알갱이의 느낌이 종이 뭉치 너머로 그대로 느껴졌다.

얼떨떨한 채 화장장 직원이 안내하는 데로 가서 종이 뭉치를 펼쳐 뼛가루를 부었다. 무연고자의 뼛가루가 한데 부어지는 공간이었다. 저 안에 몇 개의 원한이 섞여 있는 것일까. 아니 영혼 같은 건 절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그의 휴대폰을 충전해서 켜 보았다. 휴대폰에 연락처와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 메신저와 앨범 모두 삭제되어 있었다. 그의 휴대폰은 화면이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그 안엔 카카오톡 메신저 몇 개와 몇 장의 사진이 남아 있었다. 그 흔적들로 그가 근래에 아파서 일을 못 했었고 재기를 시도했지만, 누군가에게 크게 배신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대폰 속에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사진이 몇 장 있었다. 아팠다는 게 머리를 다친 모양이었다.





카카오톡에 남아 있는 전화번호 몇 개는 그나마 가장 최근에 연락한 사람들이다. 그중 내가 아는 사람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뿐이다. 좀 망설이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친구에겐 상황을 알려주어야 할 것 같았고, 나도 이 시간 함께 애도할 사람이 필요했다.


경남 사천 지사에 가 있다는 친구는 그의 얼굴을 본 건 3년 전이라고 한다. 그 사이엔 통화만 했다고. 자식들 키우느라 모두 정신없이 사는 나이들이다. 멀리 있으면서 친구까지 살뜰하게 챙길 여유가 있겠는가. 아무튼 한 번 은우 얼굴 보러 가겠다는 지키지 못할 마음만 담긴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같은 번호로 여러 번 걸려 온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

‘선생님, 왜 전화가 계속 꺼져 있어요. 제 전화 좀 받아 주세요.’

너무나 간절해 보이는 메시지에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총각 행세를 하고 다녔을 그를 위해 나는 그의 사촌 동생이라고 소개했고, 그의 사고 소식은 차마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교통사고라고 했다.


“선생님이 학생 싫어서 연락 안 받는 거 아니라는 말 해주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삼수 중이었다는 학생은 너무 서럽게 운다. 그 눈물이 난 좀 위로가 됐다.


“이번 수능은 잘 봤다고 제일 먼저 선생님께 전화드린 건데.”


봉안당이라도 알려달라는 학생의 말에 장례식장 유골들이 뒤범벅되어 있는 그곳을 차마 알려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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