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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바랜 개살구 Apr 22. 2024

가족이라는 이름의 여러 가지 해석

정서적 유대와 지지를 주고받는 가족이 가장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라고 한다.

난 유년 시절 가족에게서 이런 느낌을 조금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서둘러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새로운 가족 안에서는 이런 바람이 어느 정도는 충족되는 듯했다. 몇 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아이 아빠의 사망 신고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겪느라 심신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런 가운데서도 수업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장례와 집 정리 사망신고까지 하느라 두 번이나 자기 시간을 내어준 친구와 달리, 엄마와 언니는 나에게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연세도 많고, 표현이 서투른 분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친다. 하지만 언니는...


12년 전 형부가 위암 말기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을 때, 모두가 황망하고 경황없을 때, 그는 여섯 살짜리 조카를 장지까지 업고 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나와 헤어져 남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언니에게는 조카의 아빠인데, 그런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것도 아주 비참한 모습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데, 언니는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서 그런 지 별 반응이 없었다. 서운하다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언니와 함께 어디를 가고 있었다. 내가 운전을 하고 언니는 조수석에 앉아한 통의 문자를 받더니  매우 안타까워한다. 언니는 초등학교 교사이다. 문자는 학부모가 보낸 것이고, 아이의 아버지가 아파서 힘든 가족사를 담임 선생님께 알리는 문자였다. 아이의 상황이 이러하니 아이를 좀 배려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우리 @@이가 이런 일이 있었구나."


혼잣말을 하며 오랜 여운을 남긴다.

참 훌륭한 선생님 납시었다. 조카의 아버지는 죽었는데, 옆에서 자기 동생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는 외면한 채 제자의 가족사를 걱정하는 선생님.


그때 언니와 인연을 딱 끊지 못한 걸 난 아직도 후회한다.  당시 난 오빠와의 사이가 서먹해진 상태였다. 나의 힘겨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해서 집을 사라고 재우치는 오빠의 말이 야속해서 한바탕 퍼부은 지 몇 달 안 된 시점이었다. 그런데 언니와 마저 등을 돌리게 되면 가족과 영영 멀어질 거 같아서 꾹 참았었다. 그러나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해도 남보다 못한 경우도 많다. 혹시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 가족이 있다면 핏줄이라고 해도 거리 두기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슬픔을 위로해 주는 친구보다 기쁠 때 기쁨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더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다.

측은지심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어서 힘든 사람을 위로하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다. 때로는 그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을 보며 그 슬픔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가 좋은 일을 당했을 때 기쁨을 내 일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기엔 내 일처럼 기뻐하기보다 질투라는 감정이 앞서 따라붙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나 가족은 기쁨도 슬픔도 내 일처럼 여겨주는 사람이라는 걸 어려움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사망신고가 접수되니, 그의 재산 내역이 문자로 들어온다. 예상했던 대로 재산은 없고 약간의 빚이 있다. 그것도 제2 금융권에서 빌려 이자가 아주 비싼 것들이다. 이것을 그냥 두게 되면 어린 아들은 7년 넘도록 얼굴도 못 보고 산 아버지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그 빚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상속포기를 해야겠다.


난 내 가족인 아들의 아버지가 남겨 준 빚을 막기 위해 또 분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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