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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수 Jun 16. 2017

엄마는 있잖아,

가족의 여행길, 그리고 엄마의 길

 "엄마는 어렸을 때 뭐하고 싶었어?"
 "엄마? 음, 엄만 연극배우가 그렇게 하고 싶었지"
 "그럼 꿈을 이루진 못한 거네?"
 "그래도 젊을 때 극단에서 두어 번 공연은 했어."
 "주연으로?"
 "주연은 무슨. 그냥 잠깐 나오는 거였지."  


 한 사람이 지금의 존재가 되기 전까지의 짧고도 긴 인생 이야기는, 그렇게 한겨울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당신의 어렸을 적 꿈 얘기로 시작됐다.


 그리 풍족하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난 둘째. 게다가 여자라는 사실은 엄마를 참 여러모로 괴롭혔던 모양이다.
첫째였던 이모는 공부를 참 잘하던 수재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밤샘 공부를 하던 아이였으니 말 다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모아 공부를 시켰고 결국 이모는 서울대를 갔다. 하지만 역시 여전히 돈 때문에, 돈이 없어서 사범대를 갔단다. 막내였던 외삼촌은 유일한 아들이었기 때문에 집안의 지지를 받으며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결국엔 대학을 갔다.
 엄마가 설자리는 마땅히 없었다. 집안의 기둥이 될 아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모만큼 공부에 재능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 그 시절 엄마는 연극에 미쳐있었다.
 평범한 소시민 가정에서 태어난 둘째 딸은 그렇게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고를 갔고, 끝내 대학교 교정을 밟지 못했다.


 그 뒤로 엄마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남부럽지 않은 위치에 왔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지만, 한편으로 가정은 또 다른 문제였다. 엄마에게는 가장 큰 의지가 되었을 아빠가, 맏아들이 겨우 초등학교 2학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부터 많이 아팠다. 그때부터 정말 많이 아팠어서, 우리 가족은 점점 엄마라는 외딴 기둥 위에 앉아 있는 강아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흔들리면 우리 가족이 흔들렸고 금방이라도 저 바닥으로 떨어질까 무서워했다.
 그래서 엄마는 흔들릴 수 없었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퇴근 후에 날 보면 갑자기 왈칵 눈물을 쏟곤 했던 엄마지만, 그럼에도 흔들리면 안 되었다. 한 가정을 오롯이 짊어진 무게 때문에 어깨에 굳은살이 배기기도 전에 상처가 나고 다시 굳은살이 배기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내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엄마 마음에는 위태로운 강아지에게 해준 것보다 못해준 게 더 많았다. 아빠와 동생과 내가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며 생색을 내도 아무도 욕하지 않을 당신이지만, 아직도 엄마는 미안함만 더 큰가 보다.


 "저번 주말에 아빠랑 부산 갔다 왔었잖아. 근데 너한테 되게 미안하더라. 전에 네가 여자 친구 사귈 때 걔 보러 부산 많이 갔었잖아. 그때 돈 몇 푼이라도 챙겨줬어야 됐는데...... 돈도 없이 부산에서 뭐하고 놀고 다녔을까, 하니까 맘이 찡해. 엄마가 잘못 생각했나 봐. 엄마가 미안해."


 내 연애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엄마의 사과였다. 엄마는 내 연애를 싫어했다. 아니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헤어졌다고 했을 때 나만큼이나 많이 울던 게 엄마였다.
 나는 시간이 없어서 못 갔지 돈이 없어서 못 갔겠냐고, 돈 더 받았어도 똑같았을 거라고 웃어넘겼다. 그래, 뜬금없이 내가 울컥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엄마와 나는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입고 있던 두꺼운 패딩을 나눠덮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 밑에 내 한 손을 꼭 쥔 채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히터가 이미 작동한 지 오래여서 버스 안은 충분히 덥혀져 있었지만 '춥지?'하면서 내 손을 가져가는 엄마의 손길을 뿌리칠 수는 없었고, 그 뒤로 내 손은 엄마 손 안에서 꼼지락대고 있었다.


 "엄만 이제 자야겠다. 너도 이제 좀 자."

 눈도 많이 내리는 추운 날, 하루 종일 전주 시내를 돌아다닌 탓에 피곤함이 밀려왔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5분이 지나서였을까. 다시 눈을 뜨고 문득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눈을 뜬 채로 창밖을 가만히 내다보고 있었다. 창밖으로 불빛들이 하나둘씩 지나갈 때마다 엄마의 얼굴은 환해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난 엄마의 눈을 봤고, 그래서 '잠 안 와?'라고 차마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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