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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수 Sep 09. 2017

세 갈래 길을 마주한 모험가처럼

나, 뭐 먹고 살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2000년대 초반,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기자기한 화면 구성에 귀여운 캐릭터와 몬스터들은 당시 순수하고 꿈 많은 사람들을 환상의 세계 ‘메이플 월드(Maple World)’로 초대했다. 장래희망을 ‘신(god)’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철부지였던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보냈다. 엄마의 꾸지람을 꿋꿋하게 견디면서 말이다.


 게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였던 내가 그 속에서 유난히 자주 머물렀던 곳이 있다. ‘세 갈래 길’이라는 지역이다. 이름 그대로 여기는 서로 다른 세 마을로 향하는 길이 모여 있는 갈림길 입구였다. 메이플스토리 유저라면 이곳을 한 번쯤은 지나치게 된다. 어리바리한 자신의 캐릭터가 잘 성장하려면 마을에 가서 어엿한 직업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세 갈래 길’은 게임 속 캐릭터가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이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가상공간인 메이플 월드의 모험가와 닮아 있다. 모든 사람들, 특히 청춘이라고 불리는 20대는 누구나 세 방향으로 나뉜 갈림길 앞에서 방황한다. ‘내가 가고 싶은 길’, ‘내가 가야만 하는 길’, 그리고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 우리는 세 갈래 길의 입구에 서서 고민한다. 어느 길을 가는 게 더 좋을지 말이다.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하는 길목에서 하는 고민. 그 고민이 쉽게 끝날 리 없다. 결국 오랜 시간 제자리걸음만 하다 자리에 구덩이만 파이기 일쑤다.


 물론 우리가 마주한 갈림길이 항상 세 방향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두 개가 될 수도 있다. 내가 가야하는 길이 우연히 내가 가고 있는 길과 같다거나,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운 좋게도 내가 가고 있는 길이거나, 내가 가야하는 길이 다행히 내가 가고 싶은 길인 경우 그 사람에게는 두 갈래 길이 된다. 그리고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은 이 세 길이 모두 일치하는 환상적인 왕의 길(King's Road)을 걷는다. 선택받은 이들은 고민 없이 직진만 해도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지극히 평범해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대한민국 청춘인 우리는 그 영광을 받지 못한다. “나 뭐먹고 살지?”는 단순히 장래희망에 대한 고민이 아니다. ‘황금 길’에서 비껴간 우리의 처지와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담긴 처절한 질문이다.


 이처럼 보통의 우리는 안개가 잔뜩 낀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해한다. 갈림길을 앞에 둔 우리가 불안이라는 감옥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보자. 당신은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러다 갈림길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어떤 길이라도 일단 가봐야 한다. 가보지 않고서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주위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모른다. 내가 선택한 길을 걷다가 우연히 은인이 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했던 길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될 수도 있고, 알고 보니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옆길과 만난다는 사실도 알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잊고 있는 중요한 점이 또 하나 있다. 우리 앞에 있는 길들이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길 중간에서 분명 돌아올 수 있다. 힘들기는 하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마치 길들이 일방통행인 것처럼 우리를 현혹시킨다. 한 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심각한 결정 장애자가 된다. 우리는 이 길들이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고 스스로 되뇌어야 한다. 그래야만 첫 발걸음을 떼고 용기 있게 직진할 수 있다.




 무슨 길을 택하든 잘못된 건 없다. 여러 길을 걸을 때 그마다의 풍경과 느낌이 다른 것처럼, 인생의 길에도 그마다 배움과 경험이 있다.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갈림길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게 아니라 용기 있는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다. 앞에 뭐가 나올지 몰라도 일단 고른 길을 향해 달려 나가는 메이플스토리 모험가처럼. 당시 어렸던 우리는 당돌했다. 아직 20대인 우리에게 그 정도 철없음은 필요하다. 청춘이라고 불리는 이상, 우리는 그래도 되는 시기니까.


 가고 싶은 길과 가야하는 길, 그리고 지금 가고 있는 길. 그 중에 어떤 길을 선택해도 좋다. 다만 내 선택에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면 될 뿐이다. 현재 스물 넷인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 첫 발걸음을 떼려 한다. 당신은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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