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수 Jun 19. 2017

거길 왜 가냐고요? 음... 그게 말이죠

[세계여행 Prologue]

 작년 11월 중순, 내가 혼자 제주도를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제주도에 도착한 지 삼일째가 되던 날 밤, 나는 산방산 아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여행자들을 위한 파티를 하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원래 제주도 밤하늘을 보면서 혼자 여행 온 분위기를 맘껏 즐기려고 했었다. 하지만 바로 전 날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여행지에서 만나 놀고 얘기하는 재미를 알았다. 새벽까지 즐겁게 떠들던 그 기억이 아직 채 가시지를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그럴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에 내심 들떠 있었다.


 도미토리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으니 날이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산방산 건너편으로 해가 저물고, 슬슬 여행객들이 들어올 시간이 되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께 물어보니 오늘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는 인원이 나 포함 3명이랬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두 명도 파티를 하겠다고 신청했단다. 뭐 당초 예상했던 큰 규모의 왁자지껄한 그런 파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사람을 또 만난다고 생각하니 이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사장님이 저녁 파티 준비가 됐다며 나오라고 했다. 식당 쪽으로 가니 남자 여자 한 명씩 고기와 술이 올려진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둘은 동행이었고 이미 서로 아는 사이였다. 남자는 이제 막 서른을 넘겼고, 여자는 아직 서른이 채 안 됐지만 어쨌든 나보다는 누나였다.
 둘 다 술을 좋아하는 눈치였다. 남자는 술을 엄청 먹고 싶어 했지만 며칠 전 라섹수술을 한 덕분에 알코올을 들이키면 안 된다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여자는 그러게 여행 오기 전에 수술은 왜한거냐며 남자를 깔깔대며 놀렸다.
 형은 고기만 줄곧 먹다가 술도 못 마시는데 밤늦게 있어봤자 뭐하냐며, “난 일찍 잘게 너네 둘이 재밌게 놀다 들어가라”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술은 나와 그 누나만 마시게 됐다.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과자 안주에 한라산 한 병을 까고, 별빛이 내려앉는 테라스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제주도 어디가 좋은지 어디를 꼭 가봐야 하는 건지, 어디 해변이 제일 이쁜지, 거기엔 어떤 집이 맛있더라, 우도에 땅콩아이스크림이 유명하던데 생각보다 별로다,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누나한테 영상통화가 한 통 왔다. 누나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전화를 받아 화면을 보면서,


 “응 엄마야~ 많이 보고 싶어~? 이번 주말에 아빠랑 갈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응? 엄마? 이 누나 아이가 있었나? 분명 아까 그 형이랑 있을 때는 남자 친구 없어서 외롭다고 연애 안 한 지 오래됐다고 그랬는데 뭘까... 흔히 말하는 '돌싱' 그런 건가? 음... 뭐 그럴 수 있지, 라고 혼자 생각하는 찰나.

 누나가 웃으면서 자기가 일하는 보육원에 있는 아이라고 말해줬다. (내가 궁금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나 보다.) 누나는 사회복지사였고, 보육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거의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 들어온 아이였다. 들어왔을 때부터 자기가 맡아 챙겼는데 그 후로 자기를 엄마라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자기도 이 아이를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랬다. 그리고 같은 보육원에서 일하는 남자 사회복지사를 ‘아빠’라고 부른다고 한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하기야 내 주위에서 사회복지사, 그중에서 보육원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도, 알고 지낸 적도 없었으니 생각을 못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쪽의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거였다.
 그때부터 누나는 이 아이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얘기해줬다. 내내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 아이가 이렇게 애교를 부린다고 말하고, 흉내내고, 또 안타까워서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행복해 보였다. 술에 취해서 나온 말투 표정 행동이 전혀 아니었다.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이 사람이 얼마나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아이를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누나는 사회복지사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에는 치매환자를 돌보는 요양원에서도 일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는 너무 힘들었다고, 보육원에 와서는 정말 즐기면서 일한다고 그랬다.
 막연하게 ‘사회복지사는 힘든 직업’이라고만 생각하던 내게 다가온, 작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때 제주도에서였다. 사회복지사 누나를 비롯해 막노동을 뛰는 형, 아무 일 안 하면서 뭐 먹고사나 고민만 하고 있는 형, 간호사하다가 너무 힘들어 때려치우고 제주도 놀러 온 누나들, 몇 달 동안 먼 바다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대형 선박의 항해사 형, 양궁 국가대표 선수 누나까지. 내가 살면서 만나온 세계의 울타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삶들을 만난 건 그 짧은 4일간의 제주도에서였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생각, 그들의 삶을 직접 듣고 보고 느끼는 건 생각보다 더 큰 공부였다. 책 보다 훨씬 와 닿았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고 싶어진 건 그때부터였다.


 그래서 더 멀리 나가기로 결심했다. 고정관념으로 단단히 세워진 내 틀을 넓히고 싶었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는 한 그 한계는 분명했다. 대체 어디를 가면 데미안의 새처럼 내가 살아왔던 그동안의 세계를 한 번에 부수고 깨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인도를 다녀온 몇몇 사람들의 글을 우연히 보게 됐다. 보고 느꼈다. 나는 여기를 가야겠다고. 어쩌면 나와 가장 다른 사람들, 가장 다른 삶, 가장 다른 문화가 뒤섞여 있는 인도에서 나를 넓히고 오고 싶어 졌다. 제대하고 유럽을 가기로 마음먹었었지만 여행의 목적이 달라졌다. 멋진 풍경, 아름다운 건축물과 거리에서 나오는 감성은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더 이상 지금 나한테는 최우선 순위는 아니게 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