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신체에 인공지능이 탑재됐다. 식상하다 말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미래 기술이나 디스토피아적인 재앙과의 갈등부터가 아닌, 기술의 발전과 공생을 상당히 인정한 뒤 시작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걱정을 조금은 뒤로하고 싶어진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 역시 관객은 그 요소들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과 마주하게 되고, 거기다 ‘버디 무비’라는 장르적인 진행 방식을 통해 기시감을 가질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조금 다른,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는 것 같다.
일단 이 <블링크>라는 작품에서 안심했던 것은, 액션을 담은 장르 단편에서 불필요할 수 있는 요소들을 어색하지 않게 제거했다는 점이다. 조금 느슨해 보일지 몰라도, 액션이나 스타일적인 측면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명확하며, 주인공이 거대한 자본의 권력을 밝혀내고 홀로 대응하는 등의 설득 부족한 서사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의 신체 능력을 초인의 그것으로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그 자본의 권력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안일해 보일지는 몰라도, 단편은 장편의 축소판이나 요약본이 아니기에(굳이 할 필요가 없어 보일 수 있는 말이지만), 이것에 대한 작품의 선택을 문제 삼는 것은 불필요해 보인다.
출처 - wavve
물론 문제가 될만한 장면들은 존재한다. 지우(이시영)와 서낭(하준)이 군사 기밀에 접근하는 장소가 허허벌판이라는 점으로부터 시작해 주변에 어떤 군사 보안 장치도 없다는 것을 보면, 시간과 자본적 제약이 느껴지긴 하지만 다소 무리한 설정으로 보인다. 그래도 앞서 계속해서 보여준 진보된 기술과 상반되는 모습의 장소라는 점과 두 인물이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그 간극에 대한 평가의 순간은 조금이나마 지연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설득력 부족한 부분이 존재한다. 백중(민지민)의 존재가 드러나고 그의 목적은 귀신과 같은 AI를 탑재한 모든 이들을 없애겠다는 것인데, 말로만 듣는다면 이것에 대한 설득력은 확실히 떨어진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부분을 언급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작품의 시작부터 다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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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크>의 시작은 한가람 감독의 전작인 <아워바디>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주인공의 다져진 몸을 보여주며 적잖은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식으로 이 장르 단편을 설계했는지를 기대하게 될 텐데, <아워바디>라는 작품을 기준으로 그 ‘신체’라는 요소는 말 그대로 중심 ‘요소’이기에 굉장한 액션 영화가 아닌 이상, 작품이 그것에만 전적으로 의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주인공은 ‘이시영’이라는 배우이다. 그녀의 이미지나 전작인 <언니>를 상기해볼 때 <블링크>의 초반, 굳이 카메라의 시선이 수직으로 움직이며 운동하는 지우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고려해보면, 이 작품 역시 전적으로 배우의 이미지와 장점을 살려 액션의 향연을 펼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한 큰 아쉬움을 보여준 작품이 다름 아닌 <언니>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한가람 감독의 전작 <아워바디>에 대한 찬사의 중심에 선 것은 분명 ‘몸’이라는 키워드였다. 그렇기에 SF장르 속 배우 이시영과 만난 그녀의 새 작품이 더욱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고 예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아쉬운 결과일지 몰라도 이 이야기에서 이시영 배우가 연기한 지우는 예상했던 몸의 연기를 펼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은 AI인 서낭이다. 그리고 한가람 감독의 또 다른 단편작인 <장례난민>을 생각해보면, 이 장르에 대한 그녀의 선택이 그리 단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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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지우가 AI인 서낭을 만나게 되는 것은, <베테랑>과 같은 작품의 초반처럼 용의자에게 가하는 지나친 폭력 때문이 아닌, 오히려 상대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 것이 이유가 된다. 게다가 이어지는 액션 장면을 만족시키는 것은 서낭일 뿐, 오히려 지우는 그러한 상황을 최대한 회피한다. 때문에 이 작품은 장르적인 액션에 대한 기대감은 충족시키는 동시에, 한 배우를 이미지에 맞춰서 기능적으로 ‘활용’하는 우려는 막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우라는 인물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AI의 지나친 활용을 경계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가 맡게 된 것이 바로 그 AI이다. 흥미롭게도 AI의 이름이 '서낭'으로 설정되는데, 이는 지우의 언급대로 일종의 귀신이자, 수호신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AI는 지우의 기억 데이터 속 인물을 언급하며 그녀로 하여금 부모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결국 이 장면에서 서낭은 귀신, 즉 죽은 존재로 표현되며 지우의 부모를 그녀의 무의식과 관련하여 대변하면서도 그녀를 지킬 존재로 표현된다. 그러나 지우는 그를 거부하며, 이는 운전대를 잡지 말라는 것으로 충분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 태도는 카체이싱 장면에서 지우가 서낭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순간을 통해 흥미롭게 변화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영화 속)실존인물(지우)이 불신했던 가상인물(서낭)을 지키는 것과 반대되는 구조라는 점인데, 지우의 트라우마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를 상기해보면, 보호받기로 선택하는 것은 그녀가 과거 부모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면서 AI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주체적인 행위로서 표현된다.(덕분에 이시영이라는 배우의 캐스팅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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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장선에서 흥미로운 또 하나의 케릭터는 백중이다. 그는 이중성을 가진 인물로 본인이 AI를 통해 신체적인 능력이 향상됐음에도, AI라는 존재를 귀신으로 인지하고 이와 관련된 인물들을 제거하려 한다. 언급한 것처럼 이 행위의 당위성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AI를 불신한다는 점과 지우를 직접 마주한다는 점에서 백중은 그녀와 같은 위치에 놓인 인물로도 보인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서낭이 자리하고 있다.(백중이 AI를 '귀신'이라 말하는 것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해석된다.) 결국 구조적으로 지우는 서낭과 백중 사이에서, 즉 AI라는 기술 사이에서, 좀 더 밀고 나가면 AI로 인한 트라우마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액션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 남성이라는 점은 뻔해 보이지만 같은 성별이라는 것을 통해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인다.(물론 아쉽게도 신체적인 측면을 고려한 결과일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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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낭은 백중과의 싸움에서 이긴다. 그러나 언급한 구조적인 면에서 본다면 지우가 서낭, 또는 '변화'를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가람 감독의 전작인 <장례난민>과 <아워바디> 속 여성들이 끝에서 맞이하는 순간은 일종의 ‘성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블링크>의 지우 역시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며 비슷한 순간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이며, 끝에 흘리는 눈물은 영화의 시작에서 본 감정과는 달라 보인다.
이 작품의 에필로그는 버디 무비의 표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이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기술적인 진보가 자리 잡은 ‘미래’를 선택한 인물로부터 비롯된 결과라는 점에서, 장르적인 외피를 두른 이 작품의 설득력은 부족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