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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야 Feb 27. 2020

단편 영화 <캐치볼>

애초부터 그 고민은 틀린 것이 아닐까.

<캐치볼>

2015, 유은정 감독




 분명 장르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흔히 말하는 단편 영화임에도 장르 영화에 들이미는 잣대를 피해가지는 못할 텐데, 흥미로운 건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장점은 눈에 띄게 잘 드러난다. 이 영화의 편집이 바로 그것이다. 비교 작품들이 단편 영화인 점도 있겠지만, 이 작품의 편집은 놀랍다는 말을 하고 싶다. 특히 자동차에서 인물들이 승차한 뒤 출발한 뒤 제대로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편집은 ‘천의무봉’까지는 아니어도 그 이음매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또한 민영(원진아)이 혼자 차에서 지난날 밤을 회상하며 재구성하는 연출에서도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편집 덕분에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연출이 세련돼 보이는 효과를 얻게 됐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그저 이음매가 보이지 않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긴장감과 캐릭터의 특성들을 잘 보여줄 만한 부분에서 정확히 잘라내어 컷과 컷을 붙였기에 그 효과가 더욱 커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편집들 덕분에 후반에서의 약간 집중력이 떨어진 듯한 편집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이 작품 속 편집의 덕분이리라.


출처 - 네이버 영화

 말했듯이 이러한 장르 영화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편집이 있지만,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장르를 역으로 활용하는 듯해 보이는 점이다. 이러한 장르 단편을 생각해볼 때, 분명 어설퍼도 조금이라도 각인을 시키리라 애쓴 모습이 담긴, 두 명 이상의 배우가 벌이는 액션이 나오길 걱정하면서도 기대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힘을 들이지 않는다. 또는 이제 조건 반사적으로 누군가의 불편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 자체가 불편해질 정도의 성차별적 대사나 행위를 통해 굳이 갈등을 더 넣는 장면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런 것도 없다. 그런 면에서 ‘원진아’배우에 대한 캐스팅은 꽤나 흥미로워 보인다.


 흔한 갈등을 기반으로 한 외모적 기대감과 우려감을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게 한 것을 보면 분명 시나리오에서부터 부차적인 것들을 모두 가지치기 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 영화는 친절하게도(?) 오로지 이 자살 사건을 파헤치려는 한 캐릭터의 이야기만을, 그 갈등만을 안고 전진하고 있다. 또한, 차에 앉아있던 여러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종이 위의 그림, 기억을 통한 플래시백, 그리고 연출을 통해 정보를 주면서도 순간순간 캐릭터의 고뇌를 둘러싸고 있는 긴장감을 계속해서 유지한다. 덕분에 갈등이 장르적이고 기능적으로 보이지 않고, 일종의 죄의식을, 그것도 가족과 관련된 죄의식을 갖게 된 민영이 어렸을 때부터 영향 받아온 성향과 결합되어 능동적인 행동을 하며 스스로 갈등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때 역시 기능적인 갈등이나 쓸데없는 장르적 장치(깜짝 놀라게 하는 등의)를 불러내지 않는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게다가, 반 이상의 관객이 기대할 법한 그 흔한 후반의 반전도 여기서는 만날 수 없다. 오히려 그 의심이 더욱 맞아떨어지면서 그 과정을 통해 안정된 긴장감과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는 의도가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이렇게 꺼림칙한 뒷맛 없이 한 방향으로 전진하는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집중을 좀 더 요구하는 단편에서 더 바람직한 자세를 갖게 하며, 의도한 바를 더 쉽게 알게 만드는 듯 보인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장점들은 어쩌면 기술적이 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그런 기술적인 장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왜 이 작품을 좀 더 응원하고 싶은지, 왜 유은정 감독의 작품들에 눈길이 가는지를 좀 더 설득해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첫 장면과 끝부분에서 민영과 민상(허정도)이 서로 마주한 것을 상기해보면 제목 역시 훌륭히 자신의 역할을 했다. 캐치볼, 서로 공을 주고받는 방식인데, 이것은 어찌 보면 서로 공격과 방어를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첫 장면의 끝처럼 동등한 위치에서 끝날 것 같던 그 게임은 패자와 승자를 만들고 끝이 난다.


출처 - 네이버 인디극장

 이제 연출적인 부분을 언급하려 한다. 민영과 지완(최민우)이 휴게실에서 조사를 마친 뒤 어두운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 감각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좋은 장면이기도 하지만, 직후에 지완이 민영에게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 있다. 이때 “우리 오빠 같은 사람들, 싫죠?” 민영의 대사이다. 그런 그녀에게 지완은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준다. 밖은 같은 어둠이 깔린 밤이지만 가로등의 불빛이 열린 문을 통해 그녀를 비춘다. 문을 열기 전까지, 이야기는 두 사람 역시 같은 일종의 피해자의 위치에 있다고 말하듯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지완은 민영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문을 열며, 처음부터 같은 위치에 놓인 사람이 아닌, 처음부터 일종의 '갑을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기에 어떻게 자신들의, 그 어둠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마음을 알 수 있냐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영화 역시 두 사람의 다른 위치를 빛을 통해 보여준다. 설령 그것이 영화의 처음부터 보여준 자연광이 아닌, 만들어낸 빛임에도, 그 차이는 마치 빛과 어둠과 같다. 그녀 역시 그의 태도를, 그의 대답을 이해한 듯 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나온 그녀는, 즉 그저 어둠이란 것을 이제야 한 번 경험해 본듯한 그녀는 여전히 그녀의 오빠인 민상이 한 짓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그녀는 어둠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위치에 내려가지 않았다. 설령 같은 어둠에 있었어도 다른 위치였던 것이다. 그것을 본 지완은 처음부터 '물통은 차 안에 있었다'고 말한다.


출처 - 네이버 인디극장

 이 대사는 일종의 장르적 반전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 대사 자체 역시 의미심장해 보인다. 또한,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 반전을 이미 안다고 해도 이 작품의 성취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사를 조금 더 생각해보자. 민영은 처음부터 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어둠 속 노동자들의 상황을 잘 모르고 있는 무지한 존재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조금 더 나아가보자. 그녀가 알고 있는 물통의 위치는 차 안이 아닌, 그보다 더 아래에 있는 차 밖이다. 경찰을 준비하는 그녀,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를 위해 경찰이 되려 한 것처럼 말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노동자들의 위치는 차의 바깥, 더 낮은 위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물통 주인의 위치처럼. 그런 그녀에게 지완은 어둠 속에서 조금 나와 물통은 차 안에 있었다고 충고하고 있다. 그 차이는 당신의 착각이라고. 경찰이 되려는 당신도 당신의 오빠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본다면 마지막에 그녀가 경찰 공무원 시험 문제집들을 태우는 것은 역시 의미심장해진다.


 해가 떠오르지 않은 새벽, 그녀가 그간 자신의 선택이 남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온 것들은 '위선'이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문제집들을 태운 그 시간이 햇빛도 없고 가로등 불빛도 없는 새벽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선 그녀는, 타오르는 위선을 뒤로하고 이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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