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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야 Feb 29. 2020

단편 영화 <신기록>

목격자들과 관찰자, 버팀과 버팀목.

<신기록>

2018, 허지은, 이경호 감독


 어쩌면 너무 단순하고 ‘단편 영화스럽다’라는 말이 나올 법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특히 사회적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말하고자 하는 이들과 그것을 보고 듣고 싶은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날수록 비슷해 보이는 이야기가 나오는 현상을 적지 않게 목격할 수 있기에, 이 영화의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모든 것을 설득해내고 있다. 그것이 시나리오나 마지막 장면과 같은 기술적인 방식으로뿐 아니라 연출을 통해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태도까지 묻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간편한 방식은 그 문제로 대표되는 일종의 악당을 만들어내는 것일 텐데, 이 작품에서 그 역할은 분명 소진(이태경)에게 계속 연락을 해오는 한 남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그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주변 인물들의 말이다. ‘몸이 좋다’는 말이나, ‘나쁜 사람 같진 않던데’와 같은 대사는 오히려 조금 더 긍정적으로 그 남자를 묘사한다. 그러나 소진의 입장은 다르다. 그렇다면 소진이 판단이 잘못된 것일까. 물론 제삼자는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진의 판단이 오해가 아닐 가능성을 크게 만드는 것은 그녀의 행동들에서 드러난다. 준비 중인 공무원 시험을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악력기를 놓지 않는 행동과 집 주변에 사는 고양이들을 위해 직접 사료를 준비해가는 행동 등을 통해, 판단에 있어서 큰 오해가 없을 만한 인물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준비하는 시험이 경찰공무원이라면, 평균적인 여성보다는 좀 더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주변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 지켜낼 수 있어 보이는 위치에 있기에, 이러한 인물조차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현숙(정경아)은 어떤가. 일단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일종의 ‘연대’의 이미지는 분명 두 인물이 서로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한 뒤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소진과 현숙은 서로의 불안함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추측 정도만 가능할 뿐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물론 현숙의 팔목에 난 상처가 추측을 돕는 하나의 증거가 되겠지만, 이것 역시 단편적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의 만남에는 어떤 것이 작용한 것일까. 말한 것처럼 그것은 ‘불안함’이다. 그리고 현숙의 그 불안함을 소진이 무의식적으로 추측을 하게 되면서, 가정폭력을 겪는 현숙의 모습이 영화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그런 그녀의 오래 매달리는 행동, 여기서 이 행위는 턱걸이처럼 팔의 힘으로 일정 높이 이상으로 올라가는 행동이 아닌, 팔을 들어 매달린 그 상태로 있는, 그 ‘버티는’ 행위라는 것이 또한 중요해 보인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그녀의 행동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늘 불안함에 갇혀 생활하고 있어 보이는 그녀의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하므로, 이질감보다는 궁금증에 가까운 태도를 만든다. 그렇게 소진은 현숙의 불안함을 목격하게 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결국 두 사람은 철봉 앞에서 마주한다. 이때 소진은 철봉에서 곧바로 떨어진 현숙에게 좀 더 쉽게 매달리는 방법을 말해주는데, 그러나 이내 현숙은 손을 원래대로 바꾼다. 하나의 선택밖에 할 수 없는 현숙, 영화는 이 순간 음악과 함께 현숙의 멍든 팔목을 보는 소진의 시선을 보여준다. 이때 철봉이라는 한 프레임 안에 있는 두 사람이 담긴다. 그러나 곧 소진은 옆에 있는 또 다른 철봉으로 손은 뻗으며 함께 있던 프레임에서 빠져나온다. 선택할 수 있는 이와 선택지가 없는 이, 또는 올라갈 수 있는 이와 버티기밖에 할 수 없는 이, 이 차이는 그 두 사람이 쉽게 서로를 이해하고 도움의 손을 내밀기 힘들게 만든다.


 결국 ‘오래 버티기’만을 해온 현숙은 늘 해왔듯 아파트 난간에 매달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소진은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곧바로 아파트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일종의 반전처럼, 또는 장르적으로 보일 수 있는 현숙의 매달림, 그러나 영화는 매달린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순간 현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녀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소진밖에 없기에. 그렇게 같은 프레임에 담기지 못했던 두 사람의 손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긴다.


출처 - 네이버 인디극장


 이 영화는 사회적 문제를 상정하고 그것을 영화화하는 방식에 있어서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물의 행동들에 캐릭터 형성을 위한 모습만을 담지는 않는다. 덕분에 영화는 기능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고, 돌출된 부분 없이 이야기의 경제적인 힘까지 갖는다.


 소진과 현숙 두 사람의 마지막 장면 역시 이 작품은 성숙하게 그려낸다. 한 사람의 손이 다른 한 사람의 손을 붙잡은 순간마저도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삶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러나 둘은 서로의 삶에 있어서 그 불안함을 목격했으며 ‘버팀’의 공간에 함께 자리했다. 그렇기에 서로를 보는 시선에 위치하는 것은 단순한 연민의 감정만은 아닐 것이며, 구제보다는 일종의 연대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 역시 <신기록>은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다. 소진이 현숙이 매달려 있는 순간을 보는 것은 아파트를 나와서다. 말했듯이 이때 카메라는 매달려 있는 현숙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현숙의 위치를 오히려 소진보다 위에 놓는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소진이 현숙을 ‘구제’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소진은 힘을 써서 올라갈 수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 차이가 크지 않더라도 소진은 현숙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올라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소진인 것처럼,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는 것은 현숙이다. 때문에 작품의 제목인 ‘신기록’은 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결국 현숙을 향한 소진의 구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변화시켰으며 오히려 소진 자신에 대한 구제로 돌아온다. 다시 말해 이 도움은 공감 없는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고, 나아가 손길을 내미는 그 행위 자체가 자신에게 내미는 또 다른 손길이 된다. 이렇게 이 작품은 도움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우리 사회의 ‘태도’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있다. 한국 단편 영화에서의 ‘이경호’와 ‘허지은’ 힘을 장편에서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이 <신기록>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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