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서울에도 오로라가 뜬다>

섬광 같은 연출, 하루라는 기적.

by 환야

<서울에도 오로라가 뜬다>

2021, 이현경


*해당 영화는 현재 '퍼플레이' 가입을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purplay.co.kr/streaming/movie/415/intro





하나의 작품이 몇몇 장면이나 대사, 편집, 설정처럼 특정 요소로 기억되는 건 단편영화의 특성 중 하나이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힘을 과시하는 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에 근원적인 한계가 있고,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설정과 의도를 보여주기엔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정 요소가 바로 단편을 만드는 동력이자 시작점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것만 바라보고 강조하는 경우 대개 작품은 균형과 설득력을 잃는다. 그렇기에 창작자는 연료로 삼은 작품의 핵심을 보여줄 뿐 아니라 전반적인 완성도 역시 높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넘어 작품이 갖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특정 요소에 의지하거나 매몰되지 않는 단편 중 하나가 바로 <서울에도 오로라가 뜬다>로 보인다.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하면서도 감정 과잉에 빠지지 않고, 작은 갈등이나 사건을 발판으로 삼아 이야기의 힘을 유지하며 의도한 바를 모자람 없이 보여준다. 또한 카메라의 거리 유지와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흥미와 긴장감을 더한다. 게다가 감독 이현경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창작자의 정체성, 그리고 작품 속 색감 등을 통해 작품의 일관성을 담아낸다. 어쩌면 이 글은 <서울에도 오로라가 뜬다>를 알아보는 것에 더해, 연출자 이현경의 작품 세계를 작게나마 조망해보려는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1.jpg 출처 - 퍼플레이

지속성과 정체성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위해 미술적 선택은 보통 색감이다. 소품과 렌즈 필터 등을 통해 색감을 조성해 관객의 무의식을 건드려 해당 작품만의 시각적 특색에 힘을 더한다. 하지만 많은 연출자들의 부족한 식견이나 지나친 자의식은 작품의 정체성을 오히려 퇴색시켜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에 닿기도 한다. 이는 단편뿐 아니라 장편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특히 후반 색보정 과정에서 과도한 파란색이나 초록색에 기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색감이 과도하니 눈은 피로해지고, 작품의 정체성은 질적 평가에 밀리고 만다.


<서울에도 오로라가 뜬다>가 가진 정체성 중 하나이자 색감은 분명 초록색이다. 제목과 작품 초반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를 시각적으로 의도한 것인 동시에, 작품 곳곳에 배치되어 인물의 시점에서 희망을 상징한다. 그럼에도 이는 과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해당 상징성과 관련 없거나 서사를 위한 장면에서는 해당 색감이 배제되고,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와 대비되는 색을 활용하여 긴장감을 높인다. 결국 선택한 색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색감을 어떻게 적절히 활용해야 작품의 정체성을 강조할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이리라.


2.jpg 출처 - 퍼플레이

또한 해당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정체성은 카메라의 움직임과 거리이다. <서울에도 오로라가 뜬다>와 이현경의 전작인 <어떤애와 다른애 그리고 레이>의 특징은 픽스샷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공간의 특성과 롱테이크 등의 선택 때문에 인물과의 거리 역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지만, 그 거리를 시종 유지하여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는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 각본 덕분이기도 하지만, 인물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낼지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서울에도 오로라가 뜬다>에서 주인공 한울(이현경)이 돈을 벌기 위해 움직이고 일종의 희망을 갖는 모습을 카메라는 정면에 담는다. 반면 불안하거나 가장 감정적으로 고조된 순간 카메라는 그의 뒤쪽에서 응시하며 감정에 의지하지 않는다. 이는 그의 전작인 <어떤애와 다른애 그리고 레이>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 결국 가장 감정적일 수 있는 촬영을 선택하면서도 서사가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 방법을 통해 자신만의 연출적 정체성을 담아낸다. 흥미롭게도 이현경의 또 다른 작품인 <사라>에서 인물과의 물리적 거리는 늘어나지만 감정은 오히려 강조되며 연출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사하기도 한다.

3.jpg 출처 - 퍼플레이

서사와 균형


<서울에도 오로라가 뜬다>의 특징이자 장점은 일관된 촬영 등에서 비롯된 정체성도 있지만, 서사와 맞물리는 균형이기도 하다. 언급했듯 단편영화는 대부분 특정한 하나의 요소로 시작해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이외의 것들이 매몰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특정한 사건일 수도 있고, 감정일 수도 있고, 촬영이나 인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에도 오로라가 뜬다>는 특정 사건에 의지하지 않고도 계속해서 서사를 주체적으로 이어나간다. 한편으로 이는 각본 단계에서 평면적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7시라는 시간제한을 두어 서사의 마무리를 언급하고, 동적인 촬영을 활용해 지루함을 줄인다. 이로써 관객은 영화가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유보하게 된다.

4.jpg 출처 - 퍼플레이

<서울에도 오로라가 뜬다>는 한울이 이사할 집을 알아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연락한 공인중개사를 만나기 위해 헤매고, 집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도 먼저 차지하려 하고, 보증금을 위해 집주인과 가까스로 만나는 작은 갈등과 해결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그저 이사라는 조금 특별한 일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촬영과 연출에 있어서 다양한 선택을 통해 각 순간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그 안에서 아이러니한 순간을 언급하며 절망과 희망의 균형을 이어나간다.


익스트림 클로즈업부터 롱샷,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정확한 픽스샷은 균형적인 촬영을 위한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다. 액자 속 오로라와 아파트 창밖의 노을은 이상과 현실에 대한 괴리가 되고, 똑같이 높지만 힘들게 올라야 하는 달동네의 집 역시 그녀의 상황을 아이러니하게 표현하며 서사의 깊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5.jpg 출처 - 퍼플레이


마지막에 잃어버린 돈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순간 역시 절망과 희망이 뒤섞이지만 일상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서울에도 오로라가 뜬다>의 목적은 결국 일상이라는 경계를 확인하는 것에 있다. 영화의 시작에서 한울은 오로라의 조건을 언급한다. ‘완벽하게 어둡고 특별하게 맑은 하늘’에 오로라가 생기듯, 절망과 희망을 왕래한 하루의 끝에서 하늘을 보게 된 한울이 마주한 것 역시 오로라와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오로라를 보는 것과 같은 기적이 아닐까.


7.jpg 출처 - 퍼플레이


연출자 김현경의 서사와 연출은 단편의 영역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새긴 것으로 보인다. <어떤애와 다른애 그리고 레이>에서는 어둠을 인식하기 시작한 이들을 만났고, <서울에도 오로라가 뜬다>에서는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이 본 어떤 섬광을 보여주었으며, <사라>에서는 그 터널을 나와 다시 빛을 어떻게 볼 건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제 김현경의 시선이 닿을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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