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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야 Mar 04. 2020

단편 영화 <오늘의 자리>

동력의 손실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2017, 허지은 감독


  <오늘의 자리>는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갈등을 여성의 시점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단편 영화라는 틀을 갖고 있어 장르적인 방식으로 표현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창작자의 자의든 타의든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장르적인 문법을 그럴듯하게 사용한 장면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사회 문제를 다루는 영화의 돌출적인 장면이 될 뿐 아니라 착취의 손길이 되거나, 그런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의 ‘휘파람 소리’가 관객으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될 가능성이 적잖아 보인다. 다시 말해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 인물의 실제 삶을 따라가 사회적인 문제를 드러낼 때, 현실과 맞지 않는 듯한,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등을 삽입하여 판타지적인 요소를 만든다면, 이것은 장르적이지 않을 필요가 있는, 특히 이러한 단편 영화에 있어서는 설득력이 상당히 감소할 여지를 제공한다. 아마 그간 상당수의 단편 영화들의 한계점들 중 하나가 이것이리라. 그렇게 이 작품 속에서 휘파람이 들려오는 장면은 영화 속 아쉬운 지점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내용이 진행되며 이것은 조금씩 설득력을 갖는다. 다시 말해 자칫하면 영화 전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이 요소는 이 작품의 핵심과 닿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사실 <오늘의 자리>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영화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취업에 관한 이야기, 거기서 마주하는 절망의 모습들, 그리고 또 잃어버린 희망. 그렇기에 이제는 해야 할 이야기가 아닌,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 또는 다른 이들도 하고 있지만 수많은 통계과 사연들이 설득의 장을 만들어 놓아 가장 ‘할 만한 이야기’나 ‘만만한 이야기’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덕분에 이런 경우 연출에서도 특별함을 찾기는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는 <오늘의 자리>를 보고 난 뒤 말할 것이다. “이 이야기도 그렇지 않은가.” 물론 마지막 장면까지 본다면 분위기마저 그렇게 표현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누구나 이해할 만한 사회적 설득에 기대는 영화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이나 장르적 요소에 의지하지 않는다. 곧 결혼하는 지원, 그러나 그것은 육아 휴직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문제로서, 갈등의 긴장감을 조성할 뿐이다.(영화의 중반을 지나 취업의 고단함이 연인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지 않은가.) 또한 희망 하나 없는 절망감이 또 하나의 예시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간 지원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는가. 많은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분명 그녀에게는 아직 임용고시가 남아있고, 면접을 본 학교의 기간제 교사의 위치에서 노동은 가능하다. 이와 함께 그녀의 모습은 모든 것에 절망을 느낀 자의 부동(不動)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어딘가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의도는 무엇인가.


출처 - 네이버 영화

 말한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 없는 이의 허탈한 모습은 이런 영화에서 어렵지 않게 예상 가능하며, 그 모습이 가장 어울릴 장면은 약혼자의 전화가 오는 차 안일지도 모르며, 그 순간 주인공의 클로즈업 샷 역시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물론 점심시간이라는 시간적 제약이 있기에 당연한 목적지이겠지만, 학교에 도착하는 것은 캐릭터의 선택이 아닌, 이를 선택한 영화의 의도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지원은 두 여학생을 만난다. 그녀가 담임을 맡은 반의 아이들로 보이는데, 그중 한 명이 지원에게 내년에도 담임을 맡아달라 말한다. 미소짓던 지원, 그러나 이내 뒤를 돌아 걸음을 옮긴다. 물론 그녀가 내년까지 같은 학교에서 가르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그렇다고 그녀의 모습이 너무 정이 많이 든 누군가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 절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녀의 외면과 눈물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그것에 대한 설명이 영화의 의도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시작하며 우리는 지원이 면접을 위해 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본다. 이때 동료 교사가 들어와 그녀에게 이번 시험에서는 합격하라며 선물을 건넨다. 그리고 어딜 가냐고 묻는다. 잠시 머뭇거리는 지원, 영화는 지원의 대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잠깐의 망설임, 이것은 분명 지원이 느끼는 미안함을 기반으로 한 당황스러움일 것이다. 즉, 선물과 함께 드러나는 일종의 ‘죄의식’이다. 우리에게, 그녀와 같은 이들이 이처럼 미안함을 기저에 둔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 안타깝고 답답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쯤은 겪어 본 ‘힘없는 자의 모습’이기에 과거 또는 현재, 더 나아가 어젠가 있을 우리의 모습으로서 공감하게 된다. 즉, 이 ‘죄의식’이, 언급한 휘파람 장면과 마지막 지원의 모습을 이해하고 영화의 의도를 파악하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첫 휘파람 소리는 언제 들려왔는지 상기해보자. 지원의 은사인 정만이 그녀에게 사제관계였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고, 자신을 많이 도와줘서 든든했다는 그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두 번째 휘파람은 지원이 정만에게 과거 자신의 ‘롤모델’이 그였다고 말할 때이다. 세 번째는 지원이 면접을 본 자리가 정교사의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이다. 마지막 휘파람 소리가 들리고 지원이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자 한 여학생이 창문 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휘파람을 불고 있다.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 소녀가 과거의 지원임을 보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휘파람 소리와 교복을 입은 지원의 모습과 함께 ‘과거의 지원’이(오히려 더 정확히는 지원 스스로 무의식적인)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신호들이 들려올 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종의 ‘어긋남’으로 보인다.


 누군가를 든든하게 도와주던 과거와의 어긋남, ‘롤모델’과 같은 위치에 오르지 못할 것 같은 상황에서의 어긋남, 그리고 과거의 자신이 기대했던 꿈과 현실의 어긋남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지원이 과거의 자신이 보낸 신호를 통해 그 어긋남을 인식하고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분명 현재의 본인 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앞서 말했던 죄의식과 같다. 늘 국어 교사가 되겠다던 꿈 많던 소녀의 바람을 현재의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깨닫고 그녀는 일종의 죄의식을 마주하게 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한숨만 남은 정만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점심시간이 끝난 뒤 지원은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그리고 두 여학생을 만난다. 이 두 여학생을 보기 전, 우리는 또 다른 여학생들의 존재를 인식했다. 그중 한 명은 과거의 지원이다. 나머지는 정만이 고함을 친, 두 명 이상으로 추측되는 여학생들이다. 이때 그의 고함은 지원이 회상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동시에, 모습이 보이지 않는 여학생들을 도망가게 한다. 그리고 정만은 ‘수업시간’이라는 단어를 언급한다. ‘수업시간’이라는 이 언급을, 우리는 두 여학생을 마주한 지원의 입으로 다시 듣게 된다. 그 순간 정만이 고함을 쳐 도망한 두 여학생을 다시 돌아온 것처럼 영화는 설득하고 있다. 그리고 고함이 있기 전, 한 여학생의 모습은 지원이었기에, 어쩌면 영화는 지원이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과 마주한 지원, 이때 한 여학생이 그녀에게 내년에도 담임을 맡아달라고 말한다. 내년에는 어떤 곳에 서 있을지 자신도 모르는 지원은 섣불리 그 학생의 기대감을 더 크게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자신과의 약속이 돼버리며, 시간이 지난 뒤의 그 어긋남은 또다시 죄의식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기에.


 우리의 포기는 단순한 실패에서 기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실패의 반복도 생각보다 큰 요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실패의 순간에 마주하는 것이 죄의식이 된다면, 우리의 나아감을 저지하는 것은 없어진 희망이 아닌 커져버린 절망감이다. 이 작품 속 지원에겐 희망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연히 마주한 과거의 자신을 통해 죄의식을 얻게 된 것이다. <오늘의 자리>를 통해 보여준 감독 허지은의 시선은,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바뀌어야 할 단편작들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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