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상

by 햇쌀

인사동 길을 따라 올라가니 청동 소녀상이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소녀상을 보자, 북서울 미술관에서 본 설치 미술이 생각났다. 설치 미술가 서현석 작품인 천사 조각상에 대한 기억이 포개졌다. 어둠침침한 큰 공간에 천사 조각상을 쓰러트려 놓았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었다면 더 흥미로웠겠지만 나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니, 천사가 사명감을 잃고 쓰러져 있다니... 문득 쓰러진 천사를 일으켜 세우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것 같다. 비슷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어딘가 있다고 하듯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디나 있나 보다. 그것도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 있는 사람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그 천사 조각상이 똑바로 세워져 있었다. 무게만 해도 상당한 것을 누가 세워놓았을까. 놀란 사람들이 씨씨 티브이를 돌려보았더니, 아버지와 아들이 낑낑대며 조각상을 세워놓고 있었다. 미술관 측은 다시 천사를 쓰러트려 놓았다."


일으켜 세우고 쓰러뜨리고를 반복했다는 말도 있고, "눈으로만 보세요" 란 팻말에 중단되었다는 말도 있다. 부자가 일부러 그렇게 설치한 걸 모르고 선의로 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 화제 자체가 전위예술 같기도 하고, 무슨 퍼포먼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의도했던 아니던 주제가 '미완의 폐허'였던 전시회는 방문객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청동 소녀상에 마스크를 해주고, 한겨울에는 직접 손으로 짠 목도리를 둘러주고, 땡볕에 얼굴을 그을릴까 봐 모자를 씌워주고 하는 퍼포먼스는 어떤 주제의 제목을 붙이면 좋을까.(노예라는 의미를 승화시켜 줄)


평균 나이 90을 넘어가는 생존한 할머니들은 하나둘 사라져 가도, 과거의 기억과 공간을 연결하는 퍼포먼스는 두둠칫 엇박자를 타고 이어질 것 같다. 드럼을 이용해 내는 림샷(rim shot) 중 하나인 두듬칫은, 엇박자 "대~한민국"처럼 한 번만 들어도 금세 익숙해서 무겁지 않은 숨이 쉬어진다.


1919년 4월 11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되었다. 어느덧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그동안 근대화의 거친 풍랑이 몇 차례 지나며 우리의 삶과 인식의 변화도 컸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의 물결을 느끼고 시각성의 확장을 살펴보기 위한 퍼포먼스로써 소녀상만 한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두듬칫 두둠칫,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시위에 천사가 어두침침한 구석에서 일어나서, 소녀상 옆에 놓여 있는 빈 의자에 와 앉을 것만 같다. 빛이 된 할머니들이 소녀상을 살포시 쓰다듬는가. 빛살 같은 햇살이 쏟아진다. 그 햇살에 한반도의 혼을 이어받은 소녀들이 퍼포먼스한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비언어적 퍼포먼스를.

생각에 따라서는 장구소리 같기도 북소리 같기도 한 림샷에 맞추어 상모가 돌아가고, 탈을 쓴 머슴도 양반도 연지곤지 찍은 각시탈도 버선발을 휘돌아 올리며 날아오를 듯 가볍다는 상상.


사회적 분위기가 어두울수록 시위는 더 빛을 내며 이어질 것이다. 지난주 수요일 오후에는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되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서이다.(제1435회,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란 제목으로).


인간은 존엄하다. 엄연히 존재했던 뼈아픈 역사다. 퍼포먼스는 한 박자 숨을 고르고 진실과 정의 구현의 그 날까지 이어지리라.

'미완의 폐허'에서 쓰러진 천사상을 일으켜 세운 것은 인간의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연민이나 관심만은 아니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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