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물선, 마주보기>>
운동을 하러 나가려고 대문을 열었다. 문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다.. 언제부터 나를 기다렸는지... 발송처는 파주였다.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박스를 들고 들어와 열어보았다. 설렘으로 손끝이 잔잔하게 떨렸다. 그 속엔 방금 세상에 나온 따끈따끈한 체온의 책이.... 포근한 뽁뽁이 이불을 덮고 있었다.
한 권 집어 들어 가슴에 대어보았다. 태동이 느껴졌다. 책을 펼쳐볼까 하다가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집안의 조명을 모두 밝혀 두고 운동 나갔다.
집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얼굴이 내내 달아올랐다.
출판사에서 이런 류의 메일을 참 많이 받았다.
" 다음 기회에 더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건승을 기원한다."라는.
처음엔 이런 답장도 읽씹 하는 메일보다 예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고맙고 반갑기조차 했다. 하지만 이런 메일이 반복되자 자존감이 급속하게 떨어졌다. 메일함을 열어보는 게 겁났다.
'할 만큼 했어...' 이제 욕심을 버리자. 기획출판은 포기하자고 마음을 내려놓았던 그 시점이었다. 두 군데 출판사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나에게 선택이라는 것이 주어지다니....
"고맙습니다..."로 시작하는 답장 메일을 보내고,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손등에 입을 대 보았다. 입술은 입술대로 손등은 손등대로 서로 느낌이 있었다. 문 앞의 택배 상자를 보던 순간도 그때 그 심정과 다르지 않았다.
출간 기획서를 꺼내보았다. 수 십 번 고치고 다듬었던 것을 다시 천천히 집중해서 읽어 보았다.
처음에 세웠던 이정표를 따라갔는가. 목표를 잊지 않고 기획서대로 길을 갔는지, 큰 주제와 작은 주제대로 책이 만들어졌는지.... 머릿속에서 다시금 복기해 보았다. 교만인지 망각인지 정작 퇴고 과정에서는 돌아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샛길로 빠지지는 않았는지... 왜 이제야 두려움이 밀려오는가. 읽어 내려가는 동안 긴장해서인지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휴~ ~ 안도의 숨이 나왔다. 스스로 내가 고마웠다. 편집자와 주고받은 메일 등 지난 시간을 되돌려 보았다. 잘 되었다면 다 그녀 덕이다. 훌륭하고 융통성 있는 편집자였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듯.
치열하게 살았던 2020 여름. 퇴고를 백 번 넘게 했을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느 때보다 조용한 세상에서 마음이 매일 뜨거웠다. 억지로라도 고요와 평정심을 찾아야 했다. 가슴에 와 닿는 단어 하나는 몰두했을 때 찾아온다. 즐겼을 뿐이라해도 고질병일지 모른다. 평소보다 운동을 더 많이 더 열심히 했다. 그런데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져서 손에 두드러기가 돋기 시작했다.
"피곤할 땐 운동도 쉬어." 따끔하게 조언해준 고마운 벗. 무엇이든 과하면 탈 나기 마련아닌가. 병원에 들러 나를 돌아보았다.
누구나 일 년 사계절 중 특히 마음이 편안한 계절이 있다. 낙엽 냄새와 사과 냄새 인듯한 향기가, 그 선선한 공기의 흐름이, 마치 내 몸을 순환하는 온화한 피처럼 느껴지는 계절이 내겐 가을이다. 역동하는 봄도 아닌데 생기가 있고 활발한 기류를 느낀다. 탯줄 자른 계절이라 그런가...
가을, <포물선, 마주 보기>라는 제목을 달고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포물선을 마주하면서 인생 포물선을 돌아본 글이다. 부제는 출판사가 보내온 다섯 개의 문구 중에서, 20대 청년이 선택한 것을 썼다. 제목이 나오기까지 친구 선배 등 가까운 지인들을 몹씨도 귀찮게 굴었다.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참고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득 복학을 기다리고 있는 아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오지 선다형 같은 다섯 개의 문구를 보여주었더니, 망설임 없이 "바로 이거지" 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다짜고짜 점찍은 5번째 문구에 나도 마음이 꽂혔다. 그 문구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어 인생입니다."였다.
나는 아들의 선택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짠해왔다. 얼마전 친구와 동업해 보겠다고 상가를 계약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청년 사업자금 대출해서 갚겠다고 손을 벌렸다. 그런데 코로나 경보 수위가 올라가자 보증금만 덜컥 잃고 우울해 있는 현 상황이다. (그 사연은 시간이 좀 흐른 뒤 정리해 보련다).
나의 이십 대은 물질적 정신적으로 어려웠어도 전반적으로 발랄했는데.... N세대는 N가지 어려움이 더해지는 것 같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어느 세대나 변해가는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절망도 경험이고 시행착오도 필요하다.....
따끈한 책과 좋은 음악을 같이 듣는다. 밥도 함께 먹는다. 산책도 같이 간다. 잘 때도 곁에 두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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