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봐야 글이 잘 써질 거 같아

by 햇쌀

BTN 화면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댕댕댕댕댕댕댕... 끊임없이 이어 질 거 같은 종소리. 33번 울렸다. 안방에서 조용히 새해를 맞이했다.

자명종을 새벽 4시에 맞춰 놓고 잠을 청했다. 신축년 첫날 계획은 4시에 일어나 동해안 일출을 보는 것이다. 자동차로 동해나 양양 쪽으로 가서, 속초 쪽 해안도로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자동차 안에서 해맞이를 해보자는, 다소 무리하지만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눈을 감고 출렁이는 바다를 가르고 휘황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상상했다.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을까. 눈꺼풀 속에서 내일의 바다를 향해 조용히 배를 띄웠다. 그리고 요즘 들어 이상해진 기상이 갑자기 날씨가 눈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

여하튼 새해 첫날 4시에 눈을 뜨고는 있었다. 커피도 마시지 않았는데 어느 때보다 정신도 말똥말똥했다. 창문으로 전해오는 찬 공기의 기운도 다른 때와 별 다름을 느꼈다. 차가워서 신선한 것이 수박이나 아이스크림뿐만은 아니다. 억지로라도 새해의 새 기운을 느끼며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인가.

그런데 TV를 켜자 심리적 출발선에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일출 명소 출입통제선. 적막한 사회 공기. 썰렁한 상가 등등.

계획을 변경했다. 새해 첫날 떡국을 끓여 가족과 먹으며 차분히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강아지 산책을 시켰다. 저녁에 가까운 산에 갔다. 그리고 고즈넉이 첫해가 산성을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당분간 건조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는 FM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무작정 떠나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예상 못한 돌발적인 상황에 부딪혀 그때그때 대처해 나가는 여행은 이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애초부터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딱 20시간 전, 그러니까 작년 저녁때, 아들과 했던 짧은 대화가 멀리 노을에 물든 구름에 포개졌다.

"엄마 말이야... 내일 동해안으로 해맞이 갔다 올 거야."
"어? 이런 때 뭐하러..."
"그게... 해를 봐야 글이 잘 써질 거 같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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