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동안 꽁꽁 얼었던 황매목黃梅木, 단향매檀香梅가 일찌감치 몸을 푸는 곳. 춘천春川에서 옛벗을 만나고 서울로 올라가다, 김유정역에 잠시 발길이 머물렀다. 동행이 있었다. 겨드랑이 배내털이 부숭한 로코도 캔넬에서 나와 한껏 기지개를 켰다.
떡시루처럼 움푹한 마을(증리)을 병풍처럼 둘러싼 금병산. 움츠러든 마음도 아지랑이처럼 풀어 줄 것 같은 넉넉한 산세를 지녔다. 산을 바라보며 한껏 흐드러지고 싶은 향수를 꺼냈다. 갈비뼈 깊숙한 곳에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제 일 같기도 한 배냇 털 같은 기억, 아슴한 풍경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김유정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나 보다. 아릿한 향을 응축하고 있는 노란 동백 꽃망울(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노란 동백이라 칭한다)이 먼저 눈에 띈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떤 숙명이 이런 꽃망울을 열리게 할 수 있을까. 스물아홉의 고독했고 짧은 인생이 헛되지 않은 생이었다고, 뭇사람의 발길을 잡아 끄는가 보다. 동네로 들어서는 몇몇 등산객이 보였다.
담벼락을 넘어 하늘을 배경으로 가지마다 멍울진 동백 꽃망울이, 초가지붕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눈 녹은 물 같았다.
볏짚 대롱을 따라 살며시 물이 열렸다가 똑똑 떨어지는 봄. 봄. 봄.
이토록 가슴이 아리어 오는 것은 무엇을 느꼈기 때문일까. 금병산 자락에 있던 할아버지의 유택 자리를 눈으로 더듬어 본다. 해마다 두 번씩 유택을 찾았던 아버지도 얼마 전 그 뒤를 따라가셨다. 흑백 사진 속의 그림자가 적삼 깃을 여미며 휘적휘적 금병산 산모롱이 양지 녘을 돌아간다.
푸르 청청한 잣나무 가지가 바람을 탔다. 흔들리는 검은 그림자 속으로 오종종한 참새들의 발자국도 숨어들었다.
오래된 전봇대에 걸린 안내판이 휴지기에 들어 접근 금지가 된 금병산 지역을 보여 주었다. 비손 하던 여인네의 기도처였던 금병산 기슭의 산신각. 꼭 소설 속 마을 지도 같았다.
휴지기에 든 산신각이 내 맘을 알아준 것일까.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 봄날의 새순처럼 연한 그리움을 주머니마다 갈무리했다. 외로움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가 이처럼 가슴에 봄을 넣고 왔으면.
금병산을 내려와 흙빛 담벼락을 스친 바람이 생강나무 가지에 머문다. 아주 조심스럽게 작은 꽃가지 하나에 생채기를 내어 코끝을 대 보았다. 알싸한 향을 풍긴다. 바로 그 생강나무 맞다.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와 겨울의 무게를 살포시 거두어갔다. 흠. 아름다운 미동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