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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쌀 Feb 17. 2022

까치



집안에 있으면 밖이 추운지 더운지 잘 알 수 없다. 옛집은 한겨울이면 방안에서도 코가 시렸는데, 요즘 아파트는 건축 자재가 좋아진 덕분인지, 건축 기술이 진보한 탓인지 소한 대한에도 창밖 풍경은 추위와 상관없이 온화하게 다가온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계절은 말없이 순환한다.

김장독 깬다는 독한 입춘 추위에 한쌍의 까치가 집을 짓고 있다. 나뭇가지를 물어다 열성으로 집을 보수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미물인데도 빈 공간을 꿰매는 건축 기술이 놀랍다.


흑백의 조화가  까치만큼 잘 어울리는 새도 없을 것 같다.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날개색이 잘 어울린다. 한국에서는 까치를 길조라고 하는 데는 색의 조화도 한몫했을 거 같다.



까치를 보면 일일 시생일(日日是生日)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 말은 날마다 생일이라는 의미이다. 보통 생일은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는 날이다. 그날 하루는 왠지 '축하'라는 상투적인 말 한마디도 생동감 있게 다가오지 않던가.


나이는 들어가고 아쉬운 것이 많다.

日日是生日인데... 하루하루를 생일 같은 마음으로 지내면 좋겠다. 까치만 못할까.






당인리 근처(唐人里 近處)  / 박목월  

당인리* 변두리에  


터를 마련할까 보아.  


나이는 들고 …


한 사오백 평(돈이 얼만데)  


집이야 움막인들  


그야 그렇지. 집이 뭐 대순가


아쉬운 것은 흙  


오곡이 여름 하는  


보리, 수수, 감자  


때로는 몇 그루 꽃나무.  


나이는 들고 …


아쉬운 것은 자연  


너그러운 호흡, 가락이 긴 삶과 생활  


흙을 종일,   


흙 하고 친하고(아아 그 푸근한 미소)  


등을  


햇볕에 그슬리고.  


말하자면  


정신의 건강이 필요한.  


당인리 변두리에  


터를 마련할까 보아  


(괜한 소리, 자식들은 어떡하고, 내가 먹여 살리는)  


참 그렇군.  


한쪽 날개는 죽지 채 부러지고  


가련한 꿈.  


그래도 사오백 평  


땅을 가지고(돈이 얼만데)  


수수, 보리, 푸성귀  


(어림없는 꿈을)  


지친 삶, 피로한 인생  


두 발은 희끗한 눈이 덮이는데  


마음이 허전해서  


너무나 허술한 채림 새로  


(누구나 허술하게 떠나가야 하지만)  


길 떠날 차비를,  


기도 한 구절 올바르게  


못 드리고  


아아 땅버들 한 가지만 못하게  


(괜찮아, 괜찮아)  


아냐. 진정으로 까치 새끼 한 마리만 못하게  


어이 떠날까 보냐.  


나이는 들고 …


아쉬운 것은 자연  


그 품 안에 쉴  


한 사오백 평  


(돈이 얼만데)  


바라보는 당인리 근처를  


(자식들은 많고)  


잔잔한 것은 아지랑인가(이 겨울에)  


나이는 들고.




*당인리는 현 마포구 당인동의 조선 후기부터 1936년까지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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