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쯤 홍대엔 정말 맛있는 마카롱 가게가 있었다. 젊은 외국인이 만들어내는 마카롱이 어찌나 보기에도 이쁘고 맛있던지 어느 날 그 가게가 없어진 후에도 그곳의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맛있는 많은 마카롱 중에서도 나는 피스타치오 라즈베리를 좋아했다. 한쪽은 진한 연둣빛 꼬끄였고 다른 한쪽은 체리핑크의 꼬끄였는데 한입 물었을 때 꼬끄의 바삭함과 바로 0.1센티 밑의 쫀득한 필링의 식감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여러 곳에 마카롱 가게들이 들어서고 새로운 마카롱을 사 먹을 때마다 버릇처럼 그곳의 마카롱이 기준이 됬다. 하지만 어쭙잖은 비교는 하는 게 아니란 걸 마카롱을 만들면서 알았다. 요만한, 3센티 내외의 마카롱 한 개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는지 알게 되었다.
인터넷 속 여러 고수들의 레시피를 따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대형서점에 마카롱 관련 서적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만들어보자 싶던 것이 살다 보니 여덟 해를 넘겼나 보다.
"언니 마카롱 만들어 본다던 것이 8년 만이네 "
"내가 벌써 그렇게 됐니?"
"응 우리 애들 유치원 때 마카롱 만들고 싶다 했었어. 그런데 애들이 중학생이 됬으니깐 그렇지?""
언제나 기억을 잘하는 친구들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기억을 잘할까
"내일은 모입지?"하고 무심코 던진 말에
"언니 그 옷 있잖아, 허리에 주름 들어가고 검은색, 지퍼 언니가 미싱으로 고쳤다며 입었던 옷"
"아."
잊고 있던 내 옷장의 그 옷을 기억하는, 살면서 정말 기억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마카롱 책을 언제 처음 샀는지, 내가 무슨 옷들을 즐겨 입는지 기억하는 정말 똑똑한 지인들이 내 주변엔 많다.
내 오랜 친구는 나의 별의별 기억들을 소환해서 나를 즐겁게 한다. 친구에게 수십 년이 지난 이야기는 마치 어제 있었던 것처럼 생생하다. 기억을 잘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상대방의 말을 아주 잘 듣는다는 것인데 태생적으로 잘 들어주는 것을 타고났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시간이 지나서도 잘 기억하는 사람들은 삶의 태도도 남다르다. 정확하고 신중하다.
나도 잘 들어주는 편이라고 생각했는 데도 가끔은 처음 듣는 것 같은 표정을 할 때가 있다고 한다.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어쩌면 나도 모르게 선택적으로 기억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망각이라는 엄청난 능력치가 괴로운 기억을 잘 접어내기도 하지만 가끔은 민망하고 미안해진다. 돌아보면 대충대충은 절대 살지 않았는데도 정형화되는 것들에 익숙지 않았다. 특히나 마카롱을 만들 때 이런 나의 성격적 결함은 바로 드러났다. 저울을 사용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나름 베이킹을 시작한 지 오래됬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마카롱을 만드는 순간 사라졌다.
마카롱은 동그란 쿠키인 꼬끄와 앙버터 크림을 기본으로 여러 필링이 샌드 되어 있는 디저트다. 꼬끄의 주재료는 달걀흰자와 아몬드 가루와 분당과 설탕인데 이 넷의 정확한 배합이 꼬끄를 완성하지만 그렇다고 배합만이 끝이 아니다. 잘 맞춰 배합하고 섞는다 해도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변수들이 인내심을 테스트한다. 그러다 '그만할까'싶을 때쯤 또다시 달걀을 분리하는 나를 마주한다.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 게 마카롱이다.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하는 사람. 그게 나라고 친구들이 말한다. 그런 줄 모르고 살았는 데 이제 보니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신발도 닳을 때까지 한 개만 신고 좋아하면 그 옷만 입고 베이킹도 십여 년 동안 좋아하는 3가지만 했다.
남편과도 7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마카롱도 손이 기억할 때까지 무한 반복을 했다. 익숙해진다는 건 내게 중요한 일이다. 지금도 '뚝'하면 '딱'하고 나올 때까지 연습 중이다.
다행히도 조금씩 삐에(마카롱 테두리 레이스처럼 보이는 것)가 예뻐지고 식감이 쫀득해져 간다.
뻥카(마카롱의 꼬끄 속이 비어있는 것)의 연속에 좌절도 하지만 유분 없는 예쁜 꼬끄를 기대하면서 또다시 반복하는 내 모습에 순간순간 놀랍기도 한다. 어쩜 오기 같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 시작하면 잘 놓아지지 않는 것이 마카롱이다. 마카롱의 70퍼센트는 꼬끄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필링은 얼추 레시피대로 하면 웬만하면 달거나 덜 달거나 중의 하나다.
문제는 꼬끄 만들기인데 여기저기 레시피를 찾아 따라 했지만 수많은 뻥카에서 벗어나는 데 석 달이 걸릴 만큼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다 비로소 어림이 아니라 마카롱 저울을 통해 그램수가 정확해야 함을 알았다. 마카롱은 몇 그램의 차이에도 뻥카(속이 비어있는 꼬끄)가 되기도 하고 빵카(표면이 물렁한 빵 같은 꼬끄)가 되기도 한다.
마카롱은 수십 번을 재고 또 재는 수치에 가장 민감한 디저트 같다. 나처럼 매사에 적당히가 젖여 있는 습성은 뻥카롱과 빵 카롱을 만든다.
30구 달걀을 10번 정도 구입했을 때쯤일까 그제야 마카롱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정확한 정량으로 수없이 반복을 하고 허리와 팔목에 파스를 몇 번을 붙이고서야 '요만치', 나의 수고로움에 고생했다고 토닥이듯 통통하면서 매끄러운 마카롱의 모습이 보인다.
생각을 멈추고 손이 기억하는 마카롱을 만든다.
있는 힘껏 머랭을 치고 최고 살살, 힘을 빼고 마카로나주(공기 거품을 제거하는 과정)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사그라든다.
퐉퐉했던 하루가 폭신폭신해진다
내가 마카롱을 굽는 이유 아무도 모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