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친정언니와 나는 엄마처럼만 나이 들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80을 훌쩍 넘으신 엄마가 어쩜 그렇게 기억력이 좋으신 지 언니와 내가 놓치는 것도 모두 챙기신다. 내가 집에 오려고 일어설 때면 엄마는 항상 빠진 것이 없냐고 챙기라 말씀하신다. 내가 깜박도 잘하고 두 개를 동시에 잘 못하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내 나이가 되어도 엄마에겐 항상 챙겨야 하는 딸아이인가 보다. 그렇게 샘 계산도 왠지 나보다도 빨리하는 것 같은 엄마의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2년 전 허리 협착 수술을 받으시고 퇴원하시자마자 발목을 접질리시면서 점점 다리에 힘이 없어지셨다. 허리 수술을 하고 바로 운동을 했어야 했는 데 발목 때문에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이 동시에 생기면서 외출이 어려진 것이 벌써 1년째 되는 것 같다.
엄마는 워낙 낙천적이고 활동적이셔서 거동이 불편해진 것이 더욱이나 견디기 힘드셨을 거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6개월 넘게 모임에 나가지 못하시고 집에 계시면서 점점 활동폭이 좁아지셨었다. 팔순 때는 춤을 추실 정도로 건강하셨는 데 불과 2~3년 사이에 엄마는 지팡이 신세를 지시게 되었다. 처음 지팡이를 사드렸을 때 지팡이에 의지하면 안된다시더니 지금은 지팡이를 먼저 꼭 챙기신다. 나름엔 핑크 꽃무늬가 우아하게 놓인 예쁜 지팡이를 고른다 해서 사드렸는데 그날 엄마는 눈물이 나셨다 했었다. 불편해지신 다리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쉽진 않으셨을걸 안다. 엄마는 마음이 답답하실 땐 동네든 시장이든 한 바퀴 돌고 오시면서 넘기기시곤 하셨었는데 이제는 맘대로 되지 않는 몸상태에 많이 슬퍼하시는 것도 안다. 친정아빠가 살아계실 땐 엄마에게 시장에 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면서 이만원을 주시곤 하셨다는 말씀이 생각이 난다. 아빠가 주시던 이만원은 금액을 떠나서 엄마에게 잠깐 놀다 오라는 시간이 주어진 거였으니깐. 그건 낙이었고 엄마의 스트레스 해소법이기도 하셨다. 그런데 지금은 집 앞 마트에 가시려면 몇 번을 쉬었다가 가셔야 하고 어떤 날은 그것조차 여의치가 않아지셨으니 엄마가 느끼시는 울적함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어르신들은 고관절을 다치면 정말 큰일이다. 고관절은 허벅지와 골반 부위를 잇는 관절인데 낙상이라도 하시게 되면 합병증으로 크게 고생하시게 된다고 한다. 엄마도 오랫동안 요가를 하셔서 넘어져도 옆으로 넘어진다고 운동 신경이 있는 편이시라고 말씀을 하셔도 바라볼 땐 불안 불안하시다. 엉덩방아를 안 찧어서 다행이시지만 엄마의 다리 힘이 없어지면서 옆으로 주저앉거나 넘어질 거 같아 엄마 스스로도 쩔쩔매시는 게 보인다. 코로나 전까지는 지팡이를 의지해서 잠깐식은 친구분들을 만나고 오셨었는 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엄마의 외출이 멈추고 엄마는 더 우울감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 햇빛을 못 보게 되면 심혈관이나 심신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기사에 걱정스러웠다.
엄마의 우울감이 더 커지시기 전에 적극적 운동 치료의 필요를 느꼈고 얼마 전부터 집으로 오는 재활치료를 받게 되셨다. 다행히 엄마는 물리치료사 선생님께서 열심히 해 주신다고 좋아하신다. 엄마에게 동영상 숙제도 내주셔서 엄마가 따라 하기가 쉽다 하신다. 열심히 따라 하다 보면 다리 힘이 생겨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엄마는 믿으신다. 그래도 갑자기 너무 열심하 하시느라 다리에 통증을 느끼실 수 있다 했다. 역시나 오늘은 다리가 무겁게 느껴져서 힘드시긴 하셨다지만 그래도 엄마 목소리가 밝으시다. 드릴 게 없어서 요구르트 세 개를 챙겨 드렸다고 하셨다. 물리치료사 선생님 드리려고 야쿠르트 아주머니께 일부러 큰 요구르트를 받아 놓으셨다며 말씀하시는 목소리에 기분 좋은 힘이 느껴지신다. 엄마 목소리 톤이 조금 올라가면 마음이 좋아진다. 안심이 된다. 엄마 목소리는 자식들에게 그런가 보다. 내 목소리에도 그러겠지. 내 표정과 목소리에 우리 아들들도 걱정하고 때론 안심하겠지. 안보는 듯해도 무심한 듯해도 자식은 엄마를 살피니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데 엄마처럼 머리카락이 하얗고 등에 배낭을 매신 어르신이 하차하시려고 기둥을 잡고 서 계신다. 언뜻 보아 연세가 엄마와 비슷하실 거 같은데도 꼿꼿하시다. 나도 모르게 어르신의 허리와 다리에 눈이 간다. 좋아 보이신다. 엄마도 얼마 전까진 작은 배낭 안에 지팡이를 넣고 버스를 타고 다니셨었다. 필요할 때만 쓰신다 던 게 이제 접어 넣을 일이 없어졌다. 늘 지팡이는 엄마의 현관에서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도 어디를 가셔도 지팡이 먼저 옆에 챙겨두신다. 다시 시작하는 엄마의 재활이 정말 잘됬으면 좋겠다. 엄마 다리에 근육이 딴딴하게 힘이 생겨서 지팡이를 의지해서라도 외출이 자유로와 지시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은 극한 상황일 때 기가 막힌 에너지가 나올지 모른다고 했다. 엄마께 지금이 그때이고, 좋아질 것 같다는 믿음은 어떤 드라마틱한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나 역시 믿는다. 튼튼해질 엄마 다리와 힘이 생길 허리를. 잘될 거라고. 정말 잘될 거라고. 간절한 바람은 언제나 희망이 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