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에 대한 단상

어쩌다 유비무환

by 리시안

현관옆에 박스로 있는 마스크를보다 마스크 대란때의 기억이났다. 이사오고 전에 살던 아파트로 택배가 도착한다는 문자를 받은적이 있었다. 내가 주소를 잘못 적었나 싶었다. 예전 아파트 경비실에 부탁하고 찾으러 갔다. 혹시나 싶어 핸드폰에서 구매 기록을 살펴보았다. 한참을 스크롤하다 보니 한참전에 주문한 마스크가 있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그 당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서 인터넷으로 한 박스를 주문했었다. 그런데 배송이 늦다고 사람들의 불만들이 쏟아지면서 문제가 생겨 문을 닫았던 인터넷 상점이었다.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서고 언제 도착하냐며 조바심이 커질 때였다. 결제를 하고도 정작 마스크를 못 받는 사고들이 종종 있었고 전화 문의와 불만 사항들이 기사에도 뜨곤 했었다. 사이트마다 상점 대문에는 배송이 늦어져 죄송하다는 안내문이 올라왔다. 취소를 원하면 주문 취소를 해준다고 했지만 나는 올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기다렸었다. 그러다 이사를 하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냈다. 작년 3월에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서 줄을 많이 섰었다. 어떤 날은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다 내 앞에서 판매가 끝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약국에 여분이 있다 소식이 나면 식사하다가도 뛰어가서 사 오기도 했다. 동네 지인들끼리 하는 단톡에는 누가 어디서 샀으니 그곳으로 가라고 알려 주었다. 하나 둘 마스크들을 모아 놓을 때마다 왠지 큰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뿌듯했다. 사실 우리 가족 나머지 세명은 아무도 마스크를 사려고 하지 않았다. 으레 내가 사 온다는 생각이었는지. 하루 몇 개지만 마스크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땀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안 해봤으니깐. 줄도 안서 보고 구하러 뛰어다녀도 안 해봤으니깐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고생했다는 리엑션이라도 해주면 좋지만 그나마 리엑션도 없어지고 점점 당연히 여기는 것 같았다. 치사하게 리엑션이 뭐가 필요하겠냐만은 힘들어 들어올 땐 가족들의 리엑션이 없으면 기운이 더 빠지는것 같았다. 말하면 공치사 같아서 더 맘 상하니깐. 더 이상 어떻게 사 왔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때론 우습게도 무용담처럼 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은 내가 불안해서 요일제에 맞는 날엔 꼭 줄을 섰었다. 나는 발바닥이 뜨거워진다는 게 뭔지 경험했다. 그때 사람들의 걷는 모습이 마치 경보하는 것 같았다. 동네 엄마들과 두 시간을 헤매서 달랑 2개라도 사게 날엔 그날 하루의 일을 해낸 것처럼 서로를 보고 웃던 기억이 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온 동네 약국을 돌고 나면 헤어질 때쯤엔 지친 웃음이 나온다. "마스크 있어요?" 물으면 약사들은 하루 종일 같은 말을 대답하는 대신 고개만 가로저었다."없어요"도 듣기 힘들다. 약국 문 앞에 붙여놓은 마스크가 매진됐다는 종이는 항상 붙어 있었다. 떼었다 붙였다 하기도 지칠 만큼 동네 약사님의 얼굴도 퀭했다. 퇴근 후 사야 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늦게 까지 약국 불이 켜져 있었고 모두가 낯선 상황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스크 한 개를 며칠을 써야 했기 때문에 벗어 놓은 마스크들은 서랍장 손잡이에 조심해서 걸어 놓아야 했다.2월에 주문했던 마스크가 오늘 도착했다. 박스 안에는 늦은 배송에 대한 사과와 상점 문을 닫고 2월 주문분 까지만 제작했다는 사연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죄송하다며 마스크 한 박스를 더 보내주셨다. 라벨엔 중국 OEM이라고 쓰여 있지만 국내산으로 만든 마스크니깐 안심하고 사용하라는 당부의 글도 덧붙였다. 주변의 반응은 그냥 '헐'이다. 나도 5개월 만에 마스크를 받아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문득 물량이 부족해서 당시의 주문분까지는 늦어도 보내 주겠다던 마지막 문구가 떠 올랐다.늦었지만 약속을 지켜주신 마스크 업체에 감사하다. 마스크를 받아 나도 좋고 끝까지 마무리한 업체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을 것 같다. 서로가 기분 좋은 일이었다공교롭게도 잠잠해져 가던 코로나 19가 오늘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했다. 2학기에도 아이들이 여전히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엄마들은 다시 마스크를 박스로 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마스크 대란에도 여유가 있었던 이유는 여차하면 만들어 쓰겠다는 생각으로 천과 필터를 주문해 놨기 때문이었다. 94 마스크가 아쉬울 때라 천 마스크에 꽂혀서 바느질을 했었다. 천 마스크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누어줬다. 예전에 퀼트로 만든 것들을 나눠주던 즐거움처럼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점점 마스크가 예뻐져 갔다. 오가닉 천들로 정성껏 마스크를 만들었다. 퀼트처럼, 받는 사람을 생각하고 만들다 보면 느낌들이 다 다르다. 내가 뭔가에 꽂힐 때는 어디서 에너지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꽂히면 힘이 난다는 거다. 너무 단순한가. 다행히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면서 재료들도 서랍에 깊숙이 넣었고 더 이상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시중에선 마스크 구하기가 쉬워졌다.그런데 이번주 다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해서 걱정스럽다. 그때처럼 마스크 대란이 오진 않겠지 싶으면서도 우려가 된다. 당분간은 마스크 쓰기가 지속될 것 같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낯선 게 아니라 마스크를 쓴 사람이 눈에 띄는 세상이 기다려진다. 서랍 안에 있는 마스크 재료들이 묵혀 쓰지 못해도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직장인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학교 갈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회사에 갈 사람들은 회사에 가던 너무 당연해서 감사한 지 몰랐던 일상이 정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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