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마주하는 순간

by 리시안


글 짓는 사람



펜 끝에 매달린 이름 하나

뚝하고 떨어지면

오도 가도 못하는 마음에

까만 눈물만 흐른다


얼룩진 길 위에서

망가진 이정표에

갈 곳 잃은 글자들은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어

낯선 시간들이 흘러도

동상처럼 서 있는 글자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글자들을 어르고 달래

갈길을 가자고 재촉하고 싶지만

이름 하나에 목이 메어

침만 꼴깍 삼킨다




마트 가는 방향으로 담벼락을 따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액화질소라고 적혀있는 오래된 회사가 있었다. 글자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매일 이곳을 지나가면서 알게 되었다. 마트를 갈 때는 왼쪽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오른쪽 어깨가 무거웠다. 어떤 회사 인지도 모르면서 보이는 모습에 긴장이 됐었다. 그러던 그 길의 담벼락이 허물어지고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건물이 지어지는 모양이었다. 긴장하게 하던 액화질소라고 적혀 있던 커다란 탱크도 사라졌다. 공장이 불안함을 느끼게는 했지만 봄부터 지나오던 담벼락 길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길가에 있던 목련나무와 벚꽃도 낡은 담벼락과 잘 어울렸는데 담벼락이 사라진 휑한 길가에 서있는 나무들이 낯설었다.

비단, 글자가 주는 두려움이나 주눅은 화학공장을 지날 때 보았던 액화질소라는 말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책을 읽거나 누군가가 무심히 쓴 글을 읽다가도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저 글쓰기가 좋아서 쓰고 있는 것일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성보다 감성이 드러나는 나의 글들이다 보니 나부터가 툭하고 던져놓은 글자에 걸려 생채기가 난다. 지적 사유라는 채반 위에 나의 글들을 올려놓고 흔들어 본다. 구멍 사이로 하나둘 떨어진다. 어쩌다 채반 구멍에 걸려 남은 글들은 공허하다.


혼자만 보는 글이 아니다 보니 성격이 나온다. 어쩔 수 없다. 잠시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다 이내 다름을 인정하고 나면 그러든가 말든가 라는 마음이 된다. 나를 멈추게 하는 글자들이 어쩌면 누구를 향한 글자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도 어느새 글자들을 나한테 끌어다 놓고 묻는다. 너는 사유하지 않았느냐고.

누가 봐도 만족스러운 글쓰기를 할 수 있다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거란 것도 안다. 그런데도 가끔씩 그런 글자들이 가시처럼 걸린다.


때론 쓴소리가 약이 된다는 것도 알지만 응원도 분명 약이 된다. 마음 챙김은 스스로 해야 하겠지만 누구도 주눅 들지 않도록 너무 빡빡하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보다 더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인생 뭐 있냐고. 내 생각도 그렇다. 조금은 유연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최소한, 우리가 글을 마주하는 순간만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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