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고 보니 보인다

by 리시안


생일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별을 보며 별자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별을 향한 그리움으로 아이를 소망했지

별은 새로운 생명과 함께 태어나고 너는 별을 안고 태어났구나

너의 웃음에 온 우주의 별들은 너를 위해 기꺼이 밝음을 양보할 테지

아가야 까만 밤을 지키는 별의 속삭임들이 네가 외롭지 않도록 기도한다

930억 광년 우주 안의 한 조각 다이아몬드처럼 박혀 있더라도

깨지지 않는 반짝임으로 너는 우주의 한 빛이 될 것을 기도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의 손을 이끌고 걸어가는 이 빛이 너로 인한 것임에

혹여 광활한 아픔일지라도

웃으며 걸어가겠다고 기도한다

아가야 나의 손을 잡고 나와 눈을 맞추는 너를 안으면

하늘길 따라 기쁨의 눈물이 흐르는구나

눈물을 받은 나뭇가지엔 밤새 시트러스 열매 맺히고 꽃을 피울 테지

아가야 잠든 너의 볼에 입 맞추는 이 밤 반짝이는 별 하나 가슴에 들어온다

우주를 돌아서 나의 품으로 날아든 작은 별, 나의 아가

비로소 어둠은 흐트러지고 시트러스 향 가득한 너의 곁에 누워 잠이 든다






눈이 부시게 햇살이 쏟아지는 날이다. 질끈 눌러쓴 모자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잠시 눈을 감아본다. 따뜻한 열감에 어김없이 여름은 오고 있다. 봄꽃을 맞고 봄꽃 잎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나무는 초록잎 가득한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햇살이 뜨거워 사람들은 빨리 걷지 않지만 모두가 시원한 곳을 찾아 마음은 이미 그늘에 가 있을 것 같다. 몇 주 동안의 긴장에 마음도 잔뜩 뭉친 근육 같았다. 아이들의 시험도 있었고 또 있을 예정이기에 긴장은 당연하고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다 보니 한 달이 훌쩍 지나고 있다.


첫째 아이는 열심히 했지만 잘 못 본 시험과목에 대해 아쉬워 했고 둘째 아이는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하지 않으면서 너무 느긋했다. 그 모습을 말 못하고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대학생인 아들에게도 내신이 중요한 상황이라 매 시험이 자유롭지가 않다. 작은 아이도 마찬가지지만 이야기해봤자 엄마 잔소리로 들을 것 같아 말을 아꼈다.


시험이 3주 남았을 때는 3주가 남았으니깐, 2주가 남았을 때는 2주가 남았으니깐 하는 마음으로 넘겼는데 시험 2주 전인 지난주쯤인가 보다. 오랜만에 둘째가 공부를 하고 있나, 뒷모습이나 살짝 보고 닫아야지 하고 문을 열었는데 침대 구석에 누워 로맨틱 소설을 킥킥대며 읽고 있었다. 1초, 2초, 3초..어찌나 행복한 표정으로 소설책을 읽고 있는지 공부 하라는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아들, 그렇게 재밌어? 다 읽고 혹시 너무너무 공부가 하고 싶다던가, 저 책상에 막 앉고 싶다, 이런 맘이 들면 그때 앉아"

"응, 엄마 이 책 진짜 감동적이야. 그런데 엄마, 왜 그래, 혹시 화났어?"

"아니, 하고 싶을 때 하라고."


왜 화가 난지도 모르는 아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스스로 절실해지는 것을 다시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아무 말 안 하니 아이와 평온한 시간이 지났다.

"엄마, 혹시 나 포기했어?"

"아니, 엄마가 너를 왜 포기를 해. 엄마는 자식을 포기하지 않아"

"그런데 엄마가 좀 말도 없고.."

"아니야, 네가 알아서 하라고. 엄마가 말했다가 너가 안하면 속상할거 같아서 그래. "


늘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이젠 알아서 하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갔을지 모르겠다. 엄마 아빠의 그늘에서 알아서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길어야 3년도 안 되는 걸 알까. 2년 반이 지나면 성인이 되고 많은 것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까, 물론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 저렇게 해맑을 수 있겠지. 그 나이가 되지 않고는 짐작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긴장을 하고 아이를 대하다 보니 똑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나오고 힘이 들어갔었다. 그런데 그 힘을 약간만 빼고 보니 조금은 넓게 보인다. 학원 다녀온 아이에게도 잠깐의 휴식이 필요할 수 있고 아이도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보였다. 오히려 아이가 조금씩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얼마큼 했느냐고 물어보지 않으니 했다고 마음 상해질 일도 줄었다.


첫째 아이는 공부를 하면서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못 본시험에서도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곤 했었다. 스스로에게 후하지 못한 아이였다. 얼마 전 신경 시험도 공부를 일찍 시작한 과목이었고 잘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 만큼 어려워했었다. 첫째 아이와는 대학생이 되어도 아직도 성적이야기를 나눈다. 정작 고등학생인 둘째 아이에게는 공부하라는 말도 못하고 어른이 된 첫째 아이와는 성적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생각 해보면 좀 우습기도 하다.

"엄마, 이번 시험 잘 나와야 할 텐데, 할 것이 너무 많아. 다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지. 그런데 좀 못보면 어때, 지난겨울 보담 낫지, 겨울 생각 해봐. 그땐 진짜 걱정 됬었잖아. 그때 생각하면."

"그건 그래."

그건 그렇다는 걸 알아가는 첫째 아이를 보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걸 느낀다. 그말은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달라진다. 내가 왜가 아니라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덜 괴롭다. 아이가 어떤 과를 갈까에 대한 고민을 할때도 말한다.

"그건 좀 더 있다, 지금은 무조건 공부만 집중해야지."

물론 미리 고민 하지 말라고 해도 고민이 안될 수 없단것을 안다. 그저 그 고민 또한 힘이 들어가고 무거운 고민일 수 있으니 조금 뒤로 미뤄두자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첫째 아이에게 마음을 쓴 것에 비해 둘째 아이에는 신경을 못 쓴 것이 사실이다. 자유라고 생각하면서 주었던 시간이 엄마인 내가 편하자고, 부딪히지 않으려 했던 마음이었을 지 모른다. 첫째와 둘째에게 가는 에너지는 확실이 달랐다. 그러니 둘째아이에게 똑같은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욕심이란 생각이 든다. 둘째는 둘째 나름의 노력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지켜봐 주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조금씩 우리 둘째 아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할때 짓는 행복한 표정을 놓칠 뻔했다.




힘을 빼고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어른인 나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어쩌면 보려 하지 않았을지 모르는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느껴진다. 첫째 아이나 둘째 아이에게 스스로를 사랑해주라고 하면서도 정작 나는 나를 토닥여 주지 못했다. 나를 바라보면 많은 것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아간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느 날 시를 짓는 사람이 되었고, 주기적으로 약속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동안은 주변에 맞혀진 삶이었기에 나만의 루틴은 별로 없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양으로든 맞혀지는 것이 마치 물처럼 느껴졌다. 그런 나에게 나만의 해야 할 일 이 생기면서 루틴이 생겼다. 나쁘지 않다. 아니 감사하다. 주변과 맞춰 살아가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사이 또 다른 나의 일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들이 괜찮다.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만 내려놔도 세상이 참 녹진녹진 해진다는 걸 알겠다. 첫째 아이가 괜한 걱정을 하는 일이 있을 때면 가끔 말했었다.

"아들, 세상은 꼭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아."

6월이 가기 전에 놓치고 있던 것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은 힘을 빼고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를,

그리고 아이들과 내가 스스로를 인정해주고 더 사랑해주는 계절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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