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꼭 써야지 싶은 마음에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었다. 코끝에 닿을듯한 프리지아 향기에 취한 건지 졸음에 취한 건지 머릿속이 하얀 것이 글 한 줄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이 멍하게 있지 말고 와서 드라마를 보라고 한다. 삼십 분째 제목도 못 잡고 깜박이는 커서를 보고 있는 것이 딱해 보였나 보다.
삼일이 지났다. 삼일 동안 나는 똑같은 일상의 집안일을 하면서도 열려있는 노트북을 볼 때마다
소화되지 못한 체기처럼 느껴졌다. 하루에도 한두 편씩 쓰던 글들이 길을 잃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커서만 며칠째 깜박거렸다.
요즘 우리 가족은 주말에 하는 청춘물에 반해있다. 스무 살과 스물다섯의 사랑이야기지만 아직은 여고생들의 이야기에 웃음이 쏟아진다.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나 실감이 나서 웃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큰아이는 시험기간이지만 본방사수를 놓지 못한다. 본방 10분 전이면 볼 준비를 하고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 거실에 있던 티브이가 안방으로 옮겨지면서 조금은 비좁아진 구조가 되었다. 남편과 아들과 내가 쪼르륵 티브이 바로 앞에서 몰입을 하는 모습은 마치 시트콤 같다. 조금 우스워도 티브이 앞에 모여 앉은 모습은 우리 집에서 자주 보는 일이다. 티브이를 잘 보지 않는 시크한 작은아이의 눈에도 익숙한 모습일 것이다.
둘이 드라마를 보면서 대사에 집중을 할 때 말을 걸면 못 들은 장면에 아쉬워진다. 하지만 세 명이서 보게 되니 놓치는 것이 없다. 잠시 딴생각을 하다 놓치기라도 해서 뭐라고 했어?라고 하면 바로 설명이 나온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나의 열여덟을 생각하는데 남편과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볼까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생각이 적은 이성적인 남편은 그저 웃음이 포인트일 것 같고 남자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의 큰아이는 감정이입을 하면서 보고 있을 것 같다. 워낙 드라마를 좋아하는 집이라서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특히나 이 드라마는 주말을 기다리게 해 준다.
여자 주인공인 여고생은 아주 씩씩하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감정에 솔직하다. 예상을 넘는 장면들에 펑펑 터지는 웃음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살짝 생각이 몰릴 때가 있다. 그건 사랑이 이루어지는 장면이라기보다 멋진 대사들이 나올 때다. 언젠가부터 드라마를 보면서 작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작가의 의도에 관심이 적었던 내가 이제는 드라마들의 대사들이 귀에 들어온다. 귀에 머문 대사들은 바로 나가지 못하고 머릿속에 한참을 머물다 부러움에 시무룩해진다. 어떻게 저 상황에서 저런 대사가 나올까. 작가는 미리 머릿속에서 대본이 그려져 있을까, 작가의 경험일까, 상상일까 하는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작가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나에게도 있었을 씩씩함과 밝음이 그리워진다. 나의 집중은 그러한 생각들이 들락날락하기에 어쩔 때는 모두 웃고 있을 때도 혼자 표정이 진지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는 한 박자 뒤에 웃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과 아들은 뭐지? 싶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나는 사탕을 입에 머금은 것처럼 입안에서 대사들을 굴리며 달콤함을 음미한다. 혼자 감동하면서. 때론 내가 작아지면서. 그러다 달달함이 쓴 맛으로 변해지면 다시 머릿속이 하얘진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노트북 화면의 빈 공간처럼.
왜 이제는 씩씩하지 못할까, 왜 주저하는 것들이 많아졌을까. 80킬로로 달리던 글들이 이젠 20킬로도 안되니 서행도 아닌 것 같다. 우리 차가 자꾸만 방전이 되듯이 달리지 않은 글도 시동이 걸리지 않을지 모른다. 공회전이라도 돌려서 운전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라는 데 글쓰기도 공회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목적지가 없이 시동을 켜주면 가장 자유로운 글이 될 수 있을까.
한때는 적어도 씩씩은 했었다. 겁보다는 무모함에 가깝더라도 용기가 있는 나였는데 이제는 의기소침해졌다. 고민도 걸어서 하기로 했던 내가 한보 앞도 못 가는 생각에 종종 빠진다. 그 마음은 글을 쓰는 것이 낯설게 느끼게 했다.
커다란 장바구니를 돌돌 말아 작게 묶어 손가락에 끼었다. 저녁거리를 살 겸 집 근처의 재래시장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들린 재래시장엔 장을 보러 온 주부들로 북적됐다. 장바구니를 너무 큰 것을 가져왔나 싶었는데 커다란 장바구니를 채우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선가게에서 아구 한 마리를 받아 들고 아귀찜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사다 보니 금세 묵직해졌다. 달래를 보니 달래장을 만들어 콩나물 비빔밥을 해 먹고 싶어 담았다. 깻잎을 보니 둘째가 좋아하는 깻잎찜을 해야겠다 싶었다. 납작한 봄동도 겉절이를 하고 싶어 담아왔다. 어느새 장바구니가 가득 찼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20여분 거리의 집으로 가는 길은 왠지 마음이 가득한 느낌이 들었다. 이 마음도 아주 오랜만에 느껴지는 뿌듯함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배달음식을 자주 찾았고 경제적일 수 있다고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가 재래시장을 다녀올 때면 부엌과 멀어졌던 내 모습이 보여서 미안해진다.
몇 가지 반찬을 만들 건지가 머릿속에 정리가 되니 무언가 큰일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걸어오면서 핸드폰을 꺼내 써 놓았던 글을 읽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던 2년 전에 나는 틈만 나면 핸드폰으로 글을 썼다. 지하철 안에서, 버스정류장에서, 때론 집 앞 놀이터에서. 지루한 시간이란 있을 수 없었고 글을 쓸 수 있는 주변의 모든 사물과 현상이 좋았다. 글 안에서는 가장 평온한 나의 시간들이 되었으니깐. 그러던 글들이 주뼛주뼛 낯을 가리고 숨고 싶어 했다. 점점 더 길을 잃은 글들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반찬 재료들을 보면 레시피가 줄줄 나오듯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글이 되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 글을 좋아했다. 예쁜 시선으로 사랑스럽고 귀하게 나의 글들을 대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고 나에게 알려주나 보다. 나의 글에 집중하라고. 드라마의 대사만큼 나의 이야기를 보듬으라고. 걸어오면서 읽어보는 지난 글들이 새삼 반갑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길을 찾느라 헤매었지만 다시 보니 내가 가는 길마다 불이 밝혀 있었다. 고개를 숙이며 걷느라 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다시 만난 나의 글들에게 인사를 한다. 고맙다고. 그곳에 그대로 있어 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