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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시안 Mar 23. 2022

가장 소소한 행복

햇살 예찬

 이른 아침, 동향인 베란다에서 동이 트기 시작한다. 저만치 보이는 아파트에 빼꼼히 보이는 해가 조금씩 이동을 하면서 환한 빛을 보여줄 때면 거실 식탁에는 아침이 온다. 이사 오면서 오븐이 밀리고 에어프라이어가 아침마다 열일을 하고 있다. 반죽된 생지가 알아서 빵이 되게 해주는 에어프라이어가 이 아침엔 더없이 편리하다. 10여분 후 구수한 빵 굽는 냄새가 폴폴 날 때면 건너편에 작게 보였던 해도 집안 깊숙이 따라 들어온다. 유리창을 지나 하얀커튼 사이로 흐르는 빛이 꽃병의 꽃을 지나면 곳곳을 어루만지듯 햇살을 타고 들어온다.


아침에는 웅 거리는 커피머신 소리도 크고 새로 산 전기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도 엄청 요란하다. 엘리베이터 안 아파트 공고문에는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소리나는 전기사용을 피해달라고 쓰여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처럼 밤늦게까지 깨어 있고 새벽에 일어나는 나에게 포트 사용을 피하려니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초보 입주자인 나는 되도록 지켜주려고 한다. 집이 조용하니 소리가 울리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불편해지는 것이 싫다. 그래서 새벽과 한밤중에는 작은 주전자에서 커피 내릴 물이 끓는다. 조금 수고스럽긴 하지만 소음에서 자유로와 질 수 있으니깐. 그리고 에어프라이어와 주전자와 해가 아침을 열어주는 아침 이 시간이 참 좋아서 괜찮다.


살던 동네로 다시 이사를 온 지 한 달이 되었다. 엘리베이터도 익숙해지고 집안의 짧은 동선도 오히려 편해졌다. 우습지만 엘리베이터에 익숙해진다는 말은 낯설던 것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지금 사는 곳은 8층이다. 우리 아이들이 느끼는 가장 높은 층이다. 집을 정할 때도 8층이라는 것이 장점이 니라 높다라는 거였다. 둘째가 태어나서 10여 년을 살았던 집은 2층이었고 지난번의 집은 1층이었다. 신혼 때 살았던 곳 역시 3층이었다. 저층을 좋아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던 우리 가족에게 8층은 높은 층의 아파트가 맞았다.


저층 생활은 오래도록 편안함이 좋았다. 다만 큰 나무와 높은 펜스에 가려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도 전에 살던 1층 집도 장점이 많은 집이었다. 아래층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앞 베란다 울창한 나무들의 변화로 사계절을 느껴서 좋았다. 새들도 자주 들러 놀다 가곤 했다. 작은 정원을 가진듯했다. 불편함이라면 햇빛 부족이었다는 것이다. 집안에 있다가 나갈 때면 밝은 햇빛에 눈이 부시기도 했었다. 이렇게 날씨가 좋았구나 싶은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다 좋을 수만은 없었다. 늘 좋은 것이 있으면 감수해야 하는 것이 있으니.



그러다 이사 온 곳이 지금 8층 아파트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보면 양옆의 건물들이 기가 막히게 피해 주어 뻥 뚫린 시야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 사이로 아침마다 동이 튼다. 타원을 그리듯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매일 보는 것이 너무 좋다. 이사 와서 어떠냐고 물으면 늘 바로 대답은 하나다.

"해가 들어와 좋아."

 해가 들어오는 것이 당연해서 나의 좋다는 말이 전해졌을까 싶지만 진심인걸 나를 아는 지인들은 알 것이다.

해 들어오는 아침이 더없이 좋다. 평화로움이 들어오는 것 같다. 햇살이 아쉬웠던 남편과 아이들도 밝은 이곳을 맘에 들어한다. 밝은 곳으로 이사를 하니 그제야 밝아서 좋다고 한다.


밝은 빛은 고등학생인 둘째의 아침도 빨라지게 했다. 전에 살던 곳은 둘째 고등학교의 도보 5분 거리였다. 느긋한 우리 둘째는 8시 10분 종 치기 바로 전에 들어갔었다. 늦었다고 뛰는 모습을 둘째에겐 좀처럼 볼 수가 없다. 아주 간혹 가다 진짜 늦었을 때는 뛸까 모르겠다. 집에서 10분 전에 나가던 아이가 이젠 제일 먼저 교실문을 연다고 한다. 버스를 타면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버스를 탄다는 것 때문이겠지만 6시 반이면 일어난다. 덕분에 가족들의 아침이 모두 빨라졌다. 둘째가 등교를 하고 나면 서서히 햇살이 거실로 들어온다.


갓 구운 빵에 버터를 바르고 연하게 내린 커피를 마시며 마주하는 아침해는 날마다 가족들에게 기분 좋음을 선물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주는 햇살이지만 우리 가족에겐 선물처럼 크게 느껴진다. 살면서 당연한 것은 없다. 돌아보면 너무나 당연해야 할 일상이 그렇지 못할 때, 그 공백이 느껴질 때 소중해진다. 늘어난 하루가 느긋해진 오후를 만든다. 이만하면 아침 햇살이 고마운 것이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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