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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시안 Mar 25. 2022

학교의 줌 총회가 끝났다

두근두근. 오랜만에 느끼는 두근 됨이었다. 설렘이 아닌 떨림이었다. 오늘 둘째의 고등학교 총회가 있었다. 아이가 임원을 맡아오면서 총회에 빠질 수가 없었는데 문제는 비대면 줌으로 하는 총회였다는 것이다. 6시부터 시작이었는데 3시가 지나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떨린다 말했더니 줌인데 왜 떨리냐며 아들들이 웃었다. 스피커도 꺼 놓으면 된다며 대답할 때만 엄마 스피커를 켜면 된다고 했다. 왜 떨리냐고? 줌이어서 떨린다고 했다. 난 여태껏 줌을 켜본 적인 없다. 늘 컴퓨터 쪽으로는 남편이나 아들들이 해 놓은 위에 사용만 했을 뿐 혼자서 줌으로 총회를 참석하는 일은 두려웠다. 내가  이렇게 겁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 손으로 안 해보니 점점 할 줄을 모르게 됐다.


옆에 큰애가 앉아 노트북에 줌을 열어준다. 학교에서 알림으로 받은 주소를 적으니 줌이 열렸다. 화면에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의 모습이 뜨고 반별 엄마들의 모습이 보였다. 까만 화면은 모습을 닫으면 되었다. 아들에게 나도 얼굴을 가려달라고 했더니 얼굴 화면을 꺼주었다. 까만 배경이 나오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밑에 스피커 표시가 닫혀 있는 것도 자꾸 확인했다. 꺼져있는 표시가 되어 있었지만 아들들의 거침없는 대화가 행여 들어갈까 신경이 쓰였다. 아들들이 괜찮다고, 스피커 꺼져있다 해도 잔뜩 긴장이 되었다. 전체 총회가 끝날 때쯤 학년별 소회의실로 가라고 했다.  소회의실에 어떻게 가는 거냐고 물었더니 아들들이 나를 놀렸다.

"형, 얼른 해줘.  엄마 저러다 소회의실 못 간다. 그 방에 혼자 남아 교장선생님과 독대할 거야. 교장선생님이랑 멀뚱멀뚱 바라보다 나가지도 못할 거야"

첫째가 화면 아래로 커서를 가져가니 소회의실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나는 줌도 못 키고 열린 방도 못 가는 엄마였다. 내가 몰라서 쩔쩔매는 모습이 짠했는지 아들들이 끝날 때까지 옆에 앉아 있어 주었다. 그리고 열심히 알려주었지만 긴장하느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모르면 어때'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바쁜 아이들에게 매번 물어보기가 미안해진다. 이렇게 줌 하나를 못 켜서 쩔쩔매는 모습이 당연해서야 안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한테는 안 해보면 늘지 않는다 말하면서 정작 나는 할 줄 알도록 노력하지 않았다.


무사히 줌 총회가 끝났다. 아이들 말처럼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아 해프닝 없이 잘 끝났다. 끝나고 나니 줌도 못 키는 내가 보였다. 워낙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했지만 아이들 학교의 교실 문턱은 참 어려웠다. 그건 아직도 나에게 숙련되지 않는 것 같다. 오후의 두근거림은 마치 초1 엄마의 첫 총회 때 같았다. 임원을 하는 큰아이 때문에 자주 학부모회도 했지만 담임선생님들을 뵙는 것은 문밖에서부터 두근두근 심장이 떨렸다. 첫째의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몇 년 후 둘째의 담임선생님으로 뵌 적이 있었다. 새 학기 상담기간이었다. 얼굴이 상기된 것을 보았는지 떨린다 말씀드렸는지 형도 키워봤는데 왜 떨리시냐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첫째의 중3 총회 때였다. 구석이 편하고 기둥이라도 있을라 치면 그 뒤가 좋은 나였기에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기둥 뒤에 있었는 데 어쩌다 학부모회장이 되었다. 가장 자신 없는 일을 해야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타이틀이 많았던 해였다. 여러 곳에 소속이 되었다. 교장실에서 학부모회와 운영위원회의 회의가 있는 날은 교장선생님 옆자리는 운영위원회 위원장님이 앉으셨다. 나는 멀찌감치 앉아있는 것이 너무 편안했다. 말씀을 잘하는 위원장 언니 덕분에 나는 많이 편했던 것 같다. 어쩌면 가장 말을 하지 않는 학부모 대표였다고 기억할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해 학부모회와 운영위원회는 의견이 잘 맞았었다.


그런데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도 여전히 학교를 어려워하니 직책을 맡았다고 떨리지 않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릴 땐 적극적인 E성향이 결혼 후에는 I성향이 되었고, O형인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트리플 A로 느낀다. 사람들은 하나의 성향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성향이라는 것이 있었다가 작아지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비록 소극적이지만 어느 날 씩씩하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와 마주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깐.


소회의실로 옮겨진 회의실에서의 줌 수업이 좋은 점은 있었다. 학년 회장을 뽑아야 한다며 의사를 물어보는데 까만 내 화면이라 좋았다. 대면에서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지간히 밑만 보고 있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내 모습을 볼 수없다는 것이 좋았다. 죄송한 마음과 가벼운 마음이 같이 들었다. 그래도 회장은 잘할 수 있는 분이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하고 싶어야 잘할 수도 있으니깐. 난 오늘 아무것도 맡지 않았다. 아,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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