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중에서
밀려오는 과태료 고지서에 몸을 흔들어 본 일이 있는가?
- 아니, 나 같이 잘 지키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일단 부인부터 하고 본다.
- 내가 아닐 거야.
그리고 분석에 들어간다. 가물한 기억 속에 저 운전대를 붙들고 있던 사람은 내가 분명하다고 인정될 즈음 카메라 성능을 의심해 본다.
- 정말 선만 넘었는데 찍은 거 아냐?
드디어는 나라 재정 탓도 한다.
- 세금이 모자라다더니 벌금으로 충당하는군.
과태료 이야기가 나오니 다들 억울한 사연들이 쏟아진다.
- 실컷 만보 걸어서 포인트 모으면 뭐 해. 고지서 하나면 10배, 100배야.
- 하루에 같은 도로에서 두 번 단속된 적도 있어.
- 난 전국에 그렇게 초등학교가 많은 지 처음 알았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단속된 이야기에 다들 숙연해진다. 과태료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드디어 자숙의 시간에 들어간다. 선한 사람들이다. 선한 사람들이다 보니 법을 어겼다고 날아오는 과태료 고지서에 마치 자신의 행위가 사회 어딘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한숨부터 나오는 거다.
- 도대체 이 이상 어떻게 더 잘하고 살라는 말인가?
갑자기 힘이 쭉 빠지기도 한다.
사회라는 공동체를 형성한 이래 인간의 도덕성과 최고선에 관한 질문은 끝없이 이어져 왔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의 저서 공리주의에서 효용과 최대 행복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삼고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은 옳은 것이며 행복을 증진시키지 못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 된다고 주장했다.
- 철학이 처음 생기면서부터 최고선, 달리 말하면 도덕성의 기초에 관한 의문이 사변 철학의 핵심 과제가 되었다.
- 그래도 인간의 행복을 좌우한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에 여전히 크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효용 원리 또는 최근 들어 벤담이 말하는 최대 행복 원리는 도덕 이론을 정립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철학사에 길이 남을 탁월한 사상 체계의 소유자인 칸트는 문제의 책에서 도덕적 의무의 기원과 근거가 되는 보편적 제1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당신의 행위 규범이 다른 모든 이성적 존재들에게 하나의 법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행동하라.”
- 그렇다면 즐거움이 좋은 것이라고 증명할 길은 있는가?
-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쾌락이야말로 목적으로서 바람직한 유일한 것이며 바람직한 모든 것은 그 자체에 들어 있는 쾌락 때문에 또는 고통을 막아주고 쾌락을 늘려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 공리주의의 핵심 명제가 된다.
- 타고난 능력이 월등한 존재일수록 어지간한 것에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 우선 자존심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 자존심이라는 개념이 인류가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느낌과 가장 비열한 느낌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느낌에 모두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 그러나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가장 적합한 개념은 인간으로서의 품위(sense of dignity)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저런 형태로 지니고 있는데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각자의 능력에 비례해서 커진다. 그리고 그런 의미의 품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 품위가 행복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가 된다.
인간으로서의 품위, 센스 오브 디그니티를 지니고 있는가? 당연히 나 자신은 지니고 있으며 사회 구성원으로서도 그에 맞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날아오는 과태료 고지서는
- 별로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네요.
라며 나의 디그니티에 미세한 금을 긋는 것 같다.
- 공리주의의 목표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격이 전반적으로 도야되어야 한다.
- 만족스러운 삶을 구성하는 것으로는 평온함과 즐거운 흥분 상태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때때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 보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리 삶을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첫 번째 원인은 이기심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정신 교양의 부족이다. 교양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 주변에서 흥미로운 일을 무궁무진하게 찾아낸다.
- 행운과 불운을 엎치락뒤치락하게 하고 세상에 대해 실망하게 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이런 것은 주로 형편없이 경솔한 처신, 무절제한 욕망 또는 잘못됐거나 불완전한 사회 제도 때문에 생긴다.
과태료 고지서 납부의 순간이 왔다. 보자마자 바로 내어 버리는 사람. 시시비비를 따져보는 사람. 최대한 버티고 안 내는 사람 등 그 작은 안내문이 뭐라고 신경을 집중시킨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럴 경우 사회 공동의 도덕률에 따라야 한다고 한다.
- 왜 우리가 도덕률에 복종해야 하는가?
- 왜냐하면 교육과 여론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굳건하게 자리 잡은 통상적인 도덕만이 그 자체로 구속력을 지닌 유일한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 효용 원리는 다른 모든 도덕 체계가 행사하는 윤리적 체재를 전부 가동할 수 있다.
- 그래서 의무를 위반하게 될 때 강하든 약하든 일종의 고통이 수반된다.
과태료 고지서와 함께 날아든 강렬한 가슴 아픔은 일종의 고통이 수반된 당연한 행위였다. 그런데 이 고통은 의외의 부분에서 쉽게 잊히거나 웃으며 넘기게 된다. 같은 사회 구성원이 비슷한 고통을 당했다거나 더 한 사례를 듣게 되면 나의 일종의 고통은 사회적 감정으로 넘어가며 자연스레 치유되는 것이다.
- 일반 행복은 윤리적 기준으로 일단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공리주의 도덕의 힘을 키워주게 될 것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감정이 바로 이런 굳건한 기초가 된다.
- 사회적 감정이란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열망인데 이것은 이미 인간 본성 속에서 강력한 원리로 작동하고 있으며 다행스럽게도 굳이 인위적으로 가르치지 않더라도 문명이 발전하면서 그에 비례해 점점 강해진다.
- 그래서 각자는 마치 본능적인 것처럼 다른 사람에 대해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 결국 행복은 사람들의 행동이 지향하는 목적 중 하나로 나아가 도덕 기준의 하나로 위치를 굳혀온 것이다.
- 공리주의 이론에 따르면 덕은 자연적으로 그리고 원래부터 목적의 일부였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사심 없이 덕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덕이 목적의 한 부분이 되고 행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행복의 한 부분으로서 갈망되고 소중히 여겨진다.
- 사심 없이 덕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다시없이 귀한 존재가 된다. 결론적으로 공리주의 철학은 일반 행복을 해치지 않고 그것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도 안에서 사람들이 습득하게 된 다른 욕구들을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한편 일반 행복을 달성하는 데 그 무엇보다 중요한 덕을 최대한 사랑하며 쌓을 것을 명령하고 요구한다.
- 때로는 그 일을 무의식적으로 하면서 일이 끝난 뒤에야 그것을 의식하게 된다.
- 거듭 말하지만 의지는 갈망의 자식이다. 그러나 습관의 힘을 받으면 부모의 지배를 벗어나 습관의 우산 아래 들어가게 된다.
- 평소 생활에서 의지가 실수를 범하지 않을 만큼 굳건한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덕을 촉진하는 즐겁고 고통스러운 연상 작용의 영향력에 크게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것이다. 나의 운전 실력이나 습관이 실수를 범하지 않을 만큼 굳건하게 만들어 공동의 행복에 증진하는 수준까지 이르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던 것이다.
자, 준비되었는가? 오늘도 저 도로 위에는 사심 없이 덕을 추구하는 수많은 운전자들이 달리고 있다. 이제 당신도 즐겁고 고통스러운 연상 작용으로 받아들이며 개인의 덕을 넘어 사회에 기여하는, 사심 없이 덕을 추구하는 운전자로 거듭 나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