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옳다, 그르다 - 더 나아가서 정의롭다, 불의하다. 이것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주변에서 이런 상황을 많이 접하곤 하는데,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일단 지금 세운 기준으로는 나는 사람보다 그런 현상이 일어난 윈인이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판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이 기준으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부딪치는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언제부턴가 내가 언제나 옳다는 자신이 없어졌다. 남들이 의견을 내주길 바라고, 내가 의견을 내는 것은 누군가가 쳐주기를 바라는, ‘배팅볼’에 가까운, 프로야구로 말하자면 시속 110킬로미터짜리 속구라는 느낌으로 내던지고 있다. 그거를 쳐서 멋진 그림을 만들듯이, 더 멋진 의견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어이 풀벌레 형님을 만났다. 무언가 목소리의 울림이 적어지신 느낌이다. 괜찮으냐고 여쭤봤더니 안 괜찮다는 힘 빠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 안 되죠, 라고 헛웃음을 터뜨려보지만 형님은 말씀이 없으셨다. 이번에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작가 활동을 하게 되었다, 형님이 글 읽어주셔서 덕분에 이런 기회 잡았다, 정말 고맙다고 말씀드렸더니 뭘 그런 걸 가지고, 라면서 글 쓸 거면 글 쓰는 대로 읽어볼 테니 가져와 달라고 한다. 형님, 정말 고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형님 아니면 저는 그냥 이런 거 해보지도 못하고 쭈구리되어 살았을 거예요. 이런 엉성한 글이나마 쓸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셔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나는 들불(烍)이다. 내리 눌러, 넓게 번지는 들불이다. 너무 서두르지 말자(餘). 천천히, 정말 천천히 나가자. 그렇잖아도 빨리 번져나가는 나는 대충대충, 지나간 자리가 지저분하다. 내가 밟고 있는 곳을 천천히 꾹꾹 누르자. 그리고 한 걸음보다 좁게, 앞으로 발을 내딛자. 대신, 내딛은 자리에는 잿더미 하나도 남지 않도록, 정말 모든 것을 태우고 다하여야 한다. 깔끔하게, 확실하게, 후회라는 잿더미도 안남도록. 보고 슬픈 느낌이 들지 않도록. 꾹꾹.
워낙 책을 대충 읽는 버릇이 있어서 결국 줄 없는 공책 하나를 샀다. 책을 읽다가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할라면 이게 최고인 거 같다. 나만이 알아볼 정도라도 상관없이, 읽은 것을 정리하여 써 보자. 그렇게 정리해야지, 책을 읽고 머릿속으로만 정리가 안된다. 글씨를 쓰자. 글씨의 무게로 책을 꽉꽉 눌러서 책을 엑기스로 만들고, 그걸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소화 안되어서 게워내고, 또 다시 다른 책 붙잡고 꾹꾹, 벌컥벌컥, 웩웩. 정말 지저분하게 읽을 수 밖에 없다. 머리가 나쁘면 오장육부가 고생한다더니 미안하다 몸뚱아. 잘못 만난 주인을 용서해 다오. 저 맑은 아침의 공기로 매우매우 쳐다오. 흠씬 패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