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 여선

4번

잠,잠,잠

by 여선

눈이 떠졌다. 머리맡에서 충전하고 있는 핸드폰을 켜서 살펴보았다. 최소 조명으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핸드폰은 아직 일어나기까지 30분 남짓 남았다고 보여주고 있다. 아, 더 잘 수 있겠다. 아이 행복해. 머릿속에 사탕이 직접 녹아드는 기분이야. 이 기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으니까 좀만 더 누워있자. 왠지 싸늘하니까 이불 꼭 뒤집어쓰고 자야지. 오늘은 뭘 할 수 있을까. 뭘 하면 좋을까. 뭘 해야 될까.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하고 나와서 지하철 타고 내린 다음에 마을 버스 한번 더 타서 학교에 도착해. 그런 다음에 학교로 내려가서 아침에 인터넷 강의 듣고 공부 정리하다가 수업 들으러 가자. 수업은 10시 반부터 1시 반까지 연강이라 뭔가 빠듯하지만 뭐 사 먹을 정도는 되니까 괜찮을거야. 강의도 예습해 둘거는 다 해뒀으니까 수업만 열심히 들으면 될 거야. 그러다가 3시부터 4시 반 강의때는 발표지만 뭐 어때. 그동안 준비해 두고 이미지 트레이닝 해둔게 충분해서 정말 자신있어. 조원들한테는 자신없다고 거짓말했지만, 애초에 민폐 끼치기도 싫고 정말 잘 하려고 노력한데다가 어떻게 해야될지 머릿속에서 정말 깨끗하게 떠올려지는걸. 마치 수업하는 모습을 프린터로 출력해서 눈앞에서 연속 사진을 펼치듯이 촤라락, 하고 떠오르는 듯해. 봐봐, 오늘은 정말 공부도 잘되고, 학교 친구들과 조원들을 만나서 같이 하는 것도 실수 한 톨도 없을 것 같아. 그렇게 하루 일과를 잘 할 수 있을 거 같아. 음 괜찮아. 오늘 하루도 이렇게 계획적이고 멋있는걸. 그러니 조금 더 잘 수 있을 거 같아. 조금만 더 잘까. 조금만 더 잘


지금 몇시지?


와 잠깐 누운 거 같은데 벌써 일어날 시간을 10분 넘겼네. 항상 잘 때 의식이 없는 것과 그 동안에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간다는 게 너무나 무섭다. 생각이 뒤죽박죽되어 말도 꺼내기 힘들 무렵, 어머니의 아침먹자는 외침이 방 밖에서 울리고,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와서는 대충 샤워하러 갔다. 미지근한 물을 맞으며 멍하니 있다가 슬슬 정신을 차리고는 피식 하고 웃어 버렸다. 무엇이든지 자신 있게 할 수 있고, 하루 완벽하게 살 줄 알았던 나의 상상과 달리, 현실은 애벌레 마냥 침대 위에서 꼬물꼬물, 갉작갉작 하고 있는 모습이지 않은가. 그것이 뭔가 조금, 웃겨서 샤워하는 중에 푸핫 하고 소리 내서 웃었다가 벌린 입으로 샤워기에서 쏟아진 물이 들어가 사래가 들려 계속 캘룩거려야 했다. 대충대충 아침 먹고 열심히 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등으로 받으며 걸어나갔다. 역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 남짓 했기에 걸으면서 정신을 차리거나 생각을 가다듬기에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대였다. 그런데 그 날만큼은 무언가 꿈에 홀린 듯이 멍하니 걸었다. 좀 더 자고 싶다는 의미를 가진 긴 하품과 함께.

20150920

화요일에 떠올랐는데 뒤늦게서야 글을 완성시키며

원당에서, 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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