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에 사죄하며
생활하다보면 - 학교 다니느라 지하철이나 학교 셔틀버스 타면서 멍하니 있을때랄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혹은 이것저것 공상에 빠지거나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랄지 -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번개처럼 지나간다. 그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어 글을 쓰는 편인데, 글을 쓰는 습관이 다 풀려서 그런지 그런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버릇이 사라져버렸다.
‘아! 이렇게 쓰면 되겠다!’나 ‘아! 이 흐름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 되겠다!’ 같은 아이디어는 글을 쓰기 전에 항상 떠오른다. 이번에 썼던 1번 글도 사실은 4년 전에 썼던 글 뭉치를 돌아보다가 비슷한 내용을 건드린 글을 발견하여서 그 글을 검토하다가 아! 요거는 이러저러하게 쓰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번뜩 들어서 기존까지 생각하고 있던 ‘만족과 행복의 관점으로 보는 애정 이야기’라는 주제를 다 밀어버리고 그 아이디어에 의존해서 글을 쓰려했는데, 막상 쓰려 하니 제대로 글이 안 이어지는 것이다. 당혹스러워서 기존의 컨셉을 기억해서 다시 쓰려고 하니까 이제는 글자 하나 타이핑 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좀 써진 글로 꾸역꾸역 글을 완성하다 보니 1번 글이 만들어지긴 했는데, 글 말미에 쓴 거처럼 불안한 마음이 가득찼다.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조금 더 나은 예제들을 꺼낼 수 있었는데, 수업때 들은 내용 중 절반이라도 이 글을 통해 전달했나? 1/10도 못한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뭉게뭉게 뭉쳐서 마음에 장마비를 내리게 했다.
그런 소중한 글 소재들이 날라가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을 보면 그동안 글을 많이 안 쓰긴 안 썼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글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잘못으로 멋있을 영웅상을 기이한 괴물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죄인을 찾아 능지처참하여 형태도 갖추지 못한 채 스러진 그 억울함을 위로해야 하고 싶다. 정말 이러고선 글이라고 내놓고 있으니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그 생각들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어서 한숨만 난다.
글을 쓴다고 몇 안되는 사람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공통되게 들었던 말이 있다. 마음을 여유롭게 먹으라고.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급하게 글을 몰아 쓰려다 보니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 생각된다. 답은 그러면 간단하다. 천천히 쓰자. 작가라는 이름 때문에 너무 서둘러서 글을 쓰고자 했지만, 생쌀이 바로 밥이 될 수 없으니까, 천천히 불리고, 불 지피고, 뜸 들이면서, 나만의 맛을 찾아나가자. 다시 그 과정부터 밟아나가자. 이전의 글 쓴 것 때문에 우쭐하지 말고, 새로운 마음으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전진하다 보면, 좀 더 나아지겠지.
2015년 9월 15일 새벽에
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