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 여선

그래서 나도 살아가리라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를 읽고

by 여선


4년 만이었나, 유용주 작가의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마치 잃어버린 옛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에 사로잡혔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진작 가지고는 있었다. 이 책을 언제 샀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몇 년 전이라는 가물가물한 기억만 남았지만, 죽을 만치 힘들 때나 끝없는 어두움이 밀려올 때면 펑펑 울고 마음 아파하다가도 제일 먼저 손에 잡는 책이 이 책이다. 사실 항상 이 분의 스타일을 따라하고 싶어서 내심 흉내를 내 보아도, 도대체가 작가의 그 긴 호흡은 따라잡을 수가 없다. 나를 인공호흡기 낀 환자에 비유한다면, 작가는 농부다. 그는 밭을 갈면서 강렬한 호흡을 행한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원초적인 생명력, 오랫동안 벼려 온 듯한 날이 선 의지, 자신의 주위 사람들을 돌아 볼 줄 아는 강인함,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최선을 다하려는 고집 등등. 1장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내 문학은 내 삶이다’라는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의 전율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에 작가는, 그토록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하지만 그 직후로 접하게 되는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와 ‘얇은 베니어판의 추억’부터 시작되는 글들은 충격이었다. 처절하다, 라는 표현도 모자랄 정도의 치열한 삶이 물 흐르듯이 흐른다. 그리고 작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은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질 정도였다.

…(중략) 그 때 삶은 돌아보기 끔찍한 야차夜叉의 모습이었다. 늘 마지막이구나, 더 어쩔 수가 없구나, 이렇게 끝장이 나고 마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죽음이 겁나는 무엇이긴 했지만 가능한 한 빨리 어머니를 따라가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내 몸뚱아릴 괴롭히며 죽을 수 있나 궁리 끝에 술을 인사불성으로 먹고 고속 도로를 건너다니고 종로 한복판 중앙선에 누워 내 몸 하나 희생하면 남은 가족들 생활비는 되겠지 보험료라도 타내려고 했지만 자동차들은 잘도 피해 다녔다. 죽기가 살기보다 어려웠다. 팔뚝을 잘라도 동맥은 빗나갔고 일주일 굶어도 여전히 숨은 붙어 있었다. 그림자는 그렇게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끝까지 따라다녔다. 귀신들은 그림자가 없는 모습으로 잘도 나타나던걸……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에서

…(중략) 아침부터 소주를 밥사발로 마셨으며 못 하나 박고 마셨고 해체 작업하다 마셨고 슬래브하다 마셨고 버팀목을 받치고 마셨고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에도 마셨고 간조 했다면 들이부었고 공친 날 먹었고 눈 와서 마셨고 비 와서 펐다. 스승을 기리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고, 술 힘이 아니었으면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삶의 현장에서 버텨내기가 힘들었다.

-<한 도보 고행승에 대한 중간 보고>에서

그렇게 흘러가기만 하면 좋으련마는 어김없이, 사정없이 내 눈을, 내 머리를, 내 가슴을 강타한다. 그리고는 나를 쓰러뜨리고서는, 펑펑 울게 만든 뒤, 그래, 다시 살아보자고 각오를 굳힐 때까지 놔주질 않고 계속 몰아친다. 그제서야 나는 그 격류를 벗어나서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휘몰아치는 흐름에서 벗어난 뒤에 떠오르는 것은 그 물의 거친 흐름이 아니라, 임마, 그까짓 거, 툴툴 털고 다시 일어서면 그만이야, 하고 울리는 듯한 물소리였다. 그 물소리는 지금도 책을 펼칠 때마다 울리고 또 울린다. 물론 그 울림 듣기까지는 다시 몇 번의 휘몰아침을 당해야 하겠지만.

상처는, 그 당시에는 너무나 아프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살이 돋고, 피가 굳어서 흉터가 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좀 울퉁불퉁해서 흉측할 수 있겠지만 그 어떤 것보다 강인한 방패가 된다. 그 방패는 결국엔 훗날 자신이 상처입고 흔들릴 때 자신을 지켜주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버팀목이 된다. 그 방패를 강하게 만들지 약하게 만들지는 오롯이 자신의 강함에 달린 일이리라.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살아보겠다고 이를 갈아보는 자에게 그 방패는 자신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방패는 고금을 통털어 모순(矛盾)의 방패보다도 더욱 강한 방패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나도 비록 온실 속에서 자라온 어정쩡한 젊은이이지만 아프면 아플수록 더 발악하고, 다시 일어섰다. 쓰러졌을지언정, 죽겠다고 다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무너질지언정, 이전처럼 다시 일으켜 세워서 나 자신을 더욱 강하게 하고, 앞으로 다가올 시련들에게도 맞서서 더욱 멋진 모습을 보여 나 자신을 지켜 나가리라고 다짐하였다.

작가는 정말 독하게 살아왔다. 아무런 잘못 없는 자기 자신에게 별 두 개를 달고, 끝없는 수라도의 벌판 속에 자신을 가두면서도 꿋꿋하게 지금까지 버텨오고 이제는 한 가정을 꾸리면서, 글을 써내고는 외쳤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라고. 작가에 비하면 나 자신은 얼마나 편한 그림 속에 있는 것인가. 그러니 나는 이 책을 삶에 지친 누군가에게 권하면서 한마디 해 본다. ‘그래서 나도 살아가리라’


20150927

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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