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 여선

조각모음, 세 번째

by 여선

1. 저번 주 수업 때 강의실에 좀 일찍 갔는데 교수님이 먼저 강의실에 계셨다. 간단히 인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기계적인 중립은 중립이 아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마 이게 역사 교과서를 이야기하다가 나온 것인데, 역사는 결국 사람이 사실을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중립은 있을 수 없으며, 결국 한 측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주요한 골자였다. 그 때 수업의 노트를 살펴봐도 자세하게 적어놓지는 않았지만, 말씀하고 싶었던 요점은 역사 교과서를 볼 때, 혹은 역사 교사를 하게 될 때, 결국 한 측면에 좀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항상 싸우는 게 싫다는 핑계로 한가운데의 회색지대를 찾아 헤맸는데, 그것은 그냥 없는 개념을 찾아 자위하는 현실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어느 것이 옳은지 그른지의 문제가 아닌, 결국 선택의 문제이니까. 잘 선택할 수 있음 좋겠는데.

2. 축제시즌이었다. 율전 캠퍼스만 하기로 했는데 어째 명륜도 한다 하면서 부랴부랴 세트장 들어오고 바빴다. 뭐, 대학 축제 좋다. 친한 사람들 만나면 싸고 편하게 술 한잔 한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니까. 그러나 축제 현장이 스폰서 상품들의 판촉장으로 되다시피 도배되는 스폰서 부스들을 보고 있노라면 별로다. 그런 축제는, 사회에 나가도 충분히 많지 않나. 대학생다운 축제라는 것은, 이 정도로 손을 벌릴 정도로 돈이 없으면 안 되는 걸까? 집행부를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나의 지독한 아집인걸까. 그냥 너무 빨리 어른을 따라하려는 것 같아서, 씁쓸한 느낌도 들고, 앞서 말한 거처럼 이런 축제 행사는 사회에도 있으니 놀고 싶은 사람만 따로 그렇게 놀면 안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이런 가정을 늘어놓고 늘어놓으면 나도 누군가에게 꼰대가 되려나. 그건 정말 싫은데.

3. 난 누군가에게 옳은 답을 강요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한다 해도 후회할 것 같은데. 내가 잘못되지 않기를 몇 십 번이고 빌던 선택의 순간순간.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잘못되지 않은 것일까. 모두에게 옳을 수 없다는 것은 모두에게 옳지 않는 것이 아니란 뜻인데, 과연 그럴까. 100명이 날 긍정하지만 1명이 나를 부정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그 1명을 만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100명이 모두 날 부정하지만 1명이 나를 긍정하는 상황에서는 그 1명의 긍정을 믿고 살아나가야 하는 걸까. 조금 어려운 고민.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호기롭게 동기에게 말하던 내 새내기 시절에 바치는 조금은 슬픈 축문.

4. 천성이 폭발적인 것일까. 글을 한번 쓸 때 몇 시간 차이로 같은 글감인데도 세 줄 쓰다 지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30분 동안 쉬지 않고 몰아쳐서 한 번에 글을 쓰기도 한다. 이번에 만든 5번 글이 그랬다. 이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기질과 반대되어서 너무 걱정이다. 이게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자신과 반대되는 것에 끌린다던가. 후천적인 훈련으로 여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걱정되는, 혹은 고민되는.

Bonus.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 왜 자꾸 이 노래가 계속 밟히는지.


20151010

원당에서

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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