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 여선

6번, 뒷면

by 여선

1장에서는 유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무에서도 이야기할 것이 있다. 한중일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과거시험을 통한 입신양명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면면대대 이어져 내려왔다. 그나마 이를 반박할 만한 요소가 있다면 삼국시대 정도일 것이다. 남북국시대 이전의 고구려 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삼국시대는 귀족들이 관직을 독점하고 자신들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근친혼마저 행할 정도이니 백성 내지는 서민들이 비빌 언덕이 없다. 그러나 신라에서도 지식층이 성장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출세할 수 있는 무기로

자신들이 쌓아온 지식에 승부수를 건다. 능력에 따라 출세할 수 있다는 솔깃한 발언에 시대는 움직이기 시작하고, 바야흐로 과거를 통해 인재를 뽑는 시대가 온다. 흔히 옛날을 미화하는 것 중에 옛 선비들이 공부할 때 어쩌고저쩌고 있는데, 지나치게 미화된 것들을 받아 들여 과거에 공부한 모든 선비들이 성인군자나 점잖은 모습만을 보이며 인성 공부에 힘썼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당시에도 어떻게 하면 시험 공부를 할수 있을지에 대해 효율적으로 파고들려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런 사람들은 글의 기교를 중점적으로 공부했다는 이야기들도 있다. 이런 세태에 대해 비판하는 글들도 몇개 나온 것을 보면 이 당시에도 출세를 위해 공부한다는 것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교육열은 조선시대를 거치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직후에서도 드러나게 되는데 바로 지금 이 글을 쓰는 멍청이의 아버지 세대가 그 산 증인이 아닐까 싶다. 그 당시에만 해도 대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엄청난 엘리트였으며 이는 안정된 직장이 보장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감명받은 유의 사람들이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대학을 우후죽순으로 만들어나가고, 어떻게든 대학을 가야한다는 왜곡된 인식관이 이런 말도 안되는 삼류 대학 이사장들의 계좌에 돈을 퍼부어주고 있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대학교는 요새 취업학원의 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 이게 어떻게 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정신차리고 학문을 열중하는 상아탑이 될지, 아니면 그저 취업만을 위해 돌 대신 돈을 쌓아두고 비는 돈탑이 될지는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앞서서 돈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교육이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그 만들어진 교육을 거부하는, 교육은 교육으로 받아들이는 가치관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성립되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까? 아니 그전에 이런 가치관이 만들어질 수나 있는 걸까? 동방예의지국인데 뭐 나같은 멍청이가 걱정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만들어지겠지. 다만 지금까지는 실망스러운 일 투성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옳다꾸나 하고서는 교육이 아닌 공부에만 매달리게 되는데, 이에 따라서 도덕적 가치의 부재마저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야 될 사람들이 우리 새끼는 그럴리 없어 하면서 감싸고 들기 급급하다는 것이다. 한숨만 나온다. 동방예의지국을 들먹이는 것은 이제 옛일이라 그만해야되나? 여기서 나오는 질문. 자식이 안정적으로 살기를 바라나, 도덕적으로 살기를 바라나? 물론 10년뒤의 나에게도 던지는 질문이다. 그쯤되면 혹시나 결혼할 지도 모르니까.



아마 기억상으로는 이 글이 6번(개소리 1번) 바로 다음날 충무로 역에서 탄 대화행 3호선 열차 바닥에 주저앉아서 노트북으로 정신없이 써내려간 글일텐데, 이제는 글쎄. 어쨌든 여기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나중에 풀어낼 때가 된다면 그때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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