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 여선

등잔 밑에 쉼터가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대한 혼잣말

by 여선

작년 때쯤에 같은 과 선배의 도움으로 스터디 그룹에 여름방학동안 신세 지게 된 나는 그 그룹을 통해서 알게 된 친구와 선배들도 많았는데, 그 중에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동생이 나와 취미 분야도 얼추 맞기도 하고 워낙 착한 녀석인지라 삐죽빼죽 모가 난 나와도 잘 놀아주는 좋은 녀석이었다. 그런 그 녀석과 어느 날 이야기를 하면서 학교를 올라오다가 문득 생각나서 말을 걸었다. “야, 여기에 박물관 있는데 좋으니까 함 가봐라.” “네? 박물관이요? 어디에 있어요?” “이놈 이거 학교 헛다녔나...(추가. 이 동생은 성대 학사 출신은 아니다) 저기 보이지? 600주년 주차장. 저기 안쪽으로 들어가면 성균관대 박물관 있다.” “허 진짜요? 저 진짜 몰랐어요” 라고 말하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 녀석, 진짜 몰랐나 보다. 뭐 그걸 책망할 생각은 없었다. 나도 그래왔고. 알려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말한 것이었으니까, 여기서 안다고 나오면 왠지 큰 실망감이 찾아왔을 느낌이었다. 나쁜 형 같으니.

언제부터 성균관박물관을 의식하고 열심히 이야기하고 그랬는지는 영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작년 1학기는 되었나, 그 이전에도 박물관 몇 번 들렸던 것 가기도 하고. 이제 그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곳을 ‘다시’ 찾게 된 확실한 계기 중 하나는 이 모진 나에게 있어서 몇 안 되는 친구로 남아줬던 고마운 과 친구인 강 군이 그곳의 조교로 남아 있어서였다. 앞에서 굳이 다시라는 단어를 강조했던 이유는, 새내기 시절에 학교를 다니면서 분명 한번은 성균관대 박물관을 간 적이 있다. 그래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몰랐을 텐데 그것을 입대 전 1년, 입대 약 2년, 입대 후 2년...거진 이래 쉬어버리니 모를 만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자답하듯이 떠올랐다. 아무튼 그렇게 잊어버리고 개 풀 뜯어먹는 나날을 보내다가 동기이자 나 개인적으로는 정말 친하게 생각해왔던 강 군이 대학원으로 진학하면서 성균관대 박물관에서 조교로 일하게 되면서 박물관에 한번 놀러오라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리 먼 곳도 아니고 돈 드는 것도 아니었기에 편한 마음으로 놀러가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학기에 못해도 두세번 이상은 놀러가는 장소가 되었다. 특별전이 한 학기별로 있어서 의미 없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좋은 걸 어쩌랴.

박물관은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학교와 관련된 물건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나머지는 학기별로 다루는 특별전 구역이었다. 오래된 교표들이나 까마득한 윗 학번의 선배들의 성적표, 졸업 증서부터 시작해서 조선 시대의 선비의 삶을 보여주는 유물들, 그리고 끝내는 삼국시대의 유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시품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안해진다. 거부감이 드는 사람은 들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주관적으로 그러했다. 시간의 무게가 주는 진중한 안정감이, 항상 안정된 삶을 바라고 무거움을 추구하던 한없이 가볍고 천방지축인 나에게 무게추를 달아준다. 그렇게 나는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잎과 나뭇가지를 넓힐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성균관대 박물관은 눈물나도록 고맙다. 특별전 구간은 아까 살짝 언급했지만 학기별로 한번씩 특별한 주제로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전을 마련하였는데, 그 주제가 심히 독특하다. <잃어버린 시간, 식민지의 삶>이라 하여 해방 당시를 다루는 것이 아닌, 일제 강점기의 삶을 다루는 전시회이다.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던 30여년의 시간은 우리 민족에게 ‘잃어버린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잃어버린 시간’ 동안, 우리 민족은 일제에 의해 ‘강제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유물들은 식민지 시기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일제에 의해 어떻게 바뀌어갔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 민족이 일제의 억압에 맞서 고군분투해 온 삶의 기록들이기도 합니다. 기나긴 암흑의 현장에서 일제의 압박과 수탈의 만행을 되돌아보는 우리 후손들이 어찌 선인들이 겪어온 그 지난한 세월을 만분의 일이나마 실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 우리의 마음 깊숙이 드리워진 지난날의 어두운 그림자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한시라도 잊을 수 없으며, 잊어서도 안될 상처이자 교훈입니다.

-<잃어버린 시간, 식민지의 삶> 도록 중 ‘<잃어버린 시간, 식민지의 삶>전을 개최하면서’


즉 그 당시의 상처를 되새겨 보자는 것이 이 전시회의 기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도 못했던 다양한 유물들을 살펴보고 그 당시의 홍보영상물을 보고 있으면서 울컥하는 기분이 꽤 많이 들었다. 특별전에는 2학기 시작되어 한 번 갔다오고, 한 번 더 가서 그 당시의 화제였던 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강 군과 많이 하곤 했다. 강 군은 박물관을 닮아 진중한 맛이 있는 친구라 항상 이야기를 하면 편안하니 좋았기 때문에, 가끔 박물관 가이드 해달라는 핑계로 불러내어 박물관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어수선한 글을 끝내자니 더 심란하지만, 박물관을 다시 찾게 되면서 든 생각은 아직도 기억나는게 ‘왜 난 이걸 뒤늦게 되찾았던 걸까?’ 라는 생각이었다. 정말 등잔 밑에서 보물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보물이라기보다는 뭐랄까…하나의 쉼터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논문도 다 끝났겠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쉼터를 들러야겠다. 또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정(靜)한 마음을 엽록소 만들어내듯이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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