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조각
1. 욕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안일한 판단이었을 수도 있었다. 모교는 교생 받아줄 것이다, 라고 말은 했다만 어물쩡하게, 흐지부지하게 "내부 사정으로 미안하게 됐다"라고 넘어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김천의 한 고등학교로 아버지 차를 타고 함께 가면서 참 비참했다. 잘해야겠다는 구름 같은 생각이 뭉게뭉게 들었고, 그 구름이 뿌리는 싸늘한 봄비 같은 어두운 감정들도 모락모락 들었다. 끝없이 되뇌었다. 난 잘할 수 있을까. 욕먹는 짓을 하면 어떡하지.
2. 아마 교생 3주차 때의 일일 것이다. 집에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에 학생들을 만났다. 알고보니 내 부담임 반의 학생들이었다. 수업시간에는 자고 있던 데다가 뒷자리에 앉아서 수업 때나 종례 때 눈길도 잘 주지 못했던 학생들. 그들과 어울려 저녁으로 치킨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교사가 수업 외로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사범대의 커리큘럼 외에도 준비할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상담 수업을 받아보고 싶다, 는 생각도 들었다. 한때는 카운셀러 라는 별명을 자칭하기도 했고, 주변에서도 이를 수긍하기도 했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좀 어려웠다. 마치 군종병 때 상담 해주는 느낌이었다. 다들 원하는 것은 휴가인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던, 그런 어려운 시절.
3. 5월 넘어서 tv쇼 진품명품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우쭐했었다. 방송 나간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박 군과 강 군에게 어디서 나 방송나갔다고 말하지 말아요, 라고 엄포놓듯이 말하면서 친구들과는 그걸로 웃고 떠들었었다. 나란 놈은 참 이기적이기도 하고, 허영심 많기도 했구나. 단순히 방송 5분 못되게 나간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내 내면을 충실히 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보여주기나 하고 앉았냐고. 올해의 밝은 면을 상징하는 방송 출연 사건을 놓고, 이런 저런 검은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4. 여름방학 때 아픈 것이 핑계가 되어 이렇게 또 망가지게 되었다. 공부를 성실히 꾸준히 해줘야 하는데도 전혀 그러질 못했다. 쌓이지 않았다. 세월은 파도 같아 하루 쌓은 한 줌 공부를 야금야금 갉아가 끝내는 깨끗하게 만들어주는고만, 나는 그냥 어린 마음만 앞섰을 뿐이다. 이것은 지금도 그렇다. 넉넉하고 꾸준한 마음으로 걸어가야 되는데 한번 살짝 크게 뛰는 제스쳐를 취하고 네 다섯 호흡을 쉬다가 우물쭈물 해버리니. 나란 놈도 참 이런 면에서는 한결 같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 글이 많이 짧아서 죄송합니다. 한 2주 가까이 이 글감을 놓고 고민했는데 저란 사람이 아직 많이 교만해서 제 흠을 아직 직시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을 들여서 제 명암을 분명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아침입니다.
201512228
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