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 여선

10번

어느 사건.

by 여선

계절학기 첫 날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분명 나에게는 계절학기 첫 날이어야 하는데, 조금 엉뚱한 날이 되어버렸다. 조금 더 설명을 들어가자면 그 날은 내가 2015년 2학기때 들었던 서예지도법의 과제 제출일이기도 했는데 때마침 교수님이 호출하셔서 교수님의 사무실인 인사동의 한 서예실에 들러야 되는 상황이 닥쳐왔다. 당연히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계절수업 첫째 날에는 수업을 들으러 가야 되는 것이 맞다. 하루가 1주차인 상황에서 사전정보 없이 계속 진행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떡하지,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성급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교수님을 미리 찾아가 수업과 관련된 정보를 미리 듣는 것이다. 그래서 국문학과 사무실을 찾아가 교수님 계시는 곳을 여쭤보려 했으나, 학교에 안 계시고 수업때마다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쩌지 하는 마음에 무작정 교수님을 기다리다가 수업 직전에 들어가려는 교수님을 붙잡고 사전 정보를 여쭤보았다. 그리고 교수님은 ‘내가 수업 시간에 말할 걸 따로 학생한테 또 말하라고? 실없는 소리를…’이라고 말씀하시며 단칼에 거부하시고 강의실 안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그때 느꼈던 나 자신의 몰염치성에 대한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다지도 생각이 짧았단 말인가, 하고 한탄하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어쩌랴. 거기에 교수님 서예실로 가야할 시간도 다가오고 해서 씁쓸한 마음을 얼추 수습해서 인사동으로 가야 했다. 날씨도 따뜻하고 해서 창경궁 쪽으로 해서 안국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생각은 ‘나라는 사람의 이중성’에 대해서였을 것이다. 평소에는 예의 바른 척하더니 급하다는 이유로 가면벗고 본색을 드러내듯이 행동을 했다는 것을, 교수님이 단칼에 끊어주기 전까지는 몰랐다. ‘이거밖에 방법이 없어!’라는 다급한 마음에 매달린 거였을까. 그나마 교수님이 그런 정신 나간 나의 모습에 죽비를 내려친 것이 다행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 때 내 의도대로 상황이 전개되었다면 ‘아 뭐야, 역시 그냥 하면 되네’라는 식으로 어물쩡 생각하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글 쓰는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참 소름 끼치는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교수님의 서예실에 들어왔다. 사실 그런 개인적인 서예실은 처음이라 들어서자마자 교수님 개인의 작업실에 빼곡이 들어찬 온갖 형태모를 글자들 부터해서 바깥의 방에 즐비하게 늘어선 붓, 한지 등의 서예도구와 도첩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은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모습이었다. 교수님이 ‘왔어? 차 한잔 해’ 하면서 직접 차를 내려 주시는데 그 순간 차의 향기가 인사동까지 걸어오면서 가졌던 어지러운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차를 받고 앞에 계신 처음 뵙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그 중에 제일 인상깊었던 점은 브라질에서 화방을 하시면서 서예와 동양화를 가르치신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2학기때 라틴아메리카민중사를 배우면서 라틴 아메리카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할 수 있겠지만, 세상에. 서예가? 동양화가? 놀라면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게 되었다. 서예 물품이 없어서 이쪽에서 사서 국제 택배를 통해 배달받는다던가, 그곳에 있는 한국의 기관들과 협력하여 전시회도 준비한다는 등, 정말 듣고 있노라면 입이 쩍 벌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정말 세상 좁구나, 라는 느낌도 받았고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붓글씨라니, 지금 생각해도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그렇게 차 한잔 마시고 나서 교수님의 허드렛일 도와주고 시계를 보니 두시 십분 정도였다. 어정쩡하게 시간이 남아서 어쩌지, 했지만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기퇴근이다! 하면서 룰루랄라 집에 들어갔고, 다음 날의 계절수업은 좀 곤혹스러웠던 것은 차마 묘사하지 못하는 뒷이야기.

20150107

명륜동에서

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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