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 여선

춘계답사 이야기, 둘

2/3. 여정을 끝내며

by 여선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이불에서 비비적거리는 한이 있더라도 일찍 일어나고야 하는 내 습관은 나를 7시 아침식사 시간에 딱 맞춰서 움직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짐을 꾸려 떠날 준비를 한 뒤에 걸어서 문경새재로 이동하였다. 문경 유스호스텔이니까 문경새재는 근처에 있겠지 했는데, 바로 건너편에 있었을 줄이야. 좀 후일담이지만, 집에 돌아와서 이 이야기를 부모님과 했더니 듣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임마 너 옛날에 거기 간적 있어” 하시는 거였다. 머리에 물음표 가득 띄우며 재차 여쭤보니 세트장까지 해서 다 갔댄다. 기억도 나지 않고 몇관문까지 가셨는지 기억 나느냐고 여쭤봤더니 그건 모르겠다 라고 하시는 걸로 봐서는 부모님끼리 여행가신 걸 헷갈리신 게 아닌지 궁금하긴 했으나 뭐 그렇게라도 가족과 이야기 할 수 있는 소재가 생겼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문경새재의 관문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신립 장군이 저기를 버리고 탄금대를 취했다 이말이지?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중에 갑자기 피리아재(대학원생이셨는데 새내기들 모조리 모아서 같이 사진도 찍고 역사적인 사실을 맛깔나게 설명해준다 하여서 피리부는 사나이와 다를 바 없다며 피리아재라는 별명이 붙어버렸다)의 설명이 귀에 들려왔다. 신립 장군은 여진족과 싸워왔기 때문에 기병을 주로 운용하는 전술이 주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협곡한 문경새재 보다는 탁 트인 탄금대가 더 이로울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술의 진보에 따른 시대의 변화가 신립 장군의 패배를 안겨다 준 것은 아닐는지 라는 연민감도 언뜻 들었다.

그렇게 문경새재를 뒤로 하고 마지막 코스인 안동 하회마을로 이동하였다. 하회마을에 대한 환상이 좀 있었는데, 막상 와 보니 그런 것들이 많이 깨졌다. 고요한 가운데서 관광객들이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심지어 안에는 카페도 있었다. 물론 주변 분위기를 맞추느라 초가집 모양의 카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런 데서도 카페가 있구나 하는 것이 매우 신기하게 느껴졌다. 돌아다니다 보니 붓글씨 무료코너도 있어서 내 호인 여선(餘烍)을 붓글씨로 써보려 했으나, 여를 쓰자마자 옆의 주인아저씨가 어 저거 잘못쓴거 아냐? 하고 깐족넣으시는 바람에 그대로 말려들어가서 대충쓰고 나왔다. 물론 나중에 다시 점검해보니 내가 쓴게 맞았다. 아, 내가 글씨를 못써서 주인아저씨가 헷갈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되려 부끄러워졌다. 중간중간 안동소주가 눈에 띄어서 사갈까? 이거 아버지께서 좋아하실 거 같은데 했는데 막상 하회마을 다 돌때는 몰랐다가 다 까먹고 이동하기 위해 버스로 복귀하는 행군 시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물론 진짜 행군은 아니나, 학우들이 오와 열을 맞춰 길을 따라 쭈욱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행군과 흡사했다) 그렇게 하회마을을 벗어나서 먹은 안동찜닭은 정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없어졌다. 너무 맛있었다. 음식 자체도 맛있었는데 시장이 반찬이 되어주니 어찌 밥먹는데 흥이 없지 않으랴. 정신을 차려보니 빈 밥그릇과 국물만 걸쭉하니 남은 큰 접시만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답사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로 복귀하여 답사때 같이 놀았던 학우들과 뒷풀이로 순대국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가고, 즐거이 학업으로 돌아갈 것을 이야기하며 각자의 집으로 복귀하였다. 일요일에 여독이 풀리지 않은 채로 사학과 과제를 하고있는 학우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따라잡은 것은 보너스같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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