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 여선

4월 보고서

마음 여행길

by 여선

정 - 포기선언

돌이켜보면, 항상 내가 내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인 꼴이었다. 능력도 안 되는데 어정쩡하게 발만 담그고 도망친 것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과밴드 인의예지신도 그랬고, 전설 소모임, 클래스 야구팀, 그리고 이제 와서는 많은 공부 스터디그룹까지.......일을 항상 크게 벌려놓고서는, 내가 나를 스스로 옥죈다고 나 힘들어요 하는 꼴이었다. 내 능력이라는 그릇은 간장 종지만도 못한 그릇인데, 담으려는 것은 태평양 한가득이었다. 넘쳐나서 주변 사람들은 다 물에 튀겨 눈살 찌푸리고 나를 노려보고, 나는 ‘이게 난데 어쩌라고’ 하는 식의 태도를 보여왔다. 넌더리가 나서 도망친 사람들이 하루이틀이 아닐 것이다. 뻔뻔함도 정도가 있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인데.....그래서 지금 다시, 또 도망치려 하고자 한다. 살아남기만 생각하고, 졸업 다 하고 주변의 모든 신상이 여유가 생겨서 더 이상 도망칠 건덕지조차 없을 때, 정면으로 부딪쳐보고자 한다. 주변의 성공신화는 성공신화일 뿐이다. 나는 그런 영웅이 아니다. 평범한 생물 한 개체이고 나무가 되지 못한 맹아 한 가닥일 뿐이며 커다랗지 못한 잔불 한 조각일 뿐이다.


반 - 그러나 마음은

우연히 옛날에 좋아하던 노래에 손이 닿게 되었다. 박완규의 'Here I Stand'라는 곡이었는데, 가사를 흥얼거리다가 코러스 부분에서 짜릿하며 전율을 느끼며 용기가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직후 이 상황을 곱씹어보면서 살짝 우울함과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I know myself, I can everything(난 내 자신을 알아, 난 무엇이든 할수 있어), 그렇게 난 네 곁에 있겠어’라는 가사가 나를 자극주었는데,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살아남아야겠다고 겨우겨우 이악물고 다짐했는데 겨우 이렇게 자극받고 불타올라버려봐야 또 욕심부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너무나 겁이 났다. 무섭다. 이 용기가 무서웠다. 내 급한 마음을 알고 있기에 더 무서웠다. 조그만 자극 하나가 스파크가 되고 말라서 물기 하나 없는 비틀어진 건초에 불이 붙듯이 맹렬하게 타오르다가 금새 꺼져버릴 내 마음이 무섭다. 당장 마음 먹은 순간순간만으로는 나는 지구상 누구보다 열심히, 맹렬히, 성실히, 친절히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 행동들은 전혀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단지 이런 꿈만 꾼다는 것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임고 하나에만 마주하고 싶다. 지저분하게 하니 안하니 이러지 말고 확실하게 정리하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

혼 - 나의 바다여, 다시 꿈을 꾸는 나에게 불같은 축복을

어느 쪽이 틀린 마음이 아닐 것이다. 분명히 자기 생각이 뚜렷한 파편들이다.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 나온 결론을 굳이 여기에 형태화하자면, ‘확실한 정과 확실한 반을 내리자’라는 판단이었다. 조금 엉뚱한 결론이었지만, 정과 반의 결과로 나온 행동에 변명을 두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하자, 는 이야기였다. 내가 엉뚱하게 흐지부지하는 것만 아니라면, 지금의 정도 반도, 모두 정리되어서 한 방향으로 흐를 날이 올 것이다. 단지 지금은 내게 겹친 일이 많아서 계속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뿐일 거다. 그렇다고 지금 혼란스러워하면서 흐지부지하게 된다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을 확실히 하면서 차근차근 정리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정리되는 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공부에 모든 힘을 쏟아보고 싶다.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마음을 정리해 보자. 딱 이번 여름까지다. 그때까지만 버텨보자. 무엇이 나올지...

다시 부딪쳐 버려진다해도 나에게 못다한 다짐을.


- 사실 처음에는 ‘포기선언’ 하나만 따로 글을 쓰려고 저번주 월요일에 준비해두고 있었는데 차일피일 게으름 때문에 미루다 보니 오히려 심정의 변화가 스펙트럼처럼 넓어져서 이를 한꺼번에 정리해보자는 마음에, 조금 더 지나서 글을 쓰게 되었다. 뒤에 나올 20160411-20160418 이라는 구절에 담긴 의미는 이것일 뿐이다.

- 과거의 나는 강박관념이 좀 더 심했다. 새내기 시절에는 시험 제대로 못 볼거 같아서 아예시험을 참석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물론 그 학기는 학사경고. 아등바등 버텨나가면서 살아야한다는 것은 옵션에도 없는, 오만할 정도의 0과 100만을 추구하던 그 때의 나였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신기해하지 않을까. 이렇게 구질구질하게라도 살아가려 하는 내 모습이.

- 정반합이 아닌 정반혼이 된 이유는, 내가 아직 합(合)을 할 내공이 없어서이다. 합을 이루어놓을 정도로 정과 반을 정제해서 제시하지도 못하기도 했고, 너무나 모자랄 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섞어놓고 아등바등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혼(混이)라 붙여놓고, 모자라는 글솜씨로 인해 더 지저분한 여(餘)라는 공간마저 따로 만들어야 했다.

- 혼의 부제와 마지막 문장은 모두 피아(PIA)라는 락 밴드의 노래 ‘My Bed'의 가사였다.



20160411-20160418

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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