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간 여선

2번.

침묵에 대한 작은 주제던지기

by 여선

2010년 G20 폐막 기자회견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은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의 우선권을 주었다. 훌륭한 개최국으로서의 특권이라면서. 그런데 그 당시에 한국의 기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침묵만이 흘렀고, 오히려 중국 기자가 아시아를 대표한다면서 나서서 질문을 하였다. 어쩔수 없이 오바마 대통령은 그에 대답을 해주고 한국 기자들에게 실망스럽다는 한 마디만을 하였다.

나도 이 사실을 몰랐다가 최근 강의를 통해 EBS 다큐프라임 <왜 우리는 대학을 가는가> 5부를 접하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좀 많이, 충격을 받았다. 저런 어색함과 수줍음이, 예의이고 미소같이 잔잔한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 뒤의 기자들의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그대로 인용해 본다. “우리한텐 질문도 답인 거 같아요. 어디까지 질문이 용인되고,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최근 사회에 대해 소통과 공감이 부족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 안 될 것이다. 저렇게 질문마저도 제한되는데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서로에 대해 이해를 하고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다들 싯다르타와 가섭의 이심진심의 묘를 터득하여 말이 없이도 진리를 깨우치는 생불이란 말인가? 아니면 텔레파시가 개발되어서 말없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머릿속에 전자장치가 있어서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이동식 디스크에 담아서 정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단 말인가?


가섭은 싯다르타의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도 깨달아서 불교의 진수를 전수받았다. 하지만 이러기 위해서 가섭은 부처의 곁에서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듣고 겪었는가. 그 오랜 시간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가섭은 이심전심의 묘를 행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을, 얼마 안 되는 만남으로 행할 수 있단 말인가. 대단한 성인군자들이다.


이러이러한 문제들만 제시해 놓고 해결책을 제시 안하는 정말 염치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는데,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의 침묵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이다. 침묵은 이제 금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조정하여 모두의 권리가 보장이 될 수 있는 ‘피곤한’ 사상인데 그것을 귀찮다는 이유로, 어색하다는 이유로, 쪽팔린다는 이유로 말하지 않는 사람은 ‘왕권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인식하고, 천천히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는 의미의 '주제던지기' 라는 부제를 달아보았다.


2015년 9월 13일

감정을 조금 억누르지 못하고 급하게 글을 끝마치며,

원당에서, 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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