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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May 07. 2020

생각의 빈틈을 메우는 메커니즘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떻게 다리를 움직이고 팔을 흔들어야 하는지 의식한다면 인간은 지구에서 생존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집중을 걷는데 쏟는다면 다른 시각 작용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여서 사나운 맹수의 모습을 보고도 무시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두 개의 사고 세계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습관처럼 자주 하는 영역을 담당하는 무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세상의 해석을 만들어내는 의식이다. 다음 그림을 살펴보자.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29p


흰색 삼각형이 보이는가?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림에서 흰색 삼각형은 없다. 이를 '카니자 삼각형'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시각이 세상으로 향한 단순한 창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해석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그림이다. 우리의 시각계는 생존을 위해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사진을 한 번 살펴보자.


FedEx 로고에서 흰색 화살표가 보이는가? 우리의 뇌는 이처럼 과거 우리가 보았던 기억을 바탕으로 앞으로 보게 될 사물의 형태를 판단한다. 심지어 카니자 삼각형을 볼 경우처럼 장면에 빈틈이 있으면 환경 신호를 이용해 그 빈틈을 메우기도 한다. (흰색 화살표 말고도 흰색 수저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림이나 사진에서도 빈틈을 메우면 혹시 문장에서도 그것이 가능할까? 인간은 잘못된 글자와 오타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문장을 해석하는 데는 뇌의 더 넓은 영역이 작동한다. 뇌는 익숙한 패턴을 인식하고 예상함으로써 사고의 효율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한다. 의식적인 자기 숙고 능력은 뇌가 평상시처럼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정보 처리로 들어가 빈틈을 메우려는 사고를 중단시킨다. 또한 뇌의 무의식계는 인식한 조각을 모두 모아 패턴을 예상하고 필요할 때는 빈틈도 알아서 메운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의미 있는 해석을 한다. 무의식계는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우리 안의 좀비


그렇다면 무의식은 어떤 규칙으로 동작할까. 다양한 무의식에 대한 실험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에서는 농구공을 열심히 패스하는 영상을 보며 숫자를 세는 실험자에게 고릴라를 보여주지만 40%가 고릴라를 인식하지 못한다. 아마도 눈으로는 보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의식 행위에 뇌의 영역을 사용해서 고릴라를 보고도 지각하지 못한다. 우리가 보고 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해도 무의식은 사물을 볼 수 있다.


이런 무의식에서 사물을 보았지만 지각하지 못하는 현상은 자동차 운전 중에도 빈번히 일어난다. 운전을 하며 상대방과 통화하는 집단은 매우 큰 현수막을 보고도 기억하지 못한다. 전화 통화에 집중하면서 운전은 잘 하지만 시각 처리에서는 무의식의 시스템을 따른다. 운전이 만약 '습관'이 되어 있지 않다면 의식의 영역을 사용해야 하므로 전화 통화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기 힘들 것이다. 습관이 되면 일을 처음 할 때만큼 정신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습관 체계는 비습관 체계보다 훨씬 빨리 작동한다.


습관은 사건 기억에 정보를 기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건 기억에서 정보를 가져오지도 못한다. 사건 기억에는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의식의 검열이 약해지는 새벽 시간에 운전은 몽유병과 비슷한 증상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한다. 직장에서 늦게까지 야근하며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멍한 상태에서 미리 뇌에 프로그램된 절차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래서 어떻게 집에 도착했는지 지각하지 못하지만 운전은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자기 통제 능력을 무한정 읽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계획 수립, 의사결정, 집중력 통제, 자기 감시와 같은 뇌의 가장 고차원적인 기능이 상실된다. 그러면 좀비와 같이 무의식에 프로그램된 사람을 물어뜯고 하향평준화하는 행동만 일삼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동 시스템이 존재함으로써 인간이 얻는 장점은 무엇일까? 멀티태스킹을 위해 뇌는 내부 기반 작업을 만든다. 좀비는 갖지 못한 의식과 무의식의 행동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걷기 연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걸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운전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다.



스트루프 효과

출처 : 스트루프 효과, 색과 뇌에 관한 놀라운 비밀! -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자동 시스템이 존재하여 얻는 이득이 있다면 손실도 분명 존재한다. 다음 한 가지 실험을 해보자. 왼쪽과 오른쪽에서 알 수 있듯이 단어와 폰트 색이 다르면 단어가 가진 의미가 주의를 흐트러뜨려 빨리 읽는데 방해가 된다. 99퍼센트 이상의 사람에게 존재하는 스트루프 효과는 오랫동안 연구되고 정립된 이론이다. 스트루프 효과는 서로 경쟁하는 인지 신호들이 뇌에서 충돌하면서 생긴 결과다. 그렇기에 효과를 통제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오히려 습관이 인지 처리를 방해하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주변 세상의 질서와 체계를, 그리고 그 세상 안에서 우리가 처한 위치를 이해하려는 욕구가 있다. 욕구와 욕망을 고민하고,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려면 자신의 개인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개인사를 되돌아보면서 스스로 자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분리된 뇌


뇌는 불완전한 사고와 인식의 빈틈을 메우려는 습성이 있다. 그 빈틈을 메울 때마다 자아의식 유지라는 목적에 다가간다. 무의식계는 인간으로서 갖는 안정된 정체성을 보호하는 데 철저히 중점을 둔다. 감정적 트라우마를 겪었을 때 무의식계의 빈틈을 메우려는 노력이 발휘된다.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사고에는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하나는 심박수가 크게 증가하고 사고를 기억하는 내내 초조하고 가슴이 조마조마한 경우처럼 뇌 활동이 두드러지게 활성화된다. 또 다른 하나는 사고를 기억하는 동안에도 심박수가 안정적이고 무감각한 상태다.


어린 시절 경험한 사건은 기억에 정확히 남아있다. 그날 모든 정황이 머릿속에 떠오르진 않지만, 특정한 몇 가지 장면은 뇌에 깊게 새겨져있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상태가 된다. 뇌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나 기억을 격리할 때 자아의 일부도 함께 격리한다. 그래서 사건 당일의 기억과 감정은 모두 뇌에 저장되어 있지 않고 격리되어 있다.


우리의 뇌는 수많은 위험한 경험에서 자아를 보호하려고 한다. 자아는 도대체 무엇일까. 기억에 의존해야 할까. 아니면 감정과 정서에 대한 경험일까. 인간의 정체성은 어느 특정 영역에 존재하지 않고 뇌의 여러 영역과 과정이 협력한 결과 나타난다. 그러므로 감정, 정서, 기억, 자기 통제와 같이 뇌의 모든 결과의 합이 자아 정체성이 아닐까 한다.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가 지금까지 읽어 본 신경과학 책 중에서 가장 재밌었다. 뇌가 만들어내는 논리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시각 장애인이 지팡이 하나만을 의지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에서 어떻게 보일지 호기심이 있었다. 궁금증을 모두 책에서 배우고 해소할 수 있었다. '자아란 무엇인가'를 신경과학으로 접근하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사례를 통해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학습할 수 있었다.






참고 도서 :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저자 : 엘리에저 스턴버그, 출판 : 다산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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