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준원 Jun 17. 2020

진실과 진리의 디지털 유산을 구하라

책장 한 칸을 차지하는 내용물은 다름 아닌 아날로그 유산이다. 군 복무 기간에 주고받았던 편지와 학창 시절의 사진과 편지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추억을 남기는 이들은 거의 없다. 아날로그 방식은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면 함께 사라지기 마련이다. 사실 보관하기도 애매하고, 이사하는 순간에는 정말 중요한 문서나 자료가 아니고서야 쓰레기통으로 향하기도 한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거기에 맞게 행동을 조절해나갈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삶에서 남는 유산은 그들과 함께한 추억이다. 글, 사진, 영상이 모든 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어떤 프라이버시가 유혹할지 숙고해봐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는 이러한 죽음의 연장선에 있는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깊이 사색하게 만든다.


현대 사회는 디지털 시대다. 의도적으로 저장한 기억과 우연한 삶의 흔적들로 구성된 디지털 자료가 매일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를 읽어보면 인간의 죽음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새로운 엘리시움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당신이 하는 일만큼이나 당신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48p


텅 비어 있거나 제대로 관리가 안 된 웹페이지 역시 솔직하지 못한 웹페이지만큼이나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과연 정보화 시대를 통제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보화 시대의 통제를 받는 것일까? 디지털 시대에 어떤 유형인지 자신을 파악해 보아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시민들을 분류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책에서는 은둔자, 실용 주의자, 큐레이터, 상시 접속자, 생활 기록자 이렇게 다섯 유형으로 분류한다.


은둔자는 말 그대로 디지털 유산을 거의 남기지 않고,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은둔자 유형은 아니라고 예상한다. 디지털 실용 주의자는개인적인 성격이 결여되어 있고, 삶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디지털 문물만 활용하는 사람이다. 큐레이터는 디지털 실용주의자가 하는 모든 활동을 하면서 직업적 이유에서든 개인적 이유에서든 디지털 자료들을 신중하게 만든다. 전통적인 개념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면서 자료가 가져올 결과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상시 접속자와 생활 기록자는 디지털 프라이버시를 다르게 해석하고 경험하는 측에 속한다. 상시 접속자는 디지털 원주민일 가능성이 높다. 태어나면부터 디지털을 경험한 세대를 뜻한다. 생활 기록자는 자신의 일상을 최대한 온라인상에 많이 남기고자 의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5가지의 분류를 토대로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한번 점검해 보자. 나는 아날로그의 세상에서 디지털 환경의 격변을 겪은 세대는 디지털 이민자라고 부를 수 있다. 아직 이민자가 아닌 상태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원주민이 많아지는 세계가 코앞에 다가왔다. 인간이 인터넷상에 남기는 가상 자아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를 끌면서 활동을 이어간다.


페이스북의 이미지와 텍스트 다운로드는 크라우드 시스템으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서버로 복사한 이후에 다운로드한다. 그래서 원본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이러한 기술적 한계는 명백히 프라이버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맥락에서 벗어난 부정확하고 기만적인 정보, 내용 자체는 맞지만 노출되길 원치 않았던 정보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관점에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한 흔적도 남겨질 수 있다. 당신은 괜찮지만 함께한 사람들 중 그렇지 않은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디지털 시대에 애도와 슬픔이 발현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까?



온라인상에 표출된 비탄의 해부

소셜 미디어는 친사회적이 되도록 우리를 자극할 수도 있고, 우리를 심각한 나르시시스트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디지털 유산은 슬픔에 처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87p


책에서는 디지털 유산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서 생각하는 장치를 마련해두었다. 지속적인 결속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관점이며, 각각의 문화, 가정, 개인의 맥락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최근 지인의 어머니가 별세하셨는데 6달 전부터 하나의 영상을 남기기 위해 촬영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인의 어머니와 함께 포옹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은 지속적인 결속을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론 애도의 한 요소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원하지 않는 디지털 유산으로 남겨질 수도 있다.

생활 기록자들에게 소셜 미디어는 양면성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자신의 얼굴을 만천하에 알리는 직업인 연예인은 이러한 소셜 미디어에서 다양한 현상을 야기한다. 잊을만하면 연예인의 슬픈 소식이 전해진다. 악플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을 심하게 앓다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도 하고, 가정 폭력으로 얼굴에 멍이든 채로 화면에 노출되어 광고를 수주한 회사가 소송을 걸기도 한다. 현재 그들의 몸은 분명 죽었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죽은 걸까? 그들의 SNS 계정은 추모 계정으로 남아 있고, 그들의 생애는 위키피디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과연 인터넷으로 영속성을 가질 수 있다면 지속적인 결속을 유지해야 할까.


하지만 디지털 유산이 지속적 결속을 와해하는 상황도 분명 발생한다. 접근과 통제라는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접근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지속적 결속의 양면성이 존재하듯, 통제받은 그들에게도 애도와 추모하지 못한 상황이 존재한다. 페이스북의 한 가지 설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계정 양도를 누구에게 할 것인가이다. 아무런 설정을 하지 않고 삶을 마감하면 추모 계정으로 변경되고 온라인상의 친구가 아니라면 접근은 불가능하다. 만약 자녀의 억울한 죽음이 발생했다면 부모는 자녀의 SNS 계정에 접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처럼 디지털 유산은 누군가에게 구원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다가온다면, 그 유산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리고 누가 결정해야 할 것인가. 정말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산도 재산과 마찬가지로 직계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할까. 아니면 디지털 대리인에게 해야 할까. 대리인이 없을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플랫폼의 주인인 기업에게 유산을 물려줘야 할까. 디지털에 남겨진 유산의 대부분은 개인 하나로 남겨진 경우는 드물다. 공동 자산인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정말 많은 논의가 필요한 디지털 유산이다.



철창문 뒤편에서 일어나는 일들

'프라이버시'란 우리에게 무엇을 뜻할까?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198p


프라이버시에는 3종류가 존재한다. 영역, 신체, 정보 프라이버시가 그 3가지다. 고도로 연결된 온라인 세상에서 사실 프라이버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이성과 소개팅하기 전에 구글을 검색해서 어떤 사람인지 살펴볼 수 있는 세상이다. 과연 프라이버시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특히나 생을 마감한 사람의 추모 페이지에서 온갖 메시지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떨까. 사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그러한 추모와 악의적인 메시지는 희생자로 간주되는 죽은 사람이 겪는 게 아니라,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임에 틀림없다. 디지털 시대의 프라이버시 개념에는 죽은 개인과 온라인상으로 의사소통을 나눈 모든 사람의 정보를 포함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그들의 정보까지 함께 저장되어 있는 온라인의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생각해볼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 시대에 내포된 모순은 자신의 정보에 대한 모든 권한과 통제권을 보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어떤 권한이나 통제력도 지니지 못하기도 한다. 기업의 서비스를 개인이 이용하고, 죽음 이후에 서버의 유지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에게 떠넘겨진다. 그렇기에 디지털 유산을 처리하는 주최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디지털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보아도 삭제하고 싶은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존재한다.


사실 죽음과 디지털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더 명료하게 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권력과 기업 경영, 소유권과 프라이버시, 정체성, 자유와 선택, 유대감, 기억과 유산, 사랑 등에 관한 광범위한 통찰을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도서 :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저자 : 일레인 카스켓, 출판 : 비잉(Being)

#디지털시대의사후세계 #일레인카스켓 #비잉 #디지털유산 #디지털프라이버시 #추모페이지 #디지털상속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의 빈틈을 메우는 메커니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