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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May 20. 2020

자식은 부모의 애완견이 아니다

K군은 청소년 시절 제빵사를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 내어 부모에게 제빵 학원을 등록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K군의 희망은 부모의 한 마디 거절로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K군은 깊은 좌절감을 맛보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컴퓨터에 흥미를 느껴 대학을 컴퓨터 공학과로 진학한다. 하지만 대학교도 자신의 마음대로 정하지 못했고, 집(지방)과 가까운 학교로 진학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가려면 재수를 해야 했다. 재수를 하지 않고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에 특별한 점은 가족 간에 발생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K군은 적당히 대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의 학원생활을 원만히 수료하여 수도권 중견 기업에 입사하여 무탈한 삶을 살았다.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회사와 자취방을 오가며 문제없이 지내는가 했지만, 해가 지날수록 점차 무기력해졌다. 개발자가 되려는 목표를 달성한 이후부터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 채 학습된 무기력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그나마 경제관념은 투철하여 돈을 제법 모았다. 5년 동안 모은 돈과 대출로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계약했다. 자신의 보금자리가 생긴 들뜬 마음에 인테리어를 알아보는 동안에도 부모는 계속 관여했다. 자신이 원하는 벽지를 고르지 못했고, 부모의 일방적인 요구에 이리저리 휘둘렸다.


다른 건 다 양보해도 결코 놓지 않았던 한 가지 인테리어는 핏대를 세워가며 처음 부모와 언쟁을 벌여 획득했다. 자신이 원하는 인테리어를 하나 확보함에도 불구하고, K군은 죄책감이 들었다. 평생 부모의 말에 순종하며 살아왔는데,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서 부모의 마음을 언짢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K군은 부모가 세상과 이별하면 자신은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주인이 죽으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애완견과 무엇이 다른가.



내가 문제여서 가족이 힘든 걸까

사회에서 가장 작은 공동체는 바로 가족이다. 인간은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에서 삶을 시작한다. 물론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없이 삶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모의 품에서 생존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과 서로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놓인다.


상호 의존성은 가족 안에서 서로 다른 각 개체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가족체계의 이론이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에게 의존해야 삶을 살 수 있는 연약한 존재다. 그렇지만 성인이 되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의존성만으로 사회생활은 불가능하다. 비록 라이언킹이 아닐지언정, 내 삶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독립성을 키워야 한다. 가족 공동체 안에서는 의존성과 독립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그러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 못하고 가족 구성원 간의 상호의존성이 너무 높으면 각 구성원의 독립적이고 자율성이 지나치게 제한되고, 반대로 너무 낮으면 가족관계가 소원하고 가족 공동체로서 연대 의식이 희미해지는 역기능 상태가 발생한다.


K군의 사례에서는 상호의존성이 너무 높아서 부모의 말에 언제나 수긍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권위에 억눌려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고 포기한다. 이러한 시기가 오래 지속되면 무기력감을 느끼고, 다시 도전하기 어려운 상대방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순응하는 자세로 임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 왜 힘겹게 삶을 사는지 사회와 벽을 세운 채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무시당하면 행동의 문제를 판단하고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은 점차 자신의 수치심으로 바뀐다.


결국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무엇을 하든 타인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고 자신이 직접 도전하는 의지는 약하다. 그래서 학습된 무기력의 악순환으로 삶을 살아간다. 학습된 무기력은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해봐야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현상이다. 하나의 미약한 실수라도 크나큰 실패라고 생각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점차 도전하는 의지조차 없어지고, 가끔은 재능 탓을 하며 타인이 이룬 성공의 결과만을 바라보며 열등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무기력증은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자존감을 바닥으로 이끈다. '난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자괴감까지 든다. 이러한 생각으로 대인관계를 기피하고 점차 육체와 정신이 모두 피폐해지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무기력의 해결책

그렇다면 상호 의존성의 균형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상호 의존성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면 원인부터 파악해보자. 무기력은 실패가 계속 누적되면 빠지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통제권이 없는 경우에도 무기력증이 생기기도 한다. K군의 경우에는 가족 공동체에서 통제권의 상실부터 무기력의 악순환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부모와 떨어져 사회생활을 하면서 독립성을 키우지 못해 무기력증에 도달했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무기력증의 회복은 자율성에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든 취미 생활에서든 아주 작은 성취를 경험해야 해결이 가능하다. 부채의 이자가 높은 금액보다 원금이 적은 금액의 이자를 먼저 갚아 작은 성취를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원금과 이자가 높은 금액부터 해결하려 한다면 중도 포기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우리는 목표는 원대하게 세부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1년에 책을 많이 읽겠다'와 '1년에 52권을 읽겠다'의 목표는 차이점이 상당하다. 후자는 목표를 세부적으로 나눌 수 있다. 1년에 52권은 일주일에 한 권을 읽는 목표로 다시 바꿀 수 있다. 우선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어보며 자신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일주일에 1권의 책을 읽는 목표를 달성했다면 작은 성취를 맛볼 수 있고, 성공하지 못했다면 일주일에 한 권의 목표를 조정해야 한다. 52권이라는 거대한 목표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우선은 한 권을 읽는 데 목표를 두고 성취감을 맛보아야 한다. 세부 목표를 하나둘씩 달성하다 보면, 어느덧 1년에 52권은 아닐지라도 절반 이상은 달성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작은 성취를 달성하면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고 자율성을 회복한다. 현실 가능한 작은 목표는 자율성 회복에 적절한 도움을 준다.



상호 의존성의 균형 회복

여기에 더해 한 가지 인지 상태가 추가되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통제 가능 여부를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통제하지 못하는 일에는 과감히 분리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통제 가능한 일에 집중해야 성취감을 느끼고 무기력증에서 회복할 수 있다.


독립성은 부모의 의지나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사람마다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 스스로 책임감으로 통제권을 행사하는 행위에서 독립성의 특징은 배양된다. 타인과 자신의 생각이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에서 죄책감은 사라진다. 그래서 독립성을 키우기 위해 충동에 의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자신이 스스로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가려면 부모와 분리 상태가 되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독립성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 누군가는 어떻게 부모와 분리되어 살아가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사회의 구조상 예의를 중요시하는 관습으로 의존성이 높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앞서 이야기한 K군도 부모가 없는 세상에서 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심리 상태에서는 과감히 부모와 분리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작은 성취감을 얻어야 한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식이 사회에서 제대로 성장하고 부족함 없이 생활했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의 욕심이 과하여 자식을 소유물처럼 생각하여 마음대로 휘두른다면 의도한 대로 성장하지 않는다. 일정한 기간이 되면 밀림 숲으로 보내는 라이언킹처럼 인간도 성인이라는 단계로 접어들면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키워주어야 한다.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의 밑에서는 독립성을 키우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 사회의 기성세대는 전쟁을 겪은 세대다. 한국 전쟁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 파병, 그리고 경제 부흥의 격변기를 맞이한 세대다. 이러한 사회 흐름 속에서 과연 자녀의 의존성, 독립성을 키워준 세대가 얼마나 있을까. 매슬로우의 욕구 실현 단계에서 생존 욕구는 가장 기본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욕구다. 기성세대는 생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생존 욕구에 매진하다 보니 가족의 공동체에서는 애착이 존재하기 힘들다. 그래서 의존 성향이 높은 부모와 분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 형성으로 안정 애착을 경험해야 한다.


K군은 세상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최대한 기피한다. 독립성의 능력을 배양하지 못하여 어떤 관계에서든 의존 성향을 드러내기에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하기 어려웠다. 인간은 외롭게 살려고 해도 살기 힘든 신경 구조를 갖고 있다. 인간 자체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외로워지면 인지능력이 저하되고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진다. 의존성과 독립성은 인간관계에서 회복해야 한다. 자신의 목표점을 하나둘씩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자율성에서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영감을 얻고, 공감할 수 있는 유대감에서 상호의존성은 회복하리라 생각한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상호의존성 #학습된무기력 #자율성 #통제권 #상호의존성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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