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너무나 가깝고 먼 당신
대인관계, 마음치유, 정신건강과 같은 부류의 심리학 책을 읽다 보면 한 가지 공통 질문이 떠오른다. 나의 마음을 치유하고 안정시키는 행동은 명백히 옳다고 본다. 하지만 대인관계는 절대로 나의 안정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인관계는 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질문은 바로 여기에서 파생된다. 나의 마음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면 대인관계에서도 괜찮아질까? 나만 그런다고 대인관계가 해결될까? 상대방은 전혀 노력하지 않고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나의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의 건강이 회복된다고 앞으로의 대인관계가 괜찮을지 의문이 든다. 의문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대인관계를 개선하기 힘든데 굳이 책을 읽고 마음 건강을 단련해야 할까. 그냥 지금처럼 마음의 문을 닫고 단절하고 삶을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와 같은 의문점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았다. 내 마음을 다스리고 지난 과거의 아픔을 회복하는 행동은 단지 아픔을 준 대상과 대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에 있지 않다. 물론 그 대상과 관계 개선이 발생하여 회복할 수도 있지만, 온전히 목적이 좋은 관계 개선에만 있지 않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언제나 새로운 사람과 만난다. 원하는 만남이든 그렇지 않든, 수가 많든 적든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남은 인생에서 단 한 사람도 만나지 않고 삶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은 없다. 지금 나의 마음을 건강하게 단련하는 목적은 바로 미래의 대인관계를 위한 일이다.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미래의 삶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람은 일상생활이 무기력하고 지리멸렬하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거절당할 두려움에 자신의 깊은 속내도 꺼내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을 피하고 혼자의 삶으로 도주한다.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외로운 감정을 마주하기 어려워 게임과 술로 달래곤 한다. 그들은 결코 혼자가 편한 게 아니라 외로운 게 분명하다. 대인관계의 문제점을 알고도 혼자가 편하다는 감정은 그 순간을 회피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어도 자신의 마음을 건강하게 바꾸지 못한다. 이런 과정은 삶을 점점 악순환으로 만든다. 무기력증의 증가는 우울감으로 번진다. 삶에서 불행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이런 의지를 모두 꺾어버린다.
우리는 결국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자신의 날을 위해 마음의 치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마다의 거리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알아야 자신의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당신과 나 사이》에서는 대인관계에서 사람과 거리를 어느 정도 두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역설한다. 우리는 친구 사이에서, 직장 동료 사이에서 그리고 가족 사이에서 상대방에게 수많은 상처를 주고받는다. 저자는 서로 덜 상처 주면서 살고 싶다면, 관계로 인해 더 이상 괴롭지 않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거리를 두라고 권고한다.
왜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는 친절하면서도
정작 가까운 사람들과는 잘 지내지 못하는 걸까.
<당신과 나 사이> 5페이지
놀랍게도 사람을 가장 아프게 만든 사람들은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왜일까. 낯선 사람에게는 욕심이 전혀 없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우리는 원하는 바가 많아서일 거다. 내가 성장하고 열심히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우리는 응당 그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어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내가 이 정도 노력했는데 당연히 상대방도 나만큼 노력하고 성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만큼 너에게 베풀었으니 너도 나에게 베풀어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관계가 힘든 지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베푼 관심과 배려를 어떻게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로 불만이 발생하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며 분노한다. 그렇기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대방을 바꾸려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는 나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별거 아닌 거 갖고 뭘 그렇게 신경이 예민하냐며 늘 핀잔을 주셨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감정을 공감받은 적이 전혀 없다. 두 살 터울의 누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어머니만은 나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시긴 했다. 그렇지만 명확한 근거를 통해 나를 설득하고 교육하진 않으셨다.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저자의 말처럼 거리를 두는 건 나와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다. 물론 부모님이 어쩔 수 없이 경제적 활동에 여념이 없었다는 건 인정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30년 동안 아버지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를 바꿀 생각도 비난할 의지도 없다. 이제 지쳤을 뿐이고, 내 마음의 문을 닫은 것뿐이다. 저자의 말처럼 관계로 인해 더 이상 괴롭지 않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거리를 두어야 마땅하다. 난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거센 반발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아버지가 바뀔 리 만무하니 무조건 내가 참고, 고통을 감내해야 마땅한가. 저자는 적절한 거리만 유지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 정도로 해결할 수 없었다.
과거의 고통을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불편한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거리를 두는 것을 넘어 단절이라는 초강수 선택이야말로 나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이었다. 이제 아버지와 단절한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은 계속 흘러왔지만, 여전히 주변 사람들 덕분에(?) 거리감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앞으로 단절은 지속될 것이고, 분명 이겨내려는 의식적 노력도 계속할 것이다. 왜? 나는 앞으로도 아내와 아들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는 강한 의지가 있다.
지난날의 상처가 너무 아팠던 그들은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적당히 자신을 감춘 채 살아가기를 택한다. 아니면 뭔가를 아주 특별하게 잘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완벽해지려고 애쓰다가 어느 순간 지쳐 버린다. 더 이상 노력해 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깊은 우울뿐이다. <당신과 나 사이> 8페이지
어린 시절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소유욕이 강했고, 나의 부탁을 전혀 들어주지 않는 부모님 몰래 다양한 물건을 훔쳤다. 만화책과 장난감이 하나둘씩 차곡차곡 쌓여도 도벽을 멈추지 않았다. 당연히 어머니는 물건의 출처를 물으셨고, 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만큼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훔쳤다. 언제나 결과만 판단하고 훈육하시는 부모님의 언성에 앞으로는 완벽한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내가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지난날의 상처가 너무 아파 더 이상 상처 받기 싫었다. 그래서 스스로 판단했을 때 실수하거나 행동의 이상을 감지하면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언제나 특별하게 무언가를 완벽하게 해내야만 사랑받는다고 생각했고, 어느 순간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은 무기력으로 변했다. 더 이상 노력해 봐야 소용없고 사랑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깊은 무기력은 우울로 바뀌었다.
내가 잘못을 할 때마다 어머니의 괴로운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이 나 때문에 피해 입는 건 죽도록 싫었다. 나의 일로 어머니가 괴로워하고 바쁜 아버지는 나의 이야기를 묵살했다. 괜히 바쁜데 나의 일로 주위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모두 내가 못나서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우리가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죄책감을 느낀다 한들 절대로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과 나 사이> 124페이지
거절하지 못하고 모르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고,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피드백을 듣기 싫어 아는 체하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거절하면 상대방이 실망하겠지', '내가 참는 게 모두를 위한 일이야'라는 생각이 나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나는 다 받아줬는데 가끔 상대가 미안한 마음이 없고 오히려 당당하게 행동하면 너무나 당황했고, 감정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면 이성적인 판단으로 더욱 분노했다. 점점 나이가 들며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 교감신경이 안정을 되찾았다.
내가 느끼는 수치심은 타인과 비교에서 파생한 열등감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고 작은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사람은 누구나 틀릴 수 있고, 실패할 수 있고, 포기할 수도 있다. 그것이 내가 부족하거나 결함이 있어서라고 강하게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실패가 부족함과 결함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완벽주의자다. 완벽주의는 완벽한 상태가 어딘가에 있으니 높은 기준을 향해 자아를 이끌고 가는 망상이다. 그래서 완벽주의자는 오점을 남기기 싫어하고, 급기야 오점이 생기면 패배자 코스프레를 한다.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고 개선하는 적절한 행동마저도 완벽해야 하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대인관계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통제권은 나에게 있다. 내가 선택했다면 응당 뒤따르는 결과에 책임을 지면 된다. 하지만 무늬만 어른인 사람들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과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지만 가족은 가까운 사이인 만큼 헤어진다는 말은 상상 속에서도 벌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내가 상대방에게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강한 인식이 자리 잡았다. 만남과 이별을 할수록 점점 자존감이 하락했고,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웠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착각했다.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마라. 그들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산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라. <당신과 나 사이> 292페이지
싫으면 싫다고 표현할 줄 아는 아내를 보며 처음에는 가슴이 먹먹했다. '어떻게 나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있지'라는 정신적 충격이 상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름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배려하며 숨 쉬고 있다. 그리고 타인도 나와 똑같이 살아야 마땅하다는 당위적 사고와 완벽주의도 상당히 와해되었다. 그로 인해 실수하면 어때라는 긍정적 사고도 많이 향상되었다.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아내와 아들이 있어서 내가 원하는 인생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계획해본다. 대인관계를 어려워하는 분들은 책을 읽어보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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