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0권씩 독서하고 글을 쓰며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렇지만 책의 분야는 한정적이었다. 실용서라든지, 심리 관련 분야라든지. 지금까지 읽은 에세이가 문제일까. 아니면 내가 문제였을까. 김신회 작가의 <심심과 열심>을 읽어보며 느낀 바로는 후자에 가까웠다. 피폐한 삶을 개척해보겠다고 용을 쓰던 나에게 다른 사람의 글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유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아픈 나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며 에너지를 소비하기 싫었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에세이와 시는 읽어도 재미없고, 무언가 얻는 게 없는 시간 낭비, 혹은 킬링 타임용으로 생각했다. 흡사 무협지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공감으로 경제적 가치를 얻을 수 없다는 강력한 편견이 생겨서 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국내 작가의 책은 거의 읽지 않았다. 2년 8개월의 짧은 독서 인생에서 230권이 넘는 도서 중 심리학, 뇌과학 분야가 1/3이 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에세이는 두 세권 읽을 정도였다. 에세이를 언제 읽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읽은 에세이는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고 언제 읽었는지 가물가물하다. 베스트셀러에서도 가장 핫한 에세이가 아니었을까. 이런 유명세를 치른 작가의 에세이도 겨우 다른 책을 완독하고 난 후에야 짬을 내어 빌려볼 정도였으니 다른 국내 작가의 책은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운이 좋게도 또 다른 작가의 에세이 책을 만났다.
방송작가를 오래도록 하다가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삶을 살아가는 작가의 일상을 <심심과 열심>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에세이를 읽는다는 건 어찌 보면 다른 사람의 일상을 염탐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삶을 낱낱이 글로 설명하는 따분함이 아니라 그저 전업 작가로 하루를 살아가며 생각하는 흔적이 글에 담겨 있다.
'아.. 이렇게 담백하게 글을 쓰는 게 에세이구나'라는 느낌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어찌 보면 냉혈한이고 이성적으로만 사고하려는 나에게 감성적인 영역의 불이 깜빡거려서 드는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오랜만에 읽는 에세이에서 무감정 지대에서 벗어나 여유 있는 마음을 느꼈다. 책을 읽고 타인과 토론하고,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공감하는 지난 2년여의 독서 생활이 에세이라는 또 다른 분야로 나를 인도하는 듯하다.
인생에서 정답은 정해져있고, 한 길로 쭉 가야만 성공이고, 이상적인 삶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길을 개척한다. 에세이라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이러한 다양성의 길을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천편일률적인 삶이 아닌 자신의 특색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에세이스트일까. 무언가 거창하지도, 특출날 건 없지만 오히려 일상에서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문장으로 표현하면 글을 읽는 독자가 공감할 수 있다면 충분히 에세이스트가 아닐까 한다. 어느 누군가는 문장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지 못하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에세이스트는 남에게 글을 보여줄 용기가 더불어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담백하고, 정갈하게 자신의 생각 자체를 글로 표현하는 일은 나에게 무척 어려운 일이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행위에서도 보통 요약과 정리가 포함된다. 책의 내용을 인용하지 않으면 나의 글을 쓰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논리적인 글을 쓰는 이공대 학생과 유사하다. 내 글은 마치 연구원이 보고서 쓰듯이 정돈되어 있다면 김신회 작가의 문장은 감정이 다분히 녹아있다. 사실에 대한 나열이 아닌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삶의 여운이 담겨있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생긴 에피소드로 알 수 있듯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고, 글로 남기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다가도 글쓰기 수업의 일화를 읽어보면 냉철한 피드백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전문가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대인 관계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을 꺼내느라 에너지가 소진되어 기진맥진한 모습이 연상된다. 아무래도 나와 비슷한 내향형 성향이라 사회생활을 하고 난 후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이 되어서다. 그리고 '내 주제에 무슨 강연이람'이라며 한사코 모든 강의를 거절하는 내 모습과 겹쳐 보여 연민이 느껴졌다.
남들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신에게만큼은 지독하게 완벽한 모습을 추구하며 채찍질하는 모양새가 작가의 너덜너덜해진 강의 후 맥주 한잔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나도.. 비슷한데' 이런 생각을 아내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았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의 문장에서 담백하고, 감정이 묻어 있는 걸 느끼는데, 내가 쓰는 글은 논리정연한 보고서같이 딱딱하게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아내는 자신이 선호하는 글이 논리정연한 글이라고, 내 편을 들어준 듯 보인다. 하긴. 아내도 역사서, 미술사를 최근에 즐겨 읽어서 그런가 보다.
곁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감정을 물씬 풍기는 문장을 쓰는 작가가 부럽긴 하다. 누구나 자신에게 부족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보면 부러워한다. 그렇다고 질투하거나 시기심에 불타 내면을 타락하게 만들진 않는다. 인간은 본래 모든 걸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면 더욱 피곤할지도 모르니까. 욕심인 줄 알면서도 그냥 부러운 감정이 생긴다. 이성은 감성의 노예가 맞나 보다.
심리 분야의 계독으로 이제 다른 사람의 글에서 감정을 느낀다. 작가의 글에서 슬픔과 고통 그리고 즐거움과 희망이 보인다. 희로애락이라고 해야 할까. 일상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건의 경험에서 감정을 버무려 하나의 소재로 사용하고 문장으로 만들어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같다. 책을 200권을 넘게 읽어도 에세이를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진귀한 경험을 했다. 그것도 에세이라는 분야에서 말이다. 뭐.. 그동안 심리 공부를 오래도록 심도 있게 해서 그런 감정을 파악하고 공감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마음이 우선 사하라 사막같이 건조하지 않고, 습기가 가득한 열대야를 지나 삼한사온으로 바뀐 탓도 있지 않을까.
'너는 작가가 될 거야'라는 선생님의 진정 어린 응원으로 결국 글을 쓰는 작가가 된 문장을 읽으며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좋은 소리만 듣고 싶다는 작가의 문장처럼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정도로도 충분히 괜찮은 삶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곁에서 진심으로 응원의 한마디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또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지 반성해보는 시간도 보냈다. 이제는 가끔이라도 에세이 분야도 기웃거리며 책을 살펴보는 편식하지 않는 독서가가 되어 보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독서를 시작하는 시기에 맞물려 책을 읽었다면 다시 무감정 지대로 달아났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인생은 복잡하고 운이 지배하는 세상인가 보다.
참고 도서 : <심심과 열심>, 저자 : 김신회, 출판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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