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부터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루었다.
인간은 다양한 감각 기관으로 현상에 대해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숨결과 철천지원수 지간의 숨결은 같은 느낌이지만 다른 감정으로 해석한다. 우리는 더 나은 느낌인 전자의 생존에 유리한 숨결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느끼는 행위가 언제부터 기원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그리고 생명체가 모두 느끼는가라는 물음도 해볼 수 있다. 이에 대한 적절한 가설과 설명을 안겨주는 책이 바로 <느낌의 진화>이다.
저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신경과학자이면서 심리학, 철학 교수인 석학 중의 석학이다. 그는 책에서 '항상성'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내세우며 느낌으로 모든 문화와 문명이 탄생했고, 생명체가 지금까지 진화했다고 말한다. 느낌은 강력한 감정을 생성하여, 우리의 뇌에 이미지를 심어놓는다. 그리고 이미지는 즉각 위험을 회피하기도 하고,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기여한다.
느낌은 각 생물 개체의 마음에 그 생물의 생명 상태를 드러낸다. 그 상태는 긍정적인 상태에서 부정적인 상태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항상성이 부족한 경우 대개 부정적인 느낌이 표출된다. <느낌의 진화> 40p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고통과 행복이라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만든다. 느끼지 않는다면 발생할 수 없는 현상이다. 감정은 수많은 문화를 만들고, 윤리와 도덕, 정책을 만들어간다. 이런 사회 작용은 환경 요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생산된다. 환경에 적응하려는 '항상성'에서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느낌은 동물이 신경계를 갖추었을 때부터 출현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은 신경계와 그 신경계의 주인에 해당되는 생물의 상호작용에 기초한다. 모든 생물에게 느낌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박테리아에는 신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성'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는 느낌의 전조라고 할만한 생명의 조절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박테리아도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세포와 뭉쳐있고, 그렇지 않다면 싸우거나 적당한 거리를 두기도 한다. 필요성이 생기면 반응하는 것뿐이다.
최초의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학계마다 차이가 있다. 유기물과 무기물로 생명을 나누기도 하고, 생물에 포함되어 활동하는 세포를 생명체라고 보기도 한다. 세포는 대사 과정을 통해 분자를 분해하고 합성한다. 이러한 과정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증식한다.
여기에 대한 가설은 두 가지가 존재한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가 대표적인 복제자 가설과, 저자가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대사 가설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유사한 논쟁처럼 보이지만 대사 과정이 발생하는 건 사실이다. 대사는 '항상성'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볼 수 있다. 항상성이라는 개념은 중립적 상태가 아니라 더 편안하고 좋은 상태를 향해 스스로를 상향 조절하는 생명의 작용이라고 저자는 정의했다.
박테리아가 출현하고 난 이후에 신경계로 눈부신 진보를 이루었다. 신경계는 몇 가지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을 보유한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신경세포, 즉 뉴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런이 활성화되면 전기 자극을 흘려보낼 수 있고, 다른 뉴런과 연결된 시냅스를 통해 신경전달물질을 전달한다. 점차 거대해진 신경계에서 놀라운 수준의 능력을 갖추며 마지막으로 느낌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느낌과 마음은 무엇이 다를까. 마음을 가진 생명은 감지와 반응이 수반된다. 밀림의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상상해보자. 소리를 감지했다면 그에 대응하는 간접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또는 옆에 누군가 있다면 한 번 손을 만져보자. 차가운지 따뜻한지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오감을 통해 우리는 감지하고 그에 적절한 반응을 보인다. 밀림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다가 포식자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집단생활을 토대로 누군가는 이러한 광경을 보며 줄행랑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남은 생명체는 밀림의 공간과 풀숲에서 생성되는 소리가 하나의 이미지로 형성되어, 시간이 흘러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면 긴급히 행동할 수 있도록 기억에 저장한다.
인간은 오감을 서로 다르게 작동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신경계는 그러한 구분 없이 하나로 표상을 구성한다. 그 결과 우리는 시간 속에서 특정한 순간을 지각하는 별개의 요소를 하나로 합쳐서 전체로 경험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를 찾아가면 청각으로 옛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며, 시각으로 달라진 모습에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미지와 대조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느낌은 우리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에 현재 내가 느끼는 감각으로 그 당시를 추론할 뿐이다.
우리 마음속에서 어떤 이미지를 끊임없이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놀라운 양식이다. <느낌의 진화> 128p
하지만 스트레스의 상황에서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신경형성을 감소시킨다. 뇌 구조상 감정이 격해지면 인지능력이 감소하고 상황을 기억하는 능력은 잠깐 동안 상실된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과거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리고 상상은 창조력의 기반이다. 이러한 예술 감각과 표현이 풍부한 감정의 기구는 어느 정도까지는 학습으로 형성될 수 있다.
사람마다 유전자 정보가 다르고, 인식하고 느끼는 정도는 다르지만 공통된 감정을 느끼는 학습은 충분히 가능하다. 감동이라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일반화될 수 없지만, 감동이라는 감정에 공감대는 형성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을 창작하고, 정서적 반응을 느끼고 즐긴다. 이러한 좋은 느낌을 주는 사건을 문화라 부르고 항상성 상태를 유리한 방향으로 촉진한다.
선사 시대 유적인 고인돌을 살펴보면 죽어서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고 슬픔과 절망을 함께 타인과 느끼려는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공감에서 슬픔을 나누는 몸짓, 육체적 접촉이 발생하고, 더욱 고차원적인 노래나 시로 대처할 수도 있다. 인간 문화의 발생은 의식적인 느낌과 창의적인 지능이 서로 상호작용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지능으로 해석한 내용과 진단은 맞지 않은 경우도 많다. 밀림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언제나 포식자가 아닐 수도 있어서 다양한 경험이 지능으로 변환되어 지금의 사회적 현상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 개개인은 도덕적일지 몰라도 각 집단으로 본다면 이기적이다. 우리는 이처럼 서로 불협화음이 발생하여 항상성 조화가 반드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예측할 수 있다. 신경계, 면역계와 같이 문화적 유기체들은 한 덩어리로 합쳐지지 않는다. 인간은 감정과 이성의 타협이라는 장치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생각의 본체인 유기체 자체에서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공부밖에 답이 없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예측하고, 추론하는 능력은 감정과 지적 노동의 산물이다. 물론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래도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계속해서 노력했고, 그에 따른 진보를 이루었다. 지속적으로 넓은 범위에서 교육이 적절히 시행된다면 더 나은 인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느껴지지 않는 삶에는 치료가 필요 없다. 느껴지지만 진찰되지 않는 삶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느낌의 진화> 307p
어떤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는지 수많은 단어를 배우고 표현해야 한다. 교육을 통해 능력을 배양하고 어떤 감정으로 나타날 때 항상성에 이로운지 아닌지 판단해야 더 나은 삶, 즉 생존에 유리하다.
지구에는 35억 년 전부터 생명이 등장했고, 생명은 마음, 느낌, 생각, 의식이라는 기본 대사만 있었지만, 느낌을 유사물 형태로 표현하며 다양한 감각에 기초한 이미지가 나타났다. 그 뒤로 상징적인 표현과 언어, 수학이라는 의사 전달 방식으로 발전했다.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과거의 산물과 현재의 문화를 연결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휴머니즘을 강화하는 길이다.
참고 도서 : <느낌의 진화>, 저자 : 안토니오 다마지오, 출판 : 아르테(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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