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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Nov 05. 2020

깊어가는 가을. 내 마음도 함께 물들어간다

지난 금요일. 건강검진의 결과를 받고 마음이 조금 심란해졌다. ALT의 수치가 무려 임상치의 3배가 나와 간 기능 장애를 의심받았다. 아무래도 1년 넘게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 위를 보호하는 위장약을 복용해서일까. 심하게 피곤함을 느끼는 하루였다.


정신과를 방문하는 길에 우울감이 나를 향해 손짓한다. 하늘은 화창하고 푸른 잎은 어느덧 붉게 물들어 가는 가을의 어느 날에 터벅터벅 병원을 향해 걸어갔다. 강박증을 해결하려고 복용한 약 때문인지는 명확한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내심 하나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고 또 다른 혹을 붙인 건 아닐까라는 불길함이 찾아왔다.


정신과에 진료실로 들어가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물론 우울감은 있었지만, 세상 다 산 것처럼 주눅 들어 있지 않았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해결 방법을 찾으려는 태도가 이제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정신과 의사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 달 동안 잘 지내셨어요?”


당당히 “네 잘 지냈습니다”라는 대답과 함께 건강검진의 결과를 우선 이야기했다. 수치가 무려 140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의사는 처음으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는데 ALT의 수치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진 듯했다. 우선 복용하는 신경안정제를 변경하고 위장약은 일단 보류하고, 식사를 못할 정도로 힘들면 한 알씩 복용하라고 처방해 줬다.


그 이후에 그동안 있었던 기분 좋은 소식을 들어도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의사였다. 아무래도 정신과 의사의 책임감 때문일까. 상담사가 아니니까 약에 의한 간 손상에 더욱 신경이 쓰였나 보다.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다고 주장한 데카르트는 오류를 범했다. 몸의 해독을 담당하는 간의 손상은 정신을 약하게 만들고, 감정을 우울하게 이끈다. 이런 감정이 지속되면 우울한 기분은 더욱 짙어지고 빨갛게 물든 나뭇잎을 보더라도 함께 죽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참으로 신묘하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고 출간 제의와 원고 요청이 쇄도하여 아내는 대단하다며 오히려 기쁨을 표현한다. 그런 감정 상태에서 바라본 붉은 나뭇잎은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시들어가는 붉게 물든 나뭇잎을 누군가는 슬픔으로 누군가는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오묘한 마음은 육체의 건강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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