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준원 Sep 21. 2021

아버지가 3년 만에 집에 찾아오셨다.

아버지가 3년 만에 지난 주말에 집에 찾아오셨다. 정확히 3년 1개월 10일이 지났다. 아버지 얼굴을 더 이상 보기 어렵다고 선언하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불안하고 공허한지 평정심을 찾으려고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대인관계에서 사람들과 힘들게 지냈는지 어렴풋이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기저에 깔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조금의 실수를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자아 비난에 있었다. 왜 나는 이렇게 '인간쓰레기'라는 명명 오류에 빠져있었고, 타인에게는 관대하지만 스스로에게 엄한 잣대를 들이대는 인간으로 자랐을까.


아버지는 자식이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더 잘해'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런데 '더 잘해'라는 말은 지금도 부족하다는 이야기로 해석했다. 대학생이 되어도, 더 나이가 들어 사회생활을 하는 단계에서도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자식 자랑에 지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셨다. 지방대를 나온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을까. 서울의 유명 대학에 입학했노라고 이야기를 하셨단다. 그 이야기를 왜 나한테 굳이 했을까.


아버지의 소통 방식은 비난형이다. 적자생존, 무한경쟁 사회에서 가난을 뿌리치고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생존 방식이 뼛속까지 깊게 간직하셨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사고방식만으로 살 수 없다. 아버지는 타인에 관심이 없으셨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든 오로지 '돈'이라는 경제 수단만 있으면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아들과 연락을 끊은 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족함을 느끼신다고 했다.


어머니는 가장 두려운 하나가 바로 '가난'이라고 하셨다. 그 가난을 경험하지 않은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그 시대상을 듣고, 배우며 이해할 뿐이다. 어머니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가난'이라는 무서움을 꼭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래서 오로지 하나의 길만을 선택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이다.


이러한 부모님과 어린 시절을 보내며 애착 형성이 제대로 될 수 없었다. 3년 전 결별을 선언하고 부모님을 원망했다. 항상 불안에 떨어야 했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과하여 강박이라는 증상까지 얻어야 했다. 그렇지만 3년 간의 마음공부는 무엇이 나를 이토록 힘들게 했었는지 알게 해 주었다. 마음을 다스리고 일상을 매 순간 소중히 다루는 일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끊임없이 왜 내 마음에 분노가 가득한지 알아야 했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편함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어떻게 교정해야 하는지 연습해야 했다.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하다. 그런데 그 부족함은 잘못이 아니다. 아버지는 사랑받지 못하며 자랐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랑을 아들에게 해줄 수 있을까. 그나마 '가난'이라는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상황으로 자수성가하신 그 자체도 대단한 업적이다. 욕심이 과했다며 아버지는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부족함은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누구나 부족하며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며 사는 게 삶이 아닐까. 부족함을 모르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올바르지 못한 태도다. 3년 전 아버지는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자신은 충분했고, 그 안에서 자신을 따라주지 못한 아들이 문제라 생각하셨다. 그렇지만 3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버지와 나는 서로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아직도 아버지는 앞뒤 말을 다 자르고 한 마디만 툭 던지신다. 누구나 오해를 살만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신다. 이러한 대화법을 예전에는 못마땅했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물어본다. 그리고 내가 해석한 내용을 흥분하지 않고 전달한다. 어머니께서는 3년 만에 이야기를 나누며 성숙한 아들의 모습에 놀라셨다.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대화 수준이 너무 높아서 자신이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동안 읽었던 책을 보여주며 여러 지식을 습득하고 글을 쓰며 살아온 삶을 간략히 설명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버지는 '진즉에 좀 하지'라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아버지의 심중을 이해하고 부모님에게 한마디 말을 건넸다.


"사람은 공부하는 때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렇지."


"저는 그때가 바로 지금이에요."


어머니는 공부의 때는 무조건 10대라고 생각하셨겠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이 가장 활발히 지적 활동하며 지내는 시기라 믿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44년을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활발히 지적 활동하는 시기는 팩트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 아니 자주 글을 쓰기가 힘겹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