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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Sep 02. 2021

가끔.. 아니 자주 글을 쓰기가 힘겹다

SNS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3년 10개월이 흘렀다. 600여 개의 포스팅을 남겼으니 이틀에 하나씩 글을 쓴 셈이다. 적게는 2천 자에서 많게는 8천 자까지 책을 읽고 요약해서 남긴 포스팅이 대부분이다.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블로그에 남겨진 문장을 스쳐 지나가듯 읽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포스팅 하나에 담긴 노력은 그 누구도 다 알 수 없다.


책을 꼼꼼히 읽고 어떤 내용을 정리하며 노트에 먼저 초고를 쓰기도 한다. 초고의 내용을 다시 블로그로 옮기며 문장을 다듬는 작업이 추가된다. 지금까지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1년에 52권을 독서하고 글을 쓰자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만이 다가 아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목적을 이루려는 각고의 노력이었다.


어떤 열정이 내면에 샘솟아 직장 업무가 바쁜데도 불구하고 글을 지금까지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글을 쓰는 작업은 내면의 아픔을 달래주고 기억을 더듬어 상처가 되었던 마음을 치유하는 목적이 가장 최우선 순위였다. 그런데 점차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직장 내에서 인간관계도, 독서모임을 토대로 느슨한 유대를 맺는 사람들과 관계도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과거의 상처를 꺼내어 여러 편의 글을 쓰고, 또 말하고 다시 생각하고 감정을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자기 연민으로 상당히 안정적인 치유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과거의 상처를 꺼내도 좌절감이나 우울감, 분노가 치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반복되는 일상의 행복함을 다시 느끼지 못하는 상황까지 온듯하다.


최근 몇 달 동안 회사 프로젝트가 숨 가쁘게 돌아갔다. 점심시간 이외에 자리를 뜨지 못할 정도로 바쁜 날들이 연달아 생긴 탓에 오히려 감정은 메말라 사실을 나열하는 일 외에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창작의 고통이 어떤 흐름인지 조금은 알 듯한 느낌이랄까. 내면의 상처와 아픔이 말끔히 치유되어 안정감이 가득하다면 웃고 즐기는 무언가를 나불거리며 글로 표현하기가 꺼려지는 건 아닐까.


그동안 행복하려고 각고의 노력으로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열심이었다. 2년 전 정신과를 방문한 그날, 집에 오는 길에 울음을 참으며 화사한 가을날을 즐기지 못했었다. 2주에 한 번 방문하는 정신과에서 "별일 없으셨나요?"라는 질문에 항상 감정이 요동치는 일이 발생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이제는 거의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 회복한 상태에서 방문한다. 너무나 좋은 일이고,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져서 기쁜 일인데 이상하게 무언가 허전하다는 느낌이다.


흡사 무림의 고수에게 지도를 받다가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고 하산하라는 스승의 말을 듣는 기분이랄까. 열심히 무공에 정진하여 마음을 수련하겠다는 목적이 사라진 상황일까. 뜬금없이 우울한 상태가 더 많은 창작물을 쏟아내지 않았을까라는 기이한 생각마저 든다.


"하아.. 글이 진짜 쓰기 싫다"라고 아내에게 하소연하면서도 다시 키보드를 누르는 모습을 본 아내는 "최근 힘든 업무가 계속이었는데도 글을 쓰네"라며 미소와 함께 엄지 척을 보여준다. 어쩌면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받거나 괜찮았다는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였을까. 아니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문장을 써야 안심할 수 있는 강박이 문제였을까.


글을 쓰는 목적과 글을 더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더해 육체적 피로까지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든 이유가 여럿 있는 듯하다. 그저 조금씩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주변에 말하건만 유독 스스로에게 높은 잣대로 판단하는 태도는 변화하기 힘든 듯하다. 인지 오류의 하나인 의미확대, 축소라는 지식은 충분히 알지만 지금껏 살아온 무의식에 담긴 경험의 산물을 벗어내기는 버거운가 보다.


힘들면 조금 쉬어도 괜찮고, 내려놓아도 괜찮지만.. 무의식에서 괜찮지 않다고 속삭이는 듯하여 괴롭다. 그 무의식이 의식에 영향을 주고 있고, 그마저 글 읽는 사람들마저 떠나갈까 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상하게도 사람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자꾸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생각나니까.. 다시 한번 글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지 곱씹어 보며 성장에 초점을 맞춰봐야겠다.


3년 10개월 전. 글쓰기의 목적은 다름 아닌 '돕는 자의 희열'을 느끼려는 욕구 때문이었다. 소셜 멘토링 잇다에서 취업 준비생, 대학생의 진로 상담을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글쓰기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책을 읽고 글쓰기의 고강도 훈련을 지속하는 동안 치유의 글쓰기라는 불행한 인생을 벗어나려는 희망찬 과정을 맛보기도 했다.


글쓰기는 점차 업무에도 도움을 주었고,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능력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여전히 글쓰기는 매력적이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생각해서 꺼내는 작업은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창구로 더할 나위 없다.


아직 내면에 남아 평생을 관리해야 할 강박증이 가끔은 자기 비난으로 가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심각한 상태로 주눅 들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고차원적 지식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은.. 아니 자주 글쓰기가 싫어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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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증

#치유의글쓰기

#오랜만에일기

#감정

#글쓰기의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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