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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Jan 14. 2022

세상은 정말 만만치 않다.

우리는 각자의 생활에 있어 원칙대로 살려고 한다. 그 원칙을 지키고 서로 상호 간에 신뢰가 형성되면 의심, 불안이라는 감정은 조금 약화된다. <골든아워>의 저자 이국종 교수는 의대생 시절 엄청난 공부량을 이겨내고 임상실습을 나갔을 시기부터 원칙은 모두 쓸모없었다고 이야기한다.


비루한 현실에 나가떨어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의사도 그 누구도 원칙에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의사의 사명감과 부딪히는 자본주의 논리의 갈등에서 그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골든아워>는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이국종 교수가 겪은 중증외상 센터의 기록이 주된 내용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


다양한 조직과 사회에서 지켜야 할 원칙은 단 한 명에 의해서도 무참히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기업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직원의 편의를 제공하는 여러 가지 복지를 마련한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서 모두에게 유용한 복지가 하나 있었다. 부득이하게 늦게까지 근무하는 근로자의 귀갓길을 안전하게 제공하는 복지였다. 지정된 택시 업체와 제휴하여 현금과 카드를 개인이 지불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었다.


택시 업체는 한 달간 직원들이 사용한 택시 비용을 회사에 청구하는 방식이었다. 택시 비용 정산과 관련된 복지 제도는 야간 근로를 진행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직원에게 상당히 좋은 혜택이었다. 좋은 혜택을 지닌 복지인 만큼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회사에서 어쩔 수 없이 늦게까지 일하는 전제 조건이 원칙으로 작용하고 그 시간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복지 제도는 더 이상 시행하지 않고 개인이 지불하고 결제 시스템을 통해 환급받는 시스템으로 교체되었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행동 때문이었다. 야간 근로를 하지 않은 평일에도 항상 택시를 이용한 한 사람의 신뢰성 문제로 복지 제도는 사라졌다. 물론 회사에서 직원을 질책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이러한 병폐는 계속되리라 판단해서인지 한 사람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수많은 사람의 편의가 사라졌다. 우리는 원칙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사람 때문에 분노한다. 결국 수정된 정책이 시행되면 시스템은 불편한 방향으로 변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사례를 통해 현재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불편함을 호소하며 보고 배운 내용을 삶에 적용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과 관습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골드아워>에서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외과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다. 그의 모습도 아마 그 누군가에게는 무례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의사들만 접속하는 웹사이트 게시판의 글들은 온통 미운 오리 새끼인 듯 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꼴통이니, 나댄다느니, 너 혼자 잘났냐느니, 너만 의사냐는 비난의 글. 여러 사람의 모인 사회에서 의사의 사명감을 원칙으로 내세운 사람에게 자본주의의 논리로 비난하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에 더 비참해진다.


중증외상외과에서 가장 힘든 업무와 비용이 많이 필요한 도구가 헬리콥터가 아닐까 한다. 응급환자를 이송하려면 가장 빠른 길이 바로 헬리콥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송 체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국종 교수 이외에 대부분의 의사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은 그리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죽지 않아도 될 환자를 죽지 않게 하겠다는 의사의 사명감에 동의하는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고, 그 의지를 실현시킬 정책이 필요하며 관련된 자들의 합의가 요구된다. 우리가 살아가고 몸다고 있는 국가에는 여러 기관이 존재하고 그 기관에서 추진하고 진행해가는 일들은 수없이 많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의 우선순위는 사안의 중요성보다 누가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동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힘없고 돈 없는 이들에게 기본이라는 말은 참으로 사치스러운 단어가 아닐까. 기준도 저마다 달라 싸움은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왜 우리는 이러한 기본을 원칙으로 삼고 지키기가 어려운 것일까.



직업의 사명감과 자본주의 딜레마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이 할 수 없고 이루지 못할 일은 분명 많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일도 찾아보면 여럿 있다. 다만 우리의 욕심과 욕망이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게 막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사람을 살리는 직업적 사명감을 갖고 행동하는 의사들이지만, 정작 그렇지 않은 자본주의 노예인 의사들도 있다.


어느 분야나 자신의 가치관과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은 정치적 행태로 나타나 사명감으로 변질될 수 있다. 중증외상 센터에 실려오는 다양한 사회계층의 사람들 중에 소위 잘나가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과 구위급 간부들은 없다고 이국종 교수는 말한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최고급의 의료장비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장비를 사용할 만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중증외상 센터 환자의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의료장비를 사용하고 수술을 집도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이 이국종 교수에게는 딜레마이다. 병원이라는 조직에서 이익을 낼 수 없고 말단 노동자로 그저 사람을 살리는 행동은 의사가 가진 사명감과 자본주의가 갈등을 빚는 딜레마라 할 수 있다.


사실 감당하지 못할 비용이 조직에서 반가울 리 없다. 조직 측면에서 살펴보면 중증외상 센터에서 사용하는 비용은 다른 의료 시스템 운영에 영향을 미친다. 병원을 운영할 수 없을 지경까지 간다면 결국 병원을 찾아오는 수많은 외래환자가 의료 시설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이런 자본주의적인 딜레마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가며 버티는 이국종 교수의 글을 읽으며 인간의 삶이 비루하고 힘들다고 느껴진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회적 현실에 많은 부분을 포기하며 비루한 삶을 선택하고 사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자신의 장기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대학생의 에피소드는 풍족함을 잊고 부족함에 불평을 쏟아내지 말자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골드아워>를 읽으며 가장 먹먹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아무래도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라서 그런지 아이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가슴이 미어지듯 아프다.


어느 밤 건설 현장에서 작업을 하던 인부가 8층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신속히 의료장비가 제대로 갖춰진 병원을 찾았다면 다행이었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아주대 중증외상 센터에 뒤늦게 도착한다. 골든아워를 훌쩍 지나서 말이다. 사고가 발생하고 1시간 이내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는 희박해진다.


그래도 최대한 빠르게 1차 수술을 진행하고 중환자실로 옮긴 사이 보호자에게 연락이 닿았다. 보호자를 만나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야 하는 이국종 교수 앞에 두 어린이가 서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와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 두 남매에게 아버지의 상태를 말해야 하는 참담한 심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중환자실에서 삶을 연명하던 환자는 동틀 무렵 세상과 작별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걱정하며 글을 읽었다. 뒤이어 아이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글을 마주했다.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살림을 차리고 살고 있는 친엄마가 있었다. 아이들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나 친엄마임을 증명하고 아이들을 자신이 사는 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여인은 남편의 보험금을 받고 난 후 아이들을 할머님의 집으로 쫓아버렸다. 그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힘없는 노동계층 아래에는 더 힘없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그 아이들의 마음은 두려움과 불안과 분노로 가득하지 않았을까. 그런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자식만큼은 그렇게 살지 않게 하려고 발버둥 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적어도 지금 사회가 희망이 없다면서 사회 문제를 아이들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 나 하나쯤 고민하고 노력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한사람 한 사람이 모여 사회 인식은 변화한다. 이러한 사회 인식이 개선되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 이슈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향성이 조금은 성숙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참고 도서 : 골든아워

저자 : 이국종


#골든아워 #이국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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