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GDP 3만 달러가 넘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급성장했지만, 여전히 국민 삶의 행복지수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있다. 도대에 왜 한국은 이처럼 행복하지 않을까? 빈부의 격차와 같이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 문화는 대인관계를 중시하는 상호의존적 문화라 할 수 있다. 집단주의 문화에서 성장한 개인은 타인의 애정, 호감을 얻고 타인을 배려하는 일에 중요한 의미를 둔다. 물론 문화적인 특성이 아닌 인간이라면 소속감과 인정 욕구를 원한다. 또한 집단 내에서 거부당하고 소외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한국 문화는 집단주의 문화와 더불어 유교적 전통에 영향을 받아 권위적 문화라 볼 수 있다. 동방 예의지국, 장유유서와 같은 어른을 공경하는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권위가 통하지 않는 사회의 변화를 맞이했다. 권위적 문화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사고방식을 지닌 젊은 세대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권위적 태도와 자신이 경험한 성공 방식을 강요하는 사고방식에 저항적이고 도전적 태도를 나타낸다. 반면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주장적인 태도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
특히 집단주의와 권위적 문화가 합쳐진 상황에서 감정의 표현을 자제하는 억제적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감정의 직접적 표출을 억제하도록 요구되면 간접적인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일명.. 뒷담화와 회식 자리에서 감정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의사소통의 많은 부분이 비언어적 방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문화라 볼 수 있다. 언어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내놓고 의사를 표현하기보다는 비언어적으로 서로 의중을 주고받는 행동양식이 발달하였다. 이처럼 감정을 억제하는 문화에서는 특이한 질병이 발생한다.
화병은 일종의 분노 증후군으로 DSM-4에 hwa-byung(화병)이라는 한국식 표기로 등제했으나, 현재 사용 중인 DSM-5에서는 삭제되어 정식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화병은 심리적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울화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화병은 우울증, 몸의 이상을 느끼는(가슴이 꽉 막힌 듯하다, 속이 쓰리다 등등) 신체화 장애, 불안장애의 증상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장애로 여겨지고 있다.
*화병의 생성 흐름
참기 어려운 생활문제 -> 정서적 고통 -> 내면화 -> 신체화 -> 화병.
이러한 흐름으로 화병이 발전되는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화병은 한국 여성이 삶의 고통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화병을 지닌 사람은 걱정을 반복하고 자기 연민이 강하며 수동적 운명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행복도를 체크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척도는 아무래도 사회관계도가 아닐까 싶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교육과 시민참여, 치안은 그래도 상위권에 속한다. 그렇지만 1인당 근로시간은 매우 길고, 사회적 유대감은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근로 시간이 길면 평소에 자신이 원하는 취미 생활을 하기가 어렵고 집단주의 문화가 팽배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세계 최고가 될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를 풀려면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미 시간이 부족하다.
게다가 의지할 사람이 부족하여 내재된 감정을 서로 공감하는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기 어렵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적 유대감을 얻지 못하면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고, 외로움은 더욱 커져간다. 이러한 몸과 마음의 지침은 삶을 스스로 끝내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도 한다. 그래서 한국은 근로시간, 사회적 유대감, 자살률이 OECD 최상위권에 속한다.
집단주의적이고 의존적인 특성은 비단 직장 생활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가정에서는 부모-자녀 관계, 남편-아내 관계, 학교에서는 교사-학생 관계 또는 선배-후배 관계까지 윗사람의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에 불만을 느끼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순종적이지 못한 행동을 무례하다며 불만을 갖게 된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기본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일반적으로 쾌락 추구보다는 고통 회피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행복의 기간보다 슬픔,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더욱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 중에는 부정적 감정이 훨씬 많다. 이런 현상을 분석해 보면 고통을 회피하려는 욕구가 더욱 강하다고 유추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측면에서 잘 살아가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정신건강은 웰빙 상태로서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하고 인생의 정상적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며, 생산적으로 결실을 거두며 일을 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삶의 상태를 말한다.
한국인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주 52시간의 근로 시간으로 단축한 정부의 방침을 기반으로 부족한 사회적 유대감을 키워야 할 듯 보인다. 타인과 따뜻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자신의 행복뿐만 아니라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보자. 공감적이고 애정 어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향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근로 시간을 단축하는 정부의 방침이 있어도, 여전히 기업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서서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생긴 업무 외 시간을 활용하는 건 전적으로 개인에 달려 있다. 자율성은 행복한 사람의 특성 중의 하나이다. 외부적 기준보다 자신의 내면적 기준에 의해 자신을 평가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이처럼 개인의 성장은 행복으로 가는 올바른 길이다. 자신이 발전하고 확장되고 있으며, 자신의 잠재력이 실현되고 있다는 느낌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여가 시간의 활용으로 성장을 느끼면 새로운 도전에 개방적인 사람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여가 시간이 생긴 만큼 자신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성장하여 내면이 긍정적인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사회적 유대감이 강해지고 사회에 공헌도가 높아진다. 이러한 선순환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상태로 나아간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으로 앞만 보며 지금껏 달려왔다면 이제는 급격한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세대 간의 갈등, 저성장 시대에 개인의 성장이 절실히 요구되는 사회가 되었다. 서로가 가진 경험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점차 확장되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조금씩 올라가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런 한국의 사회를 희망한다.
참고 도서 : 현대 이상심리학
저자 : 권석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