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발, 오른발을 어떻게 움직일지 의식적으로 생각하며 걷는 사람은 없다. 숨을 쉬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하나씩 면밀히 따져가는 사람도 없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의식하는 순간은 있어도 매번 의식하며 살지 않는다.
이처럼 자발적, 의식적 행동과 습관적, 자동적 행동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은 모든 행동에 의식적인 동기가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해서, 자신의 행동은 물론이고 다른 동물의 행동에서도 의식을 읽는다. 그것이 바로 의인화이다.
"바쁘지 않으면 이야기 좀 나눌까요?"
평소에 말을 먼저 걸지 않았던 직장 동료가 대화를 요청했다. 직장 동료는 나의 추천으로 입사한 지인이다. 그런데 최근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본 기억이 무의식에 퍼져있었다.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평소에는 휴식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조용한 회의실에서 단둘이 대화를 나눴으면 했다. 느낌과 다르지 않게 지인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 가슴이 조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뇌에서는 강력한 스트레스 물질이 분비되고 있었나 보다.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비슷하다. 수컷 초파리에게 어떤 화학물질을 주입하면 몇 시간 만에 이성애 초파리가 동성애 초파리로 바뀔 정도로, 초파리의 행동은 생물학적 기질에 직접적으로 좌우된다. 인간도 자동적, 무의식적 행동을 무수히 많이 한다.
우리는 누구나 암묵적인 기준이 되는 틀을 가지고 있으며 그 틀에 따라서 습관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사실 그 힘은 드러나지 않을 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행동은 경험의 산물이지만 감정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다만 어떤 상황이 생존에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주었다면 비슷한 느낌을 주는 패턴은 존재하여 다시금 느끼게 만든다. <새로운 무의식>에서는 이처럼 인간이 가진 무의식을 정신분석이 아닌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풀이한다.
동일한 음식이라도 평범한 메뉴라고 소개되었을 때보다 화려한 묘사로 소개되고 난 이후 더 맛있다고 사람들은 평가한다. 인간은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여 판단한다. 이러한 정보를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형성된 무의식의 세계를 반영한다. 새로운 무의식의 과학에는 사람과 사건의 영향으로 우리의 판단과 인식에 희한한 오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감각적 인식, 기억 회상, 일상적인 결정, 판단, 활동은 언뜻 아무런 노력 없이도 가능한 활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각의 바깥에서 기능하는 뇌 영역이 대신 노력을 기울여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팝가수 아델의 앨범 사진은 인간의 착시를 표현한다. 우리는 위아래가 뒤집힌 얼굴의 일그러짐보다 위아래가 제대로 된 얼굴의 일그러짐을 훨씬 더 쉽게 감지한다. 얼굴 분석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존재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모든 인식이 어떤 면에서는 망상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감각이 제공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해석하여 간접적으로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물을 인식한다는 건 객관적일 수 없다. 각자의 뇌세포에서 주고받는 화학물질로 벌어진 결과물이 같을 수 있을까?
"의자를 본다"라는 말은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뇌가 의자라는 사물의 심적 모형을 창조함을 뜻한다. 단지 인간은 이러한 문장을 읽으면 각자 머릿속에 '의자'의 형태를 떠올리고 단지 자세한 묘사를 토대로 이해할 뿐이다.
평소에 우리는 자신의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 전혀 모르고 살아간다. 기억 오류는 마음이 기억의 세부적인 틈을 메우려고 동원하는 기술로 발생한다. 자신의 내면에 품고 있던 기대, 신념, 지식이 실제 사건과 어긋나면 뇌가 속아넘어간다.
MBC 무한도전 탐정 특집에서 하나의 에피소드가 벌어진다. 출연자는 갑자기 난입한 사람의 인상착의를 묻는 질문에 확신할 수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건의 일반적인 요지는 잘 기억하지만 디테일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무한도전 멤버들도 남자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대략적인 인상착의는 기억했지만, 세부적인 색상과 상징은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에 없는 세부를 억지로 회상하려면 설령 선한 의도로 정확하게 떠올리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라도, 어느덧 이야기를 지어내어 빈틈을 메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기억을 믿는다. 그렇지만 자신의 기억을 "확신하나?'라는 물음에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완벽한 회상 대신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월하게 다루고 처리하는 능력을 얻었다.
왜 인간은 기억의 실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할까? 우리가 기억한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영상으로 남아 있거나 기록으로 정확하게 남아 있는 상황이 별로 없으므로, 우리가 기억을 의심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런 세부를 기억하려면 우선 의식적으로 주의가 그곳으로 쏠려야 한다. 모든 기억에 주의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망각이라는 인지 행동으로 또 다른 기억 관련 처리를 할 수 있도록 뇌의 자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이처럼 세부를 기억하지 못하고 대략적인 개요만 인지할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수많은 인파가 몰려도 일정한 규칙으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행동한다. 그런데 수많은 인파 속에서 모든 정보를 뇌에서 처리하려면 과부하가 걸린다. 그래서 언어를 주고받으며 서로 소통한다. 시끄러운 곳에서는 서로의 얼굴 표정으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비언어적 행동을 감지한다.
인간은 협동 행위에 참여하면 뇌에서 보상 과정에 연관된 부분이 관여한다. 친절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게 그 자체로 보상이 된다. 사회적 연결은 인간 경험의 기본적 속성이라서, 그것이 박탈되면 인간은 고통을 느낀다. 외톨이, 따돌림은 상당히 강력한 외상과 유사한 고통을 안겨준다.
인간은 타인의 과거 행동을 이해하고 현재나 미래에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는 기량이 뛰어나다. 상태만 보아도 대강 어떤 사회적 관계를 이룰 수 있을지 짐작한다. 민첩하고 자동적인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자신을 내보이는 방식에, 타인과 소통하고 타인을 판단하는 방식에, 사회적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에, 스스로를 생각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은 인간의 비언어적 소통들 중 많은 부분이 선천적이고 자동적인 것으로서 과거의 진화 단계에서 남은 유물이라고 추측했다.
인간의 다채로운 표정은 모두에게 기본으로 갖추어진 표준 장비인 듯하다. 그리고 이것은 대체로 선천적이고 무의식적인 일이기 때문에, 감정의 소통은 자연스러운 일인 데에 비해서 감정의 은폐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다. 감정을 은폐하는 습관이 생기면 무의식적인 표정을 알아채기가 힘들까?
인간은 본성상 타인의 감정과 의도를 알아차리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이것은 우리 뇌에 처음부터 갖추어져 있는 능력이고, 이것을 끄는 스위치는 없다. 감정을 은폐하면 범주화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범주화는 뇌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자 사용하는 전략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람은 세포의 관점에서 보면 독특하고 유일무이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다. MBTI가 대유행하는 상황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16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범주화하는 MBTI 테스트로 수많은 사람이 범주화에 참여한다.
MBTI의 유형은 "곰들", "의자들", "위험한 운전자들"과 같은 포괄적 범주로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세상을 빠르게, 효율적으로 헤쳐나가는 데에 유용하다. 먼저 사물의 전체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나중에 개별성을 걱정한다. 무의식은 모호하고 미묘한 차이를 깔끔한 구분으로 바꾼다. 무의미한 세부를 지우고 중요한 정보만 보유하기 위해서이다.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우리의 뇌는 무척 싫어한다.
우리는 자신이 타인을 각자 개인으로서 판단한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실제로 우리는 타인을 각자의 독특한 특징에 기반하여 평가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대개 성공한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를 잘 모른다면, 마음은 상대가 속한 사회적 범주에서 대답을 찾으려고 한다. 우리에게 범주화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개인으로서도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애정 어린 느낌을 형성하도록 돕는 것, 또한 인간을 능가하는 힘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힘과 통제의 느낌을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무의식이 최선의 기량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물론 가짜 긍정은 무모한 행동과 안일함을 가져다주지만, 진심 어린 믿음은 미래에 행동하도록 동기부여해 준다. 우리는 자신이 믿고 싶은 사실을 선택한다. 그것도 무의식적으로.
참고 도서 : 새로운 무의식
#무의식 #새로운무의식 #기억 #망각 #현실 #내집단 #외집단 #사회성 #사회적무의식 #독서모임 #서평 #북리뷰 #프로이트 #칼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