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 도리스 메르틴
아비투스는 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가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사회문화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즉 타인과 나를 구별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를 일컫는다.
<아비투스> 中
타인과 나를 구분 짓는 무언가를 바꾸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경제자본만 바꿔서 될 문제가 아니다. 최상층, 상류층, 중산층과 같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책 <아비투스>에서는 7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도 경제 자본이라는 한 가지를 제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계급을 바꾸려면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경제자본이 빠지지 않는 필수 요소라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책의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한 가지 과거에 있었던 일화를 꺼내보려 한다.
몇 년 전 일이다. 직장에서 부서 간 워크숍을 다녀왔다. 소수의 인원이라 전세 버스가 아닌 개인 차량을 이용하여 목적지까지 이동했다. 나름 오랜 시간을 차 안에서 이동하는 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했다. 평소에 '꿈'이라는 단어에 골몰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던 터라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사원에게 본인의 꿈은 무엇인지 질문했다. 쉽게 대답하지 못할 질문이지만 신입사원은 질문에 금세 답변했다.
"저의 꿈은 신분 상승입니다."
꿈을 묻는 질문에 '신분 상승'이라는 단어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가 되어야 한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이야기에 감동하여 열심히 찾고 있어서인지 어색함이 온몸에 퍼졌다. 함께 이동하던 다른 직원들도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신분 상승'은 꿈보다는 욕망에 가깝지 않을까.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이어서 더욱 차 안의 공기는 무거워졌다. 그 뒤에 이어진 신입사원의 말은 경제 자본만으로 계층을 바꿀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저는 20억만 있으면 정말 잘 살 자신이 있습니다."
20억의 자산. 그 정도의 경제 자본이면 <아비투스>에서 말하는 최상위층은 될 수 없다. 대신 상위 10% 안에 들어가는 중산층에는 얼추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중산층은 경제자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머지 6가지 자본은 무엇인지, 어떻게 자본을 획득할 수 있을지 책 <아비투스>를 살펴보자.
아비투스는 의사소통과 같다. 아비투스가 없는 사람은 없다. 아비투스는 우리의 취향, 가치관, 야망을 드러낸다. 누구와 결혼을 하고, 어떻게 외모를 꾸미고, 심지어 얼마나 능숙하게 국제적으로 활동하는지조차도 아비투스에 달렸다.
<아비투스> 中
아비투스는 세상을 사는 방식과 태도를 말한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도 아비투스가 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아비투스는 일부에게만 평평한 길을 만들어주고, 누군가에게는 날개가 되어주기는커녕 인생의 방해로 작용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아비투스가 형편없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 말은 변경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평생 함께 하는 아비투스는 아우라처럼 자기 자신을 감싼다. 협상할 때, 연인과 데이트할 때, 아이의 유치원을 고를 때, 사업상 접대 자리에 나갈 때, 심지어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드러난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가치관, 선호, 취향, 행동 방식, 습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느냐는 아비투스에 달려 있다.
부족함 없이 자란 성장 환경이 몸에 배어 있다면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 사는 곳을 가늠하게 된다. 게다가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아이의 환경을 어떻게 마련할지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본다. 이렇게 삶의 곳곳에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아비투스다. 경제적으로 어떤 삶을 사는지는 '돈'이라는 경제 자본으로 결정되기도 하지만 '돈'으로만 우리의 인생은 결정되지 않는다.
<아비투스>에서 말하는 다른 자원들도 의미 있는 삶, 영향력, 만족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타인과 자신을 구별 짓고 돋보이게 할 수단은 매우 많다. 단지 돈이 많다고 최고의 삶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식이나 신체가 건강하다고 최고의 삶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자본이라는 것들이 아비투스에 영향을 미친다.
7가지 자본은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디 어디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자신을 나타내는 척도로 사용된다. 출신이 비록 우리의 일부이긴 하지만 우리가 출신 배경을 뛰어넘어 성장하는 삶을 막지는 못한다. 50년 전만 해도 부모, 교사, 사회가 인생을 결정했지만 오늘날은 대부분이 깊고 넓게 교육을 받고 무엇에 열정을 쏟으며 어디서 살지 직접 결정한다.
인터넷 기술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서 우리의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과거에는 서로의 연결이 지역에 한정적이었다면 현대 사회는 정보의 접근성은 무제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기에 책에서 언급한 일곱 가지 자본 유형을 알면 도움이 된다. 물론 아비투스에 직접적으로 영향이 미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계에 부딪히고 새로운 환경에 진입하자마자 기존의 아비투스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에 대해 '그 사람은 급이 다르다'라고 말할 때, 돈과 외모 혹은 출신 배경을 뜻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통 '급'이란 그 인물의 마음의 크기, 즉 '그릇'을 가리킨다. 급은 성격과 태도로 확인된다.
<아비투스> 中
아무리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자제력, 수용력 같은 성격 강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존경'이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직장 내에서도 업무 능력은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과 협업하기 힘들 정도로 성격이 괴팍하다면 분명 주변에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비투스>에서 말하는 7가지 자본 중에 가장 먼저 심리 자본을 설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성공한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심리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역경이 닥치면 괴로워하고 심지어 원망하는 반면, 행동력이 높은 사람은 주저앉지 않고 그 역경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인을 찾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이처럼 한계에 부딪히거나 일을 엉망으로 망쳤더라도, 스스로 돕는 법을 배우면 재앙으로부터 안전해진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사사건건 간섭하며 통제하는 부모 대신, 고난을 견디고 그 속에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여유로운 동행자가 필요하다.
특히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성공과 업적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기애가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성공을 다른 사람이 가졌다 해도 기뻐할 줄 아는 성품을 길러야 한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관대하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관대함은 사소함에서 시작한다. 다른 사람에게 신뢰, 시간, 관심을 주는 사람은 관대하다.
문화 자본은 어떤 자본보다 사회적 경계를 더 많이 만든다. 일곱 가지 자본 중에 도약이 가장 어렵다. 하룻밤 사이에 비트코인이나 로또 1등으로 수십억을 가진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상류층의 생활양식을 오래전부터 경험한 사람만이 관습을 알아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움직일 수 있다.
단 한 번도 미술관과 오페라, 클래식을 접하지 못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상류층이 되었다고 해서 문화를 단 번에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만간 세계관이 넓어지고, 레퍼토리가 다양해지며, 적합한 언어가 자리 잡는다.
일류 대학의 졸업은 탄탄한 직업뿐만 아니라 사회 자본으로 이어진다. 일류 대학의 졸업장은 세련된 아비투스, 고급 생활양식, 더 흥미로운 인적 네트워크를 만든다. 여전히 졸업장과 학위를 대신할 대안은 없다. 수많은 사람이 지원하는 대기업의 일자리는 일류 대학의 졸업장이 보증서가 된다.
이론적 지식을 쌓는 것이 첫 단계라면, 그다음에는 지식이 능력이 될 때까지 부단히 연습해야 한다. 능력을 계속 확장하는 사람만이 학습한 내용을 내면화하고 전문가 아비투스에 익숙해진다.
무엇이 내게 최선일까? 나는 무엇에 심장이 뛰고, 무엇을 싫어할까? 성공한 삶은 내게 무엇인가? 경제적 성공? 사회적 인정? 성취와 의미? 혁신과 창조? 선행? 개인의 행복? 나는 도전을 추구하는가, 안정을 더 중시하는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사람은 아비투스도 고려한다. 일찍부터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누군가의 성공에 깊은 인상을 받고 똑같이 따라 하려 시도한다.
최정상에 있는 사람은 지식보다는 대화나 사고 능력, 개방성 등 지식을 다루는 '방식'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확장된 지식은 이중으로 가치가 있다. 시장가치뿐 아니라 자신감도 높인다.
행운이나 우연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은 갑자기 많아진 돈을 다루기가 훨씬 힘들다. 지금 당장 20억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조금 경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건물을 산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20억이라는 돈으로 어떤 건물을 살지 바로 행동으로 옮기려면 쉽지 않다.
누군가는 20억이 생기면 우선 비싼 고급 스포츠카를 사겠다고도 한다. 그 뒤에 생기는 다양한 변수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스포츠카는 유지 비용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든다. 결국 스포츠카를 오래도록 타려면 유지 비용을 감당할 만큼의 경제 자본이 필요하다.
물론 돈은 좋다. 오래된 돈은 더욱 좋다. 대를 이은 부자들은 재산만 물려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을 투자하고 운용하는 방법을 저절로 배운다. 콘서트홀을 통째로 살 순 있어도 수준 높은 음악을 논하는 지적 소양은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다. 그래서 재산 총액보다 자본을 다루는 방식이 훨씬 중요하다. 얼마나 넓고 깊은 안목으로 자산을 투자하고 격에 맞게 소비하느냐가 관건이다.
신체 자본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이중으로 이익을 얻는다. 첫째, 안간힘을 쓰지 않은 자연스러운 광채가 완벽한 차별성이다. 그런 차별성은 쉽게 가질 수 없다. 늦어도 40세부터는 휴식과 단련, 신체 의식적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에게만 생긴다. 훨씬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익으로 신체와 정신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의미 있는 투자다.
부유한 사람은 그냥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신체 조건을 유지하며 오래 산다. 좋은 옷과 세심한 자기관리를 통해 자연스럽고 활기찬 아우라가 생긴다. 이런 아우라는 좋은 유전자가 아니라 균형 잡히고 우수한 생활 습관과 훨씬 더 관련이 많다.
누구든지 교양 있는 발음, 환담, 선별된 표현 방식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자신의 신념과 불만을 표현하는 것은 개인의 정직성 문제다. 그러나 정직하게 뭔가를 말할 때는 자신의 위치를 고려하여 적합한 표현을 찾아야 한다. 어휘는 말하는 사람의 가치를 높이거나 떨어트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을 가려서 한다.
사회적 관계는 문화, 재정, 사회적으로 우리를 앞서게 한다. 출신은 내장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힘으로 사회자본을 축적한다. 출신을 뛰어넘어 좋은 인생을 뒷받침할 관계망을 직접 구축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아비투스> 中
가족 못지않게 사회 자본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바로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다. 대다수는 한통속, 일당, 패거리라고 부른다. 극소수만이 네트워크, 동맹, 커뮤니티, 카르텔이라고 부른다. 두 경우 모두 지칭하는 것은 하나다. 서로 관계를 맺고 지원하고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휘 선택에서 나타나듯이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가 비호와 특혜로 바라보지만 후자는 힘과 영감의 원천으로 여긴다.
중산층은 실력에 의한 성공 신화를 믿기 때문에 공정하고 타당한 규칙을 요구한다. 반면 최정상 리그는 마이너 리그보다 훨씬 더 강하게 관계와 소속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사회자본이 적은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은 길을 열어줄 관계망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대학에서 미리 여러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물론 자신을 최정상 리그로 도약할 정도로 괜찮은 멘토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도약은 무조건 실패다. 아비투스를 바꾸는 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지만 자신의 일곱 가지 자본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자문해 보고, 어떻게 변경할지 방법을 찾아가는 건 오로지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해내야 한다.
참고 도서 : <아비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