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숙제
클로즈 베타 테스트가 끝났을 때, 저는 솔직히 조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숨 좀 돌릴 수 있겠지.’
‘이제는 버그 정리하고 안정화 정도만 하면 되겠지.’
그런데 회사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CBT를 통해 드러난 문제들을 정리하기도 전에, 바로 다음 목표는 오픈 베타 테스트(OBT)였습니다. 이게 무슨 느낌이었냐면, 마라톤 완주하고 바닥에 누워 숨 고르려고 하는데 누가 옆에서 “자 이제 전속력으로 다시 한 바퀴 더 도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쉬는 구간이 없었습니다. 완주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누구나 입으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엔 좀 더 안정적으로 가자.”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됩니다.
“이번엔 더 나아 보이게 가자.”
‘안정적’보다 ‘괜찮아 보이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는 순간, 개발은 갑자기 끝없이 다시 시작됩니다. 개발팀장이 말했습니다. “UI를 한 번 더 갈아엎자.” 그 말을 듣고 저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또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나올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CBT 이전에도 UI를 크게 바꿨고, CBT 과정에서 피드백 반영한다고 또 바꿨습니다. 이미 두 번의 대수술이 지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OBT까지 남은 시간이 두 달도 채 안 되는 상황에서 팀장은 말했습니다. 유저 반응을 반영해서 전체를 다시 리뉴얼하자고.
그때 저는 입사한 지 3개월 정도 된 신입 개발자였습니다. 신입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반대? 그건 사실상 없습니다. 제안? 그럴 만한 권위도 없습니다. 도망? 이제 막 취업했는데 그건 말이 안 됩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행동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이 한 문장이 그때의 제 전부였습니다.
게임 산업의 '두 달'
OBT까지 두 달이 안 남았다는 건 사실상 ‘오늘부터 야근 생활 시작입니다’라는 의미와 같았습니다. 출근해서 밤까지 붙잡고, 다음 날 다시 와서 붙잡고, 주말에도 머릿속에서 여전히 붙잡고. 그건 그냥 일정이 아니라 생활방식이 됩니다.
회사에선 모두가 바빴습니다. 서버는 서버대로 안정화해야 했고, 클라이언트는 클라이언트대로 충돌(크래시) 줄여야 했고, 밸런스팀은 유저 불만이 많았던 구간을 손봐야 했고, 사업 쪽에서는 “이런 화면이 더 친절해 보이지 않을까요?” 같은 요구가 계속 들어왔습니다.
그 요구는 사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 요구는 유저 입장에서 보면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그걸 만드는 시간이 현실적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 시점에서 사실상 UI 전담이었습니다. 그 말은, 요청 목록의 첫 화살을 제가 다 맞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창 구성 바꿀 수 있나요?”
“여기 버튼 두 개로 나누면 헷갈릴까요?”
“아이템 사용 설명을 좀 더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없을까요?”
“유저가 방에 들어왔을 때 이 정보가 먼저 보여야 하지 않나요?”
“초보자용 가이드는 별도 팝업으로 띄우면 안 되나요?”
어느 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온 회사의 의견이 동시에 쏟아집니다. 이걸 하나씩 정리하고, 일정 안에 넣고, 실제로 구현까지 해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숨이 낄 정도로 달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습니다. 하루하루 퇴근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야근이 습관이 되었고, 밤이 정상 근무 시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 하고 가자.”
“오늘 이 부분까지만 끝내고 가자.”
“이거 고쳐 놓고 자면 내일은 덜 힘들겠지.”
이런 자기 설득은 사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일은 항상 더 많은 요구가 생기거든요.
몸은 신호를 보냈다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소화가 안 된 줄 알았습니다. ‘요즘 야식도 먹고, 커피 많이 마시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그 정도로 넘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통증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좀 불편하다' 수준이 아니라 '손으로 배를 감싸고 구부려야 버틸 만한' 통증이었습니다.
주말 내내 배를 움켜쥐고 누워 있었습니다. 배가 안에 돌덩이 하나를 삼킨 것처럼 딱딱하게 뭉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찌릿하게 쑤셨고, 앉아 있는 것도 오래 못 버티겠는 그런 통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월요일은 나가야지. 지금이 어떤 시기인데 안 나가.'
병원? 병원은 출근하고 나서 가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참을 만하다고 스스로를 속였습니다.
출근일 월요일
월요일 아침, 출근했습니다. 출근했다는 걸 이 사실만으로 저는 참 이상하게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배 좀 아프다고 회사 안 나오는 사람이 되면 안 되지.'
그게 제 머릿속에 있는 기준이었습니다. 웃기지만 진짜였습니다. 자리에 앉았는데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복부에서 묵직하던 고통이, 이제는 찌르는 통증으로 바뀌었습니다.
식은땀이 슬슬 나기 시작했습니다. 몸에 힘이 빠져서 의자에 기대는 게 아니라, 거의 의자에 매달리듯이 앉아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점심시간쯤 되니 진짜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밥은 엄두도 안 나고, 간신히 흰 죽 비슷한 걸 조금 먹었습니다.
배는 여전히 불에 덴 것처럼 뜨겁게 아팠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아, 이건 그냥 소화 불량이 아니다.’
1시간만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결심을 했습니다. “팀장님, 제가 죄송한데… 오늘 한 시간만 먼저 나가서 병원 좀 다녀와도 될까요?” 이 말이 참 조심스러웠습니다. 말 한마디 꺼내는데도 온몸이 긴장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상황은 '2달 남은 OBT까지 우리가 다 갈아엎어야 한다'는 모드였고, 모두가 예민했습니다. 모두가 자기가 맡은 것 때문에 그날그날 버티고 있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제 입에서 나온 말에는 이런 의미가 묻어 있었습니다.
“저 지금은 못 버팁니다. 저 정말로 조금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팀장은 허락했습니다.
“가봐요.”
그 한 마디로, 저는 겨우 회사를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오자마자 저는 거의 접힌 자세로 지하철에 올라탔습니다. 지하철 안에서는 앉지도 못하고 제대로 서지도 못했습니다. 허리를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복부가 너무 아파서, 자연스럽게 앞으로 숙여진 자세로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쥐었습니다.
식은땀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는데, 그 땀이 식으니까 오히려 몸이 더 떨렸습니다. 한 정거장, 한 정거장이 멀게 느껴졌습니다.
'이거 그냥 약 먹고 나으면 되는 수준 맞나?'라는 의심이 이때 처음 들었습니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은 이미 창백했고, 입술 색도 빠져 있었습니다. 겨우겨우 내과에 도착했습니다.
의사는 제 배를 눌러보더니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급성 맹장이 의심됩니다. 지금 바로 큰 병원 응급실로 가셔야겠어요. 여기선 못 봅니다. 소견서 써드릴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저는 ‘아, 드디어 합리적인 이유가 생겼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생겼다.’ 그 자체가 안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슬픈 장면입니다. 아픈 것보다 더 먼저 드는 감정이 '이제 나 혼난다고 안 하겠지'라는 안도라니요.
응급실, CT, 그리고 진단
급히 응급실로 갔습니다. CT 촬영을 했습니다. 몸을 누운 상태로 기계 안에 넣고, 숨을 멈춰보라는 지시에 맞춰 억지로 복부에 힘을 주지 않으려 애쓰면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맹장이 아니었습니다.
“게실염입니다.”
게실염. 대장 벽에 주머니처럼 돌출된 부분(게실)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입니다. 염증이 심하면 복통이 극심하고, 심할 경우 천공 위험도 있기 때문에 방치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알려진 상태입니다. 진단은 명확했습니다. 의사는 말했습니다.
“일단 입원하셔야 합니다. 일주일은 금식입니다. 물도 안 됩니다.”
물도 안 됩니다. 그 말이 의외로 크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그 순간 들은 말은 사실 '쉬세요'가 아니었습니다. '아예 멈추세요'였습니다. 손등에는 영양 수액과 항생제가 동시에 꽂혔습니다. 양손에는 여러 개의 줄이 연결돼 있었습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기도 귀찮고, 팔꿈치를 조금만 구부려도 주사 부위가 땅겼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머릿속은 끊임없이 똑같은 생각만 돌고 있었습니다.
‘큰일 났다.’
‘지금 이 타이밍에 내가 빠지면 UI 누가 하지?’
‘OBT 준비는 어떻게 하지?’
‘일정 어떡하지?’
저는 제 건강보다 일정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그게 책임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책임감이라기보다, 이미 한계까지 밀려 있던 정신이 자기 자신을 끌어안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제 몸은 이미 '멈춰라'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제 머리는 '아직 안 됩니다'라고 버티고 있었던 거죠.
병원 침대 위로 걸려온 전화
입원 첫날 저녁이었습니다. 누워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회사였습니다. 개발팀장이었습니다.
“지금 상태가 좀 어때요?”
“괜찮아요? 많이 심해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따뜻한 안부 전화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그다음 문장이 문제였습니다.
“혹시… 노트북을 가져다 드리면 병원에서도 코딩이 가능할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안에서 뭔가 확 끓어올랐습니다. 말 그대로 ‘화’였습니다.
“제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고 계시면서 그 말을 하세요?”
“저 지금 팔에 줄이 몇 개가 꽂혀 있는데요?”
“제가 왜 여기 누워 있는지 들으셨잖아요?”
입 밖으로는 그렇게까지 격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현실에서는 그런 말을 못 하죠. 그냥 “지금은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정도로 조심스럽게 답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까지 자기 몸을 팔아야 합니까?’
‘내가 쓰러져도 코드를 생각해야 하는 게 정상입니까?’
이 부분은 제가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입니다. 그 순간에는 제 입장에서만 화가 났습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데 코딩 얘기를 꺼내?’, ‘사람이 쓰러졌으면 “쉬어”가 먼저지, “작업 가능?”이 먼저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지금 돌이켜 보면, 개발팀장도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UI를 갈아엎겠다고 이미 윗선에 말을 해놓은 상태였고, 일정은 박혀 있었고, 저 말고 그 일을 맡아줄 사람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말은 곧, '이 일정이 무너지면 팀장의 책임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팀장도 자기 밥줄이 걸려 있었습니다. 즉, 그때 저한테 무심하게 던져진 문장처럼 들렸던 “노트북 가져다줄까?”라는 말은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말은 지금 들어도 틀렸습니다. 그건 사람을 소모품 취급하는 언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도 시스템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저 혼자만이 아니라, 그 사람도 함께 소모되고 있었습니다.
퇴원, 그리고 약간의 숨구멍
일주일 동안 저는 링거로 버텼습니다. 음식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고, 입안은 마르고, 배는 여전히 묵직하게 뻐근했고, 온몸은 축 늘어진 채 침대와 연결돼 있었습니다.
그 일주일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주어진 멈춤이었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도 제대로 못 보고, 노트북도 못 켜고, 휴대폰도 오래 들고 있을 힘이 없었습니다. 그냥 누워서 생각만 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왔지?”
“나는 어디까지 버텨야 하지?”
“이게 정상인가?”
퇴원해서 회사에 갔습니다. 다행히 오픈 베타 테스트 일정은 조정되어 있었습니다. 저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조금 더 늘어나 있었습니다. 저는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다행이다. 아직 망하지는 않았구나.'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합니다. 제 첫 반응은 내 건강이 회복된 데 대한 기쁨이 아니라, 일정이 조금 늘어났다는 안도였습니다. 그건 제가 이미 한계를 넘어가 있었다는 증거였습니다. 제 몸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저는 제일 마지막에 알았습니다.
이 시기에서 제가 배운 것
입사 5개월 만의 입원은 제 몸이 '이 속도로는 못 간다'라고 선언한 사건이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복통이 아니라 제 인생 첫 번째 ‘강제 중단 명령’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몇 가지를 아주 천천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일은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만 끝나면 좀 쉴 수 있어'라는 말은 대부분 거짓입니다. 하나를 끝내면 다음이 대기하고 있고, 그다음은 이미 계획 중입니다. 저는 그 구조를 실제로 봤습니다. CBT 끝나자마자 OBT, 그리고 또 리뉴얼.
회사 일정은 내 몸보다 우선순위가 높게 밀고 들어옵니다. 제가 돌봐주지 않으면 제 몸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팀은 저를 걱정해 줄 수는 있지만, 일정의 압력은 그 걱정보다 세게 들어옵니다. 이것은 누가 나쁘다는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습니다.
번아웃은 불만이 아니라 증상입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번아웃이라는 게 ‘의욕이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기 싫어졌을 때가 번아웃 아닐까?' 이렇게요. 아니었습니다. 번아웃은 그보다 먼저 몸에서 옵니다. 몸이 '이제는 진짜로 멈춰야 한다'라고 비명을 지를 때, 그게 번아웃입니다.
누구도 나를 대신 쉬어주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괜찮으니까 좀 쉬어”라는 말을 기대하는 마음은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말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쉬는 건 스스로 결정해야만 가능한 영역이라는 걸 저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일은 중요하지만, 일보다 중요한 건 오래 버티는 사람으로 남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이 생각을 했습니다. ‘이 업계에서 오래가려면, 살아남아야 한다.’ 단기간에 불태우는 것이 능력은 아니었습니다. '계속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찾지 못하면, 결국 사라집니다.
그 입원은 제게 일종의 경고장이었습니다.
“너, 이대로 가면 오래 못 간다.”
몸이 가장 먼저 말해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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